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익위(勢高益危) 고사
: 사마천 사기열전史記列傳 '일자열전'
세고익위는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마천 사기열전 일자열전에 <도고익안道高益安 세고익위勢高益危>라고 나옵니다. '도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 라는 의미입니다.
일자日者란 하늘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사람입니다. 중국은 하,은,주대에 점치는 것이 성행했는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거나 전쟁의 향방을 결정할 때 조차도 점을 쳤습니다. 일자열전 다음 편이 귀책열전입니다. 귀책열전은 거북 등껍질을 이용해 점을 치는 방법입니다. 한나라에 들어서 태복이라는 점을 치는 관리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마계주司馬季主는 초나라 사람으로 장안의 동쪽 저자에서 점을 쳤습니다. 당시 중대부 관직에 있던 송충과 박사 가의는 같은 날 휴가를 얻어 함께 목욕을 하러 궁궐밖으러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걸으면서 담론을 나누다가 <역>이 선왕과 성인의 도술로서 인간의 감정에 통하고 있음을 찬양한다고 말하며 점치는 사람 중에 성인과 같은 사람이 있는지 시험을 해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사마계주의 점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송충과 가의는 사마계주에게 묻습니다. "선생의 모습을 뵙고 말씀을 들어 보니, 저희가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건대 일찍이 뵌 적이 없는 분입니다. 지금 어떻게 이런 낮은 곳에 살면서 이렇듯 지저분한 점치는 일을 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사마계주는 배를 움켜잡고 크게 웃으며 송충과 가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공들께서 말하는 어진 사람이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자입니다. 몸을 낮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며, 권세로 서로 끌어들이고 이익으로 서로 이끕니다. 도당을 만들어 바른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높은 영예를 구하고, 나라의 봉록을 받고 있으면서 사사로운 이익만을 꾀하며, 나라의 법을 어기고 농민들을 착취합니다.
관직을 위세 부리는 수단으로 삼고 법을 무기로 삼아 이익만을 찾아 포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행하니, 비유하자면 흰 칼날을 잡고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처음 벼슬에 나갔을 때에는 교묘한 수단으로 실력을 두 배로 보이게 하고, 있지도 않은 공적을 꾸며 말하며, 있지도 않은 일을 문서로 만들어 임금을 속입니다.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는 것을 좋게 여겨 벼슬에 임명될 때 어진 사람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말할 때에는 거짓을 보고하기도 하고, 적은 것을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높은 지위를 구합니다. 그리고 주연과 놀이를 일삼으며 미녀와 노래하는 여자를 좇느라 부모를 돌보지 않고, 법을 어겨 가며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텅 비게 합니다. 이것은 창과 활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도둑질하는 것이고, 칼을 쓰지는 않지만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속였지만 아직 그 벌을 받지 않고, 임금을 죽였으나 아직 그 벌을 받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높고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기열전 '일자열전'/김원중옮김
송충과 가의는 망연자실하여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을 다문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옷깃을 바로 여미고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작별 인사를 한 뒤 정신없이 발을 옮겨 나와 겨우 수레에 올랐으나, 수레 앞 가로 막대에 엎드려 고개를 떨구고 끝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사흘 뒤에 송충은 궁궐 문밖에서 가의와 마주치자 곧장 서로 잡아당겨 다른 사람을 피해 서로 탄식하며 대화를 합니다. "도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다. 혁혁한 권세를 가진 자리에 있으면 몸을 망치는 날이 오게 마련이다 道高益安 勢高益危. 점을 쳐서 정확하지 않은 일이 있어도 복채를 빼앗기는 일은 없지만, 임금을 위해 꾀한 일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몸 둘 곳이 없다. 서로 간의 거리는 멀어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의 차이만큼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무명은 만물의 시초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하늘과 땅은 넓고 크며 만물을 너무 많아 안전한 곳도 있고 위험한 곳도 있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나와 당신이 그 사람처럼 세상을 살 수 있겠는가? 그는 세월이 흘러도 더욱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장자의 뜻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송충과 가의의 대화에서 세고익위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됩니다.
오랜 뒤에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송충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도중에 되돌아온 일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가의는 양나라 회왕의 부傅(스승)가 되었다가 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권세에 의지한 사람들의 불운을 사마천은 지적했습니다.
반대로 권세를 등진 인물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자리를 선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순임금에게 선양을 하기 전에 처음에는 '허유'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허유는 선양 얘기를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고 산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주나라 때 백이숙제는 어떨까요? 백이숙제는 은나라 사람입니다. 은나라 고죽국(지금의 허베이성)의 왕자들이었습니다. 서로 왕자리를 양보하다가 산으로 들어가 숨어버려 결국은 가운데 왕자가 임금이 되었습니다. 은나라는 주왕에 이르러 주지육림 고사를 탄생시키며 나라를 파탄에 이르게 하였고, 이에 주나나 문왕(무왕의 아버지)이 덕망으로 사람들을 모았고 백이숙제도 문왕을 흠모하여 따르게 됩니다. 문왕이 죽고 그의 아들 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백이숙제가 말을 가로막고 무왕에게 의롭지 않은 일을 하지 말라며 말리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주무왕이 은을 멸망시킵니다. 백이숙제는 수양산에서 주나라의 음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습니다. 세상의 거대한 변화와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백이숙제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지금도 2천 년과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권력에 맛을 들인 공권력과 재벌들의 행태를 보면 씁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