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스페이스 오페라
이 영화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1961년 작품 <솔라리스>를 원작으로 1972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영화화했다. 원작이 탄생하던 때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기였지만 그 속에서도 미약하나마 양 진영이 정치를 벗어나 서로 조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이 작품을 냉전으로 단절된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낯설고 불안한 호기심을 지구인들이 솔라리스라는 미지의 행성을 탐사하면서 벌어지는 솔라리스의 손님들과의 만남으로 표현했다고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작품을 상징주의적 관점에서 비평되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했고 자신의 영화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경험’해 줄 것을 강조했다. 영화 <솔라리스>에서의 그의 관점은 SF라는 장르의 형식을 벗어나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구인의 숨겨진 의식을 건드리는 낯선 존재와의 만남과 그로 인한 혼란이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된 사건이 된다.
솔라리스의 존폐를 결정해야 하는 크리스는 지구를 벗어나 솔라리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솔라리스를 연구하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크리스 역시 솔라리스로부터 의식을 건드리는 손님을 맞이한다. 지구에서 출발해 미래지향적인 우주를 향해 왔지만 그를 맞이한 우주의 손님은 과거에 죽은 아내 하리다. 이 만남은 크리스를 과거의 시간으로 이끈다. 1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크리스가 우주로 떠나기 전의 이야기는 자연을 동경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 삶을 포기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는 하리와의 만남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솔라리스에 남으려 한다. 하지만 그의 소지품에는 여전히 그를 현재로 이끌 그의 삶이 존재했던 지구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우주의 하리에게 크리스가 보여주는 필름은 크리스의 인생이자 그가 솔라리스로 떠나오기 전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그리고 지구의 하리에게 있었던 그녀의 역사, 즉 어머니와의 불화와 죽음 등이 담긴 이 기록이 솔라리스의 손님 하리를 인간 하리로서 거듭나게 한다. 인간의 기록을 담은 필름이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주선을 찾아오는 낯선 손님들은 어쩌면 솔라리스의 입장에서 침입자이자 타자인 지구인들을 대하는 솔라리스의 태도다. 솔라리스가 지구인들을 대면하는 방식은 패튼, 기바리안, 스나우트 그리고 사토리우스를 거처 크리스에 이르러 완성된다. 지구인들은 손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무의식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깊숙이 묻혀있던 도덕과 양심 그리고 미지의 어떤 것과 반응 하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시험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솔라리스의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솔라리스의 손님들 역시 타자를 상대하는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하리, 아니 이제까지 모든 손님을 포함한 솔라리스는 그만의 방식으로 오래도록 자신(솔라리스)을 탐사하던 지구인들에게 대응한다.
하리의 희생에 의해 크리스는 그가 다시 현재의 시간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살아가기 위한 깨달음을 얻는다. 솔라리스의 바탕 위에서 귀환한 크리스의 시간은 솔라리스의 시간을 품고 가족 즉 아버지와의 삶을 다시 이어간다. 이는 타르코프스키의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이 영화는 sf로서의 장르적 특징, 유토피아적 상상이나 혹은 그와 반대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넘어선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즉 솔라리스라는 무의식과 도덕성이라는 정신의 바다가 그것을 탐험하러 온 지구인들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스타워즈>같은 화려한 볼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타르코프스키라는 영화의 바다는 장르는 접어둔 채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시간과 무의식 도덕성 등을 여전히 탐구하고 있다. 아마도 체제의 한계 속에서 당이 그에게 요구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