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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부러운 도시가 다 있나

시드니&브리즈번 2주간의 꿈, 딸이 쓴 모녀 호주 여행 후기-1

by 꿀벌 김화숙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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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함께 한 여행에 엄마 관점의 글만 있는 건 아쉽지?"

"딸의 입장에서 모녀 여행 후기 하나 써 주라~~"

"딸!!! 후기 주세요~~~" 


여행기를 쓰다 보니 딸의 목소리도 올리고 싶었다. 이 브런치북 제목이 '3060 모녀 유랑기'인 데다 쓰다 보니 내용은 모녀 호주 여행 이야기가 3분의 2를 차지하는 구성이 됐다. 연재 브런치북이 30 꼭지로 끝나는 시스템이라 딸의 여행 후기를 꼭 넣고 마감하고 싶었다. 기왕이면 딸이 고른 사진들과 함께. 여행 끝나고 열흘 만에 드디어 딸이 쓴 여행 후기를 받을 수 있었다. A4로 빼곡한 4쪽반짜리 여행기다.


'시드니&브리즈번, 2주 간의 꿈'이란 제목이 딱 지금 내 맘, 꿈을 꿨던가? 처럼 들린다. "엄마와 함께 한 2주 간의 시드니&브리즈번 여행을 마무리하며"란 부제 아래 개의 소제목이 있는 글이다. 전반부 시드니와 브리즈번 여행 스케치를 각각 담았고 후반부 '엄마와 함께라서' 겪은 '찐' 딸의 후기라 하겠다. (딸은 작년 이맘 때 혼자 시드니를 다녀와서 이번이 두번째 여행이었고 나는 처음이었다.)


딸의 글에 사족 달 거 없이, 토씨 하나 손 안 대고 긁어다, 단락만 띄워 2회로 나눠 올려 본다. 

딸아!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시드니&브리즈번, 2주 간의 꿈

엄마와 함께 한 2주 간의 시드니&브리즈번 여행을 마무리하며



다시 만난 시드니뭐 이렇게 부러운 도시가 다 있나


11개월 만에 다시 만난 시드니는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늦여름이라 덥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햇살은 따사롭되 바람과 그늘은 시원한, 그야말로 여행하기 최고의 날씨였다. 공항의 풍경도, 깨끗한 공기와 끝내주는 날씨도 작년과 똑같았지만, 공항 앞 광장에서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Pride flag)이 작년과 다른 시기에 시드니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시드니에서는 매년 이맘때 마디 그라(Mardi Gras) 축제가 열린다. 본래 마디 그라는 ‘기름진 화요일(Fat Tuesday)’이라는 뜻으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과 부활절(Easter Sunday) 사이의 40일간 금식하며 기도를 올리는 사순절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이다(2025년 기준으로는 3월 4일이 기름진 화요일이라고 한다). 즉 기독교 문화권 국가라면 어느 곳에서나 이 행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시드니의 마디 그라는 특별히 퀴어 퍼레이드의 성격을 띤다. 애초에 기독교와는 별개의 취지에서 시작된 축제에 LGBTQIA+를 향한 긍정과 축하의 의미를 담기 위해서 ‘마디 그라’라는 이름을 따왔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드니 마디 그라 축제의 공식 명칭은 ‘Sydney Gay and Lesbian Mardi Gras’이다. 


시드니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무지개를 마주칠 수 있었다. 축제를 위한 다양한 굿즈를 파는 가게들, 저마다의 개성 있는 모습대로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모두 마디 그라가 한창임을 알려주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남는 건(사실 모든 게 너무 인상 깊었지만!) 시드니 시청과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이다. 시드니 시청 정문 위 무지개 깃발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시청에 무지개 깃발을 게양함으로써 마디 그라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고 한다. 도서관에서는 퀴어 작가들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여행 스케줄 때문에 가보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마디 그라가 ‘도시 전체의 축제’가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공공 영역에서 LGBTQIA+를 환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와 정반대인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부러운 게 무지개 깃발뿐이겠는가. 사실 시드니의 매력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자연’이다.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면서, 숲과 공원, 바다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고층 빌딩과 대형 쇼핑몰이 가득한 대도시였지만 몇 걸음마다 울창한 나무와 푸른 잔디를 만날 수 있어 삭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장 매력적인 건 역시 바다였다. 시드니의 모든 길은, 물을 비롯한 자원을 얻기 쉽도록 바다로 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덕분에 시드니 중심부에서 대중교통으로 20~30분이면 해수욕과 서핑을 즐길 수 있는 바다가 나온다.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시드니 항(Sydney Harbour). 시드니 시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우리 숙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걸어서 30분이면 시드니 항에 도착한다. 시드니의 교통수단인 페리가 모두 모이는 서큘러 키(Circular Quay),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하버브리지 등 관광객을 불러 모을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보니 낮이든 밤이든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그럼에도 시드니 항이 너저분하거나 조잡하지 않은 이유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각자 예술작품으로서 잘 만들어졌고, 오페라 하우스부터 달링하버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바와 식당들이 어느 하나 경관을 해치지 않고 도시와 바다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페라 하우스 아래의 바에 앉아 그곳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시드니 항이 왜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지 저절로 납득이 갔다. 분명 대도시에 와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오페라 하우스가 코앞에 있다니. 매일 보면서도 내가 있는 곳이 비현실 같았다. 현실을 떠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한 그 느낌 때문에 시드니 항은 매일 가도 좋았고, 거기 앉아 사람구경만 해도 좋았다. 시드니 항의 풍경을 안주 삼으면 맥주 한 잔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건 비밀.    

 


처음 만난 브리즈번시드니보다 살기 좋다고?


퀸빅토리아 주의 주도이면서 호주의 5대 도시 중 하나인 브리즈번. 조금 더 적도에 가까운 만큼 공항을 나서니 더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야자수 종류들도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브리즈번에는 아주 더운 여름과 따뜻하고 선선한 나머지 계절만이 존재해서, 서머타임이라는 것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브리즈번은 시드니보다 더 동쪽에 있는데도 한국과는 시차가 1시간밖에 나지 않는다(시드니는 현재 서머타임 때문에 한국보다 2시간 빠르다). 한여름은 지나간 시기라고는 하는데, 더위를 원체 많이 타는 나는 도착하자마자 시드니가 살짝 그리워졌다. 다행히도 한국처럼 습하지는 않아서 바람과 그늘만 있다면 여행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브리즈번은 2032년에 있을 올림픽 개최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하철과 경기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에 따른 지가 상승에 발맞춰 신축된 아파트들도 많이 보였다. 여기에 애초에 시드니보다는 덜 계획적으로 설계된 도시라는 점이 더해져, 첫인상은 조금 정신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 노력했다는 점, 어느 건축물 하나 대충 짓는 법이 없다는 점은 똑같았다. 도시를 관통하는 브리즈번 강이 본래의 강 모습 그대로 대문자 S자를 그리며 흐르도록 두었고, 강을 따라 형성된 공원과 산책로가 역시 도시와 강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은 하나 같이 개성 있고 예술적이었다. 차도만 있는 다리, 차도와 인도가 함께 있는 다리, 인도만 있는 다리가 섞여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브리즈번 강의 길이나 폭이 크다 보니, 여기도 페리가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이 좀 더 잘 설계되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브리즈번 사람들은 브리즈번이 시드니보다 살기 좋은 이유로 자유분방한 도시 분위기와 사람들의 친절함을 꼽는다. 브리즈번의 자유분방함이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는 직장인들의 옷차림이다. 정장 내지 세미 정장이 일반적인 시드니와 달리, 브리즈번의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은 캐주얼한 옷을 즐겨 입는다. 정장을 입으면 되려 적당히 입으라(dress down)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시드니보다는 규모가 작고 외부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도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날씨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람들의 유쾌함과 친절함도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국인들의 불 같은 성격은 변화무쌍한 사계절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려보면,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브리즈번에 비해 계절변화가 뚜렷한 시드니는 브리즈번 사람 입장에서는 좀 성깔 있는 도시로 보일지도?


잠시 다녀가는 한국 관광객 입장에서 볼 때, 시드니나 브리즈번이나 사람들이 개성 넘치게 입고 유쾌하고 친절한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브리즈번이 시드니보다 확실하게 경쟁력을 갖는 건 교통비였다. 시드니는 한국과 같이 거리비례 요금제를 사용하고, 기본요금이나 거리 당 요금이 비싼 편이라 몇 천 원은 아주 우습게 빠져나간다. 만 원을 훌쩍 넘기는 일도 있다. 반면 브리즈번은 교통수단을 막론하고 환승 여부 관계없이 편도는 무조건 50센트다. 즉 내가 버스-지하철-페리-버스로 출근하고 같은 방식으로 퇴근을 하더라도 하루 교통비는 달랑 1달러라는 소리다(현재 환율로 우리 돈 천 원도 안 된다!). 퀸즐랜드 주정부가 시민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해 실제로 대중교통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도 기후동행 카드 등 비슷한 취지의 정책을 시행하고는 있지만 획기적인 대중교통 이용 장려가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퀸즐랜드 주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면적에 퀸즐랜드 주의 다섯 배가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권을 생각하면 교통비를 인하하더라도 차량 증차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결국 여행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한국은 너무 작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다음 포스팅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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