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어? 하늘나라 갈 때까지 서로 너나하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사랑하는 친구 피터에게
나는 지금 경기도 수원 소재 '여성비전센터' 내 한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어. 오늘 1시부터 5시 반까지 '아카이브 에디터 정기회의 및 양성교육'을 참여하려 좀 일찍 왔어. 원고료 받는 일거리를 찾다 보니 프로젝트를 따라 수원까지 전철 타고 왔지 뭐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자기가 정말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돈 벌고 살아낸다는 게 만만하지 않잖아? 올해도 나는 꾸역꾸역 글쓰기로 돈벌이도 하며 살아내려 해.
4박 5일간 브리즈번에서 너와 함께 보낸 시간이 꿈이었나 싶어. '40년 지기 남사친과 4박 5일'이라 제목을 붙여놓고 보니 더 그래.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느껴지고 우리가 사는 다른 세상도 다시 보이는 거 같아. 나는 3월 1일 도착하자마자 광화문으로 "윤석열 탄핵"과 "내란 종식" 집회에 나갔으니, 과연 여긴 네가 사는 곳과는 딴 세상 맞아. 그렇게 멀리 살던 사람들이 4박5일을 함께 했다는 게 꿈 아니고 뭐겠어.
좋은 공기와 햇볕과 아름다운 것 많이 보며 너와 레비티와 함께 한 시간 깊이 감사해. 좋은 사람들과 보낸 추억을 에너지 삼아 이곳의 척박한 현생을 살아내야겠지. 좋은 날 우리가 또 만나는 그날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이 살다 또 볼 수 있길 바랄게. 너와 알고 지낸 40년 통틀어 이런 복되고 즐거운 은혜의 시간은 처음이었지. 네가 베푼 모든 것 다시 한 번 감사해. 이전보다 운동도 열심히 하는 네 밝은 모습 보기 좋았어.
4박 5일 동안 우리 모녀를 먹이고 재워주고 함께 다니며 구경시켜 주느라 수고 많았어. 한 주간 통째로 직장에 휴가를 내서 돈 쓰고 몸과 마음을 쓴 그 환대와 우정에 감사해. 표현할 말이 부족해.
40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난 대학시절도 생각나고 함께 울고 웃으며 활동하던 단체 생각도 났어. 우리 나이 기껏 3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그땐 참 내가 선배요 목자인 척 했더랬지? 세월이 흘러 너는 호주에서 정착했고 나는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거쳐 한국에 정착했지. 그동안 우리는 삶의 역정도 아픔도, 어떤 면에선 신앙 색깔도 사회경제적인 길도 다르게 살고 있지. 그럼에도 친구로 다시 보니, 참 내가 복이 많구나.
첫날 브리즈번 공항까지 차로 마중 나와 준 너. 레비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이게 꿈인지 생신지 질문할 정도였어. 나 혼자 옛날에 성경공부하면서 잘 인용하던 우스개 예화가 생각났어. 기억할 거야.
어떤 외국 선교사가 한국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를 태워준 이야기 말이야. 할머니는 차에 타고도 보따리를 계속이고 있었다지? 그 선교사가 할머니 보고 보따리 내려놓고 편히 타고 가시자고 했더니 할머니가 뭐랬는지 기억해?
"아이고, 차 태워주신 것만도 고마운데 어째 보따리까지 내려놓아요. 그럴 순 없구먼요."
은혜를 잘 믿지 못하는 예화인데, 와락 이해되더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대접받아도 되나, 피터와 레비티의 환대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지? 이걸 과연 되갚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갚을 수 있기나 하나?.... 피터와 함께 하는 것도 생면부지의 레비티와 사귀고 그 집에 묵고 맛있는 걸 함께 먹는 것도 그랬어. 사랑과 은혜와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구나. 내가 차를 얻어 타고도 보따리는 못 내려놓는 맘이었어.
내가 네게 한 게 뭐가 있다고 이런 은혜를 입나, 이런 생각을 하다간 마음을 돌리곤 했어. 결국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건 은혜요 사랑이라고 믿기로 했거든. 어떤 법도 의무도 예의도 아닌 우리 사이에 우정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이 먹도록 마음을 나누는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시간이 갈수록 차츰 더 감사와 기꺼움으로 즐길 수 있었어. 우리 셋이서 걷고 걸은 브리즈번 강변이며 공원도 아름다웠지만 너와 저물도록 수다 떨 때 참 행복했어. 둘째 날 오전에 우리 모녀가 브리즈번 시청 투어에 음악회 두 개나 즐기느라 점심을 걸렀잖아. 점심 먹을 짬이 없을 줄 예상 못한 여행자들을 너는 환상적인 비건식으로 위로해 줬지. 네가 데려간 그 비건 식당을 다시 못 가보고 떠나온 게 너무나 아쉬워.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15장 15절)
여행 동안 떠올린 성경 구절 중 하나야. 예수 당시는 랍비와 일반인,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 차이가 분명하던 시대잖아.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젠 '종'이 아니라 '친구'라 그랬어. 사람들은 '주여'라고 예수를 불렀지만 그 칭호도 예수는 썩 좋아하지 않았을 거 같지 않아? 친구라 하는데?
내가 새롭게 알아가는 예수님은 내 친구야. 네게 계속 평어로 하자 그런 것도 친구 하자는 말이었어. 40년 세월 익숙하던 상호 존대에서 서로 평어로 바꾼다는 게 낯설고말고. 어떤 존칭도 생략하고 그저 이름만으로 부르자니, 너의 익숙한 호칭은 늘 "목자님"이었을 테니 왜 안 이상하겠어. 그럼 나는 너를 "목사님" 아니면 "선교사님"하고 부를까? 언어를 바꾸기엔 여행이 너무 짧았어 흑흑.
인생 별 거 있어? 우리 늙도록 너 나하는 친구로 가자. 공간적으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온라인으로 시도하고 연습하며 친구로 늙어가 보자. 그래서 편지도 평어로 쓰는 거야. 레비티는 나랑 20살이나 차이지만 영어로 말하니 평어 하나도 이상하지 않잖아. 우리는 왜 안 돼? 내 소원이니 내 손 잡아주길 바라.
그리고 내 책 두 권 보잘것없는 책이지만 읽길 부탁할게. 내 인생을 토하듯 쓴 책이라 친구와 소통하고 싶은 맘 고백할게. 여행 동안 책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네게 압박이 될까 자제했어. 어찌 한 번에 다 하랴, 차차 하자, 소통하고 싶은 내 욕심을 내려놓으며 놀다 온 거야. 그리고, 혹시 다 읽은 후엔 우리가 들렀던 그 도서관에 기증해 주는 것도 좋겠어. 소장하고 싶다면 나머지 한 권 누구 주라고 한 거 기증해도 좋아. 책이 그냥 꽂혀있기보단 브리즈번에서 교민 독자에게 닿는 게 작가로서 행복한 일이니까. 부탁해.
사랑하는 친구 피터!
떠나는 날 아침 7시부터 또 부지런히 페리 타며 데이트해 준 수고 고마워. 너무나 아름다운 강과 하늘과 공원, 그리고 사람들을 즐기는 시간이었어. 공항까지 차 태워줘서 고마워. 귀한 친구 레비티와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레비티에게도 쓰고 챗GPT로 번역해서 보냈어. 그리고 네 가정, 네 삶, 나는 다 알지 못하지만 너의 하나님이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나는 믿어. 현재의 네 삶에 감사할 뿐이야.
아참 우리 보낸 후 토요일에 딸 베키와 예비 사위는 잘 다녀갔어? 몸살 안 나고 오케이? 즐거운 시간이자 환대의 한 주 수고했어? 날 잡아서 전화 한 번 할게 얘기 들려줘.
친구야! 고마워! 사랑해!
드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