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에 집중하며 산 3년간 남은 것과 아쉬움 그리고 다음
삶에서 마주하는 생각을 담아 '굳이 굳이' 시리즈로 글을 써서 출판물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지 거의 반년이 흘렀다. 항상 상상은 신나지만, 실행은 언제나 어렵다. 그래서 더 미루지 말자고, 괜찮아마을 커뮤니티에 <괜마 글쓰기 루틴 클럽> 모임을 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 동안 온,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글을 쓸 예정이다. 더 미루지 않고, '굳이' 생각과 이야기를 담아 글을 적어본다.
이번 글은 "모두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라고 이야기하던 기획자가 '지금 당장'에 집중하며 지낸 3년을 돌아본 회고입니다. 또 '주체성'은 사실 '굳이' 해야만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글입니다.
최근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3년 전에 쓴 글을 꽤 많은 사람이 읽고 반응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나도 3년 전 글을 다시 읽었다. 나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다짐하고 있었다. 글을 읽다 보니 적어도 지금이 그때보다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의 욕망이
'Just Now' 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나중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제주에서 준비하던 창업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과 삶의 루틴, 성격, 퍼스널브랜딩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0장0장에 합류하고 목포로 내려와 기획자로서 재미있는 만들어나간 지 벌써 4년 차다.
'지금 당장'에 집중하며 무엇이든 도전하고 시도해보자고 스스로 정한 3년이 모두 지나갔다. 글을 쓰며 지난 3년간 나는 무엇을 얻었는지 앞으로 쭉 정리해보고 싶다. 이제는 잠시 멈춰서 지금까지 만들어온 점들을 연결하여 삶의 맥락과 의미를 다시 살펴볼 때이다.
그래서 뭐가 남았어?
'지금 당장'에 집중하다 보니 지난 3년간 남은 건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가 전부이다. 3년간 한순간도 치열하지 않은 적이 없다. 무엇이든 잘해보려고 했고, 모든 순간 더 나은 방향은 없는지 고민했다. 모든 선택이 최상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번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을 했다. 그래서 뭐가 남았을까?
나를 브랜딩하겠다는 다짐에도 번번이 어려웠다. 이전에도 '주체성'이라는 가치는 분명했지만, 주체성이란 가치를 보여주고 싶은 방식을 너무 열어두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어떤 방식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제는 모든 일을 할 수 없으니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스스로 커리어를 "비즈니스 전략 기획자"라고 정의한다. 요즘 많이들 이야기하는 직무로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비슷하다.
커리어: '어떤 분야에서 겪어 온 일이나 쌓아 온 경험'(고려 한국어 대사전)
이전의 여러 창업 경험에도 '팀'이 항상 어려웠다. 일을 함께하기보다 혼자 하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더 많았다. 사실 지난 3년도 가장 큰 고민은 팀이었다. 기획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출근해서 동료들에게 처음 들은 말이 "기획 총괄님 오셨으니 이제 살았다."이다. 다소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신입이 많은 조직에서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한가?' 지난 3년간 다양한 성과를 내는 팀을 구축하는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험해왔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치열하게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만들고 싶었다. 많이 부족했지만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지나온 지금, 이전보다 '좋은 팀'이 무엇인지 조금 더 알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을 대하고 접근하는 방향과 방식이 3년 전과 지금이 아주 다르다. 이전에는 문제 해결 자체에 집중한 기획을 했다면 지금은 돈을 버는 기획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솔루션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 상황과 자원을 기반으로 최선의 상품을 만들고 효과적으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여 판매하고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까지 기획한다. 작게 시작해서 스케일을 키우는 전략까지 고민한다. 꼭 좋은 기획이 이슈를 만들고 돈을 버는 건 아니다. 최선의 선택으로 상품을 만들고, 이슈를 만들 고민, 돈을 버는 고민 담은 기획이어야만 한다.
3년간 연구/컨설팅, 디자인, 교육, 커뮤니티, 여행, 공간/부동산, F&B, 출판, 크라우드 펀딩, 제품/제조, 메이커스페이스, 투자, 마케팅, 영상, 웹/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축제/행사, 교육 툴킷 등 정말 많은 영역의 일들을 주도적으로 경험했다. 다양한 분야를 깊게 고민한 시간과 경험은 엄청난 자산이다. 이제는 좁은 분야에 집중해 분명한 성과를 만들 시기이다.
0장0장에 일하며 직접 처음부터 구축한 브랜드가 최소 10개는 넘는다. 단순히 브랜드 비주얼만 구축한 프로젝트도 있지만, 대부분이 브랜드를 기반으로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운영했다. 개인적으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향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딩은 어릴 때부터 관심이 큰 영역이었다. 다만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한 건 결국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이었다. 이제는 직접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며 실체가 있는 경험을 통해 나름 개인적인 공식, 방법도 생겼다.
그래서 뭐가 아쉬운데?
지난 3년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분명히 성장했다. 하지만 분명히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작은 조직이 가진 자원과 역량은 한정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그때 세운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든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분명히 배우고 성장한 점이 있다. 이제는 조직의 부담은 최소화했으니 지금까지 쌓은 경험과 역량으로 괜찮아마을의 중, 장기적인 비즈니스 전략과 기획을 실행해보고 싶다.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뭔가 집중하고 성과를 내려고 하면 일상을 놓아버린다. 종일 몰입하여 일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와서 바로 잠들었다. 또 지난 3년간 일상 속에서 책을 읽고 배우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만들지 못하니 이전에 경험하고 쌓아온 지식, 인사이트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경험으로 교환한 느낌이다.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지속하고 습관으로 만드는 건 여러모로 어렵다. 이제 진짜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단단한 일상을 만들고 싶다.
나는 큰 소속감이 필요하지 않아서 때문인지, 삶의 시점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이 많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근에 나는 개인적으로 주변에 사람을 남기는 사회적 기술이 없다고 인정했다. 가끔 살갑게 먼저 연락하고, 착한 거짓말도 좀 하고, 적당히 약한 모습도 보여 친밀감을 만들고, 굳이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피곤하게 따질 필요 없이 적당히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걸까? 때론 내가 인간적인 매력이 없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목포에서 3년을 돌아보니,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에게 남은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 많은 환경에 나를 던지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든다.
대표일 때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회사와 나를 함께 기억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회사의 '직원 A'로 기억된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나보다 회사와 브랜드였다. 어찌 보면 일하는 사람보단 만든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일 자체보단 일로 만들어진 결과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나를 브랜딩하고 보여주는 글을 쓰고 외부로 보여줘야 한다고 오백만 번쯤 생각했지만 결국 비즈니스 브랜드, 일 경험은 남았지만 나를 사람들에게 기억시키진 못했다.
실은 내 욕망을 정확히 모르겠다. 몇몇 마음의 조각으로 추측할 뿐이다. 요즘 내가 추측한 욕망은 세 가지다. (1)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나아가 사회에 큰 충격을 줄 만한 혁신을 만들고 싶다. (2)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만들고 싶다. (3) 근본적으로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결정되는 환경에 위치하고 싶지 않다. (철학자 라캉의 말처럼 욕망이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뭘 하려고?
이제는 나를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지금 당장'에 집중한 3년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이제는 지난 3년의 경험과 지금의 생각을 담아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궁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주체성'이라는 평면적인 단어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가치를 입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다. 주체성의 입체적인 이미지가 퍼스널 브랜딩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면 좋겠다.
또 내가 쓴 글이 회사 브랜드의 콘텐츠가 되는 과정을 통해 퍼스널 브랜드와 비즈니스 브랜드가 시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실험해보고 싶다. 분명히 기존 회사 형태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하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떤 회사의 직원, 누구의 자식, 부모 등 사회적 관계성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호기심이 생길 수는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체성의 현재 위치는 '굳이'였다.
우선 '굳이 굳이' 시리즈의 글을 꾸준히 발행할 생각이다. "주체적인 세상을 꿈꿉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웃는 사람이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뭔지 잘 알 수 없어서, 어려워서라고 답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체성의 현재 위치는 '굳이'였다. (굳이: 단단한 마음으로 고집을 부려 구태여) 단단한 마음이 없다면 주체적으로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찌 보면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래도 굳이 주체적인 삶에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은 힌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