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누군가는 사랑을 한다, 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대부분 사랑을 앓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못해서 앓고 그렇게 말하려던게 아니었는데 터진 입이라고 뱉어버린 말에도 앓았다. 좋아서 앓으면 심장이 저릿 저릿, 쥐라도 난 듯이 요동친다. 사랑할 때 나는 말도 못하는 갓난 아기 같았다가, 어쩔 때는 막 말문이 트여 아무런 말을 내뱉는 3살 같기도 했다가 사뭇 다 큰체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파파 할아버지처럼 지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사랑의 모양은 모두 달랐다. 때로는 이게 사랑인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어떤 것은 화선지에 물이 젖듯이 스며 들곤 했다.
헤르만 헤세의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에는 이런 각양각색의 사랑이 등장한다. 계절에 대한 사랑, 기쁨에 대한. 어린 시절의 사랑. 그리고 사랑에 빠지던 순간의 기록과 차갑도록 식는 과정까지, 아름다운 문체와 함께 기록된 사랑의 빛깔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우리는 사랑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가 헌신적으로 사랑을 나누면 나눌수록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가장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통과해 나온 빛의 색은 수만가지로 번져 손끝을 물들인다. 사랑 역시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감정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통과하는 순간 마음은 온갖 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따라 가다 보면 어린 아이처럼 어쩔 줄 몰랐던 그 사람을 향한 사랑도 떠오르고 진한 후회로 물드는 엄마에 대한 사랑도 가만 가만 곱씹게 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다.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사랑에 문외한이라는 것을.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낯설어진다는 설레고도 씁쓸한 진리를 말이다.
이제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희망 없는 사랑 때문에 겪게 되는 고뇌와 불안과 겁내는 마음, 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정말 자그마한 뜻밖의 행운과 성공을 비롯한 그 모든 것 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연인이 없다고 하여, 사랑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 세포가 죽어버린 것 같다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던 순간에도 떨어지는 꽃잎을 가진 계절을 사랑했다. 떠나간 사랑에 못된 말을 하는 나를 위로해주던 친구를 사랑했고 인생의 끝이라도 만난 양 엉엉 울고 싶었던 그 때마다 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더욱 더 진해졌다. 사랑에 모양이나 느낌이 있다면 그것은 말랑 말랑 부드러운 베개와 같지 않을까.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고, 어떤 순간에나 간절한. 갑자기 몸과 마음을 내맡겨도 몸의 구석 구석에 감겨오는 그런 커다란 부드러움.
행복이란 인간이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그러한 감정을 쫓아버리거나 억누르지 않고 행하고 누리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다. 행복이란 곧 사랑이며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들을 영혼 속에서 스스로 느끼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움직임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부드러운 그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조금 더 사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리고 앓아 내었던 사랑도, 나를 강하게 만들며 앓아 낼 사랑도. 속절없이 내리는 비처럼 오는 사랑도, 서서히 스며드는 사랑도 그 모양 그대로, 그 순간의 나 그대로 끌어 안을 수 있도록.
우리는 대상과 사랑을 분리한다. 우리는 사랑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마치 우리가 유랑에서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랑 자체의 즐거움, 즉 여행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