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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ing Jan 02. 2022

여행에서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익숙한 것에 감사를 느끼기 위해 감행하는 낯선 것과의 조우

15살 무렵 떠났던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24살까지 나는 그리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학업을 이유로 몇년, 그 이후 대학에 와서는 해외여행에 욕심이 나지 않을 정도로 일상이 재미있었다. 매일같이 시트콤처럼 터지는 대학 생활은 2년여간을 방학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여행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기 보다는 매일이 여행인 듯 돈을 쓰곤 했다. 그러다 3학년 여름 방학, 우연찮게 혼자 떠난 홍콩 여행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다. 그 이후로는 외국에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아프리카에 갈 정도로, 어찌되었든 여행만을 위해서 몇달을 아껴쓰는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내게 여행의 이유를 물어본다면, 나는 아마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고 말하고 싶다. 

 잊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도 한 적이 있다. 답답한 현실, 변하는 것 없는 루틴. 누군가로부터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그래서 진정 나일 수 있도록 떠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아니겠느냐. 이 말도 틀리지 않다. 처음의 혼자 간 홍콩 여행에서는 실로 그랬다. 미래라고는 꿈꿀 줄 모르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낯선 곳에서 만난 이들의 멋진 이야기는 한국이라는 우물 속에 갇힌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가끔 사람은 우물 속도 지배하지 못했으면서 그 밖의 세상에 용심을 가질 때가 있다. 그 이후 몇번 반복되던 여행, 친구들과 가족들과 떠난 여행에서 나는 이상하게 낯선 곳에서 한국의 음식을 찾고 가끔은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비용의 절반은 그 공기값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여행의 허무함을 표현하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 떠나는 날의 아침공기는 어제와 달리 맑고 상쾌하기 그지없다. 공항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평소 같으면 지루하기만 했을 도로위에서 심지어 아직 비행기도 타지 않았으면서 이미 몸과 마음은 비행기모드로 세팅 완료. 화장품 냄새가 자욱한 면세점의 공기가, 먼지 뿐이 없는 비행기의 공기가 뭐 그리 좋다고 나는 늘 그것들을 "돈주고 산 여유의 냄새"라고 표현했다. 물론 어느 디퓨저보다 향기로운 그 냄새들이 지금도 너무나 그립다. 

 그렇게 떠나는 여행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집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건 비단 한국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아니라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미묘한 아늑함에 가깝다. 더 이상 지도를 보며 걷지 않아도 되는 곳, 여권과 지갑을 3초에 한번 체크하지 않아도 되는 곳. 탁 트인 수영장은 없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트인 나만의 공간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가끔은 이르게 마무리한 독립 생활을 떠올리며 중간에 한번정도라도 여행을 떠났다 왔다면 그 공간에 더 애착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너무 가까이에 있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잊기 쉬운 것은 비단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닌가보다.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듯.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 중에서 나는 집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귀환점으로 삼게 된다. 

 그런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통한 새로움의 충전이 아니라, 집에 대한 소중함의 충전처럼 느껴진다. 아닌게 아니라 집은 정말이지 공기 그 자체라 고여있다 보면 그 존재를 깨닫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돈을 써 가면서 굳이 낯선 향신료의 냄새를 산 뒤에야 비로소 익숙한 K-공기가 달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사실 그렇게 돌아오기 위한 여행을 떠나다 보면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도 훨씬 덜 수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끝날, 인생의 짧은 버전 정도. 그 인생은 실패해도 마일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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