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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마디 그라 축제 퍼레이드를 못 보고 왔다고?

LGBTQIA+ 축제란 곧 모든 사람들의 평등, 다양성, 포용성의 축제

by 꿀벌 김화숙


"이번 시드니 브리즈번 여행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 있다면?"


누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하리라.


"2025 시드니 마디 그라 축제 퍼레이드(2025 Sydney Mardi Gras Parade)를 못 보고 온 것!"


거기까지 가서 그걸 못 보고 왔다고? 그리 됐다.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이었다. 우리 여행 일정, 2월 16일(일) 떠났다가 3월 1일(토) 인천 도착한다는 계획 자체가 우스꽝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언제 또 갈지 알 수 없는 일생일대의 기회에 마디그라 퍼레이드를 두고 돌아섰다고? 축제 기간 2025년 2월 14일(금) ~ 3월 2일(일)과 겹치게 갔으면서 퍼레이드 하루 전날 홀랑 떠나는 일정이 말이 돼?


나름 호주를 좀 예습하는 흉내만 냈구만? 모녀에게 숙박을 제공하며 초대한 브리즈번의 친구 피터의 형편을 고려한 점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며칠만 뒤로 미뤄서 출국하고, 브리즈번을 먼저 갔다가 시드니로 나오는 일정이었다면 마디그라 축제와 하이라이트 퍼레이드랑 찰떡 궁합이었을 텐데. 아, 후회하면 뭐 하나. 이번 여행은 요기까지였다고 깨끗이 인정한다.


솔직하자. 시드니 공항에서 눈이 번쩍 했던 순간을 잊지 말자. 공항 뜰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에 놀랐잖아. 뭐지? 국기도 주기도 도시기도 아닌 프라이드 깃발이? 모녀는 정보를 확인했고 어떻게든 2025 Sydney Mardi Gras를 조금이라도 맛보려 노력하게 됐다. 그때부터 정말이지 우리 눈엔 무지개 깃발만 보이고 그 무지개 렌즈를 통해 호주를 보고 읽게 됐다.


여행 내내 따라다닌 열쇳말은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on)이었던 거 같다. 열심히 페미니즘 토론 한다고 LGBTQIA+ 를 좀 아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인 축제를 비켜가는 걸 보라. 무지였다. 축제 시작 날도 없었는데 마무리 퍼레이드도 못 보고 떠나는 일정이라니, 땅을 칠 일이었다. 브리즈번 갔다가 시드니로 다시 돌아와 1박만 더 할까?수없이 고민했지만, 일요일 작은 공동체에 우리의 빈자리가 너무 클 게 마음에 걸렸다.


마디그라 축제는 1978년 LGBTQIA+ 활동가들의 평등한 권리와 차별종식을 위한 시위로 시작됐다. 점점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는, 올해 48회 차 세계적인 축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LGBTQIA+의 평등 퍼레이드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종교단체의 맞불집회와 혐오 발언으로 심하게 방해받는 현실이 보인다. 시드니의 마디 그라는 LGBTQIA+만의 축제일까? 어보리진 원주민, 인종과 피부색과 젠더 장애 등 어떤 정체성도 존재할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평등 죽제로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1. "Loud and Proud. Stay with love"


공항에서 시작된 무지개 깃발은 가는 곳마다 있었다. 호텔에, 엘리베이터에, 가게 간판 곁에, 가정집 베란다에, 거리에, 쇼윈도에, 쇼핑센터에, 길바닥에, 공원에, 가로등에, 대학에, 서점에....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경우는 교회에서 만난 무지개 깃발이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그렇지 않다는 건 익히 아는 바였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다. 그러나 유나이팅 교회 안에는 구성원들의 이름표 통까지도 무지개색으로 쓰고 있었다. 교회 안에 게시된 equal voices라는 단체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2. 마디 그라 축제 퍼레이드가 있을 옥스퍼드 스트릿을 걷다


시드니의 옥스퍼드 스트릿은 마디 그라 축제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시드니에 있는 동안 그 거리를 몇 번 걸어볼 기회가 있었다. 3월 1일 거기서 있을 퍼레이드를 상상하며, 거리에 나부끼는 가지각색의 무지개 깃발을 구경할 수 있었다. 먹고 마시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축제 중이었다. 저 북반구 꽉 막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고리타분한 모녀는 이국의 낯선 거리를 배회하며 구경했다. 평생 들어가 본 적 없는 '성인 용품점'도 구경하고 그곳 점원과 수다도 떨었다. 거리벽에 전시된 LGBTQIA+ 관련 정보도 열심히 공부했다.


모르면 공부해야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복잡하게 분류되는 성적지향, 성정체성의 세계,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깃발들. 너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각각 다른 낯선 개념이었다. 거기서 만난 낯선 말 중 "78 ers"가 있었다. "Seventy-eighters" 란 마디 그라의 기원이 된 1978년 시드니 시위 축제에 참여했던 LGBT활동가들을 뜻하는 말이란다. 초기 여성참정권 활동가들을 부르는 '서프러제트'처럼 역사적이고 자랑스러운 사람들 그룹을 칭하는 말이었다.




3. 마디 그라 파티 티켓을 사고 직접 가다


거리 구경만으로도 다양성 포용성을 몸으로 배우고 느끼는 신세계였다. 만나는 누구나와 수다 떨고 싶은 나는 옥스퍼드 스트릿에서 드랙퀸으로 보이는 사람 뒤를 졸졸 따라갔다. 분홍 드레스에 하이힐, 과장된 분홍 컬머리, 짙은 화장, 그런데 목소리는 걸걸한 그 사람이 나는 궁금했다. 걸음을 멈추길래 내가 말 걸려는 순간 그는 'Sauna X357' 간판이 걸린 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검색의 달인 딸이 찾아 준 바에 따르면 그곳은 시드니에서 유명한 게이사우나였다. 책에서나 접한 세계를 문 하나 사이에 두고 내가 서 있었다.


이런 구경 정도로 만족할 내가 아니지. 마디 그라 퍼레이드를 놓친 대신 다른 행사라도 참여해보자 싶었다. 옥스퍼드 스트릿의 클럽인 Oxford art factory에서 "Planet nine Mardi Gras Party"가 검색에 걸렸고, 딸이 표 2장을 예매했다. 모녀는 이른 저녁을 먹고 옥스퍼드 스트릿을 걸으며 구경하다가 9시에 시작하는 파티에 참여했다.


클럽은 상상한 대로 무대가 있는 칵테일 바 같은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LGBTQIA+가 모여 디제잉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파티가 이루어졌다. 모녀는 칵테일 한 잔씩 놓고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 구경이 젤 재미나니까. 사진 작가와 사귀고 멋진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난생 처음 춤추는 LGBTQIA+ 속에서 드랙퀸의 공연도 보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그들 중 하나로 있었다.





4. 다음 여행에선 꼭 시드니 마디 그라 축제 퍼레이드를 볼 수 있길


3월 1일 토요일 우리 모녀는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이라는 현생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시드니에서는 종일 마디 그라 축제가 있었을 것이다. 20만 군중이 함께 즐겼다는 축제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 장면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려 본다. 남녀노소 장애인 과연 모두가 존재 그대로 즐기는 축제였다. 총리도 참여해 축하하고 유명 풋볼팀도 즐기는 걸 보라. 다음에 시드니 여행을 간다면 꼭 2월 마지막 주와 3월 첫 주를 걸쳐 일정을 잡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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