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맞이했다. 몇 년 만에 함박눈이 내린 날, 영화관이 없는 해남 읍내를 지나 아빠 엄마와 1시간 조금 넘게 차를 타고 목포에 가서 <1987> 영화를 봤다. 가는 동안 지방선거를 이야기하고, 오는 동안 종교를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길 고천암 저수지 근처에서 겨울 철새를 보았다. 주변에는 논, 눈, 갈대, 새, 뿐이 없었다. 차가운 바람 들이쉬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돌아오는 흙날, 할머니의 첫 기일이다. 할머니가 살아온 삶, 그 뜻 헤아려 사는 삶이 무엇일까, 시종 궁리한다. _18.2.5
숨 쉰다. 들이쉬는 숨, 내쉬는 숨. 언제인지 모르게 고르게 쉬고 있다. 갑자기 크게 들이쉴 때 있다. 주목하니 더 그렇다. 나가는 숨은 들이쉬는 숨에 비해 눈치채기 어렵다. 그만큼 쌓여있나 싶다. 잘 표현하고 솔직하게 소리 내기 어렵다. 힘들다고, 못한다고, 스스로 말하기 어려워한다. 힘 있게 버틴 게 아니었다. 말을 못 한 것이지. 누가 대신 말해주기를, 넌 안돼, 라는 말을 들으면 그제야 ‘아, 난 안되는구나!’ 하며 나와 상황을 정리할 합리적 명분을 찾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잘하지 못해, 행복할 자격 없다, 여겼다. 앎이, 관념이 누적될수록 몸이 무거워졌다. 아는 만큼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틀린 말 아니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을 몰랐다. 그러다 보니 빛바랜 관념이 당위가 되고 우상이 되어 집착했다. “오타모반 수술을 안 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글쎄요. 생각해본 적 없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생각에 빠져 매몰될 여유가 없다. 잘 살고 있다. _18.2.16
겨울방학 지나고 봄 학기가 시작됐다. 1학년 학생들이 입학했다. 첫 주는 수업 없이 배움터 일상에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1, 2학년 학생들과 살구나무 배움터에서 지내다, 2주차 넘어오며 새 터전으로 이사했다. "아침이 오면 날이 밝아와 / 나는 잠에서 깨어 / 창밖에 새소리 나를 부르네 / 밝은 날을 부르네 / 긴 밤이 지나고 / 나는 새 사람이 되어 / 나를 덮어주던 이불을 개며 / 새 숨을 쉽니다 / 후~" 함께 노래 부르고 감잎차 마시며 아침을 연다. 여유 있게 아침 수업하고, 모두 함께 밥상 기도문으로 기도한 후, 침묵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밥상을 들인다.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국 먹을 때는 국 먹고, 찬 먹을 때는 찬 먹고, 물 마실 때는 물 마신다. 한 번에 하나씩. 몸 있는 곳에 마음 두는 밥상 교육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 욕심부리는 건 단순히 남의 것을 빼앗거나, 많이 가지려는 것뿐만 아니라, 내 몸보다 마음이 앞서는 것. 내 몸을 비생명으로 대하는 것. _18.2.19
여러 사건 함께 지나고 물리적으로 거리 두며 지내는 친구가 있다. 우연히 그 친구가 최근에 몸이 크게 아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생활하면서 문득문득 그 친구가 떠올랐다. 많이 아팠구나, 왜 아팠을까, 수술했다는데 지금은 어떨까. 안부를 묻고 싶고, 아팠던 이유를 추측해보는 등 마음이 요동쳤다. 마음, 생각, 추측이 흘러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이를 때, 내 잘못과 내 책임을 찾는 스스로를 보았다.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영향은 없었을까 생각하며 죄책감을 키우고, 연락하고 확인하려는 과정을 지나 보이면, 혹여 용서할까.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객관적 사실보다, 내 경험과 사고에 갇힌 추측을 거듭해 결단 내리는 모습 보면서 혼자의 생각 가지가 무성히 뻗어나가는 게 무섭게 느껴졌다. 스스로 죄라 여기고, 스스로 용서받기 위한 모습.. 많은 순간, 많은 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옮길 수 있었겠다. 이미 그렇게 지나왔구나,싶다. _18.2.24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만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고전 13:12 / 동무들과 함께 1000일 기도와 공부를 시작했다. 첫걸음, 안산에서 뗐다. 끝까지 사랑하는 건, 끝까지 책임지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마음을 다해 친절히 대하는 것. 순화님의 나눔을 오래 떠올린다. _18.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