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만에 천직을 찾는 법'을 보고 든 벼락같은 기획.
새벽 1시, 이 기획을 떠올리는 동안 머릿속에서 전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쏟아져서 내가 키우던 앵무새인 '아가'를 언제 새장에 넣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고. 방금은 새로 산 얼음 봉지 지퍼를 닫지 않은 채 냉동실에 넣다가 와르르 쏟아버렸다. 아 안 되겠다 싶어서 워드를 열고 머릿속 언어들을 적어 내려가기로 한.
‘3초 안에 천직을 찾는 방법’이라는 컨텐츠를 보게 되었다. 그 방법은 정말 간단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일이 바로 천직이라는 것.
정말 간단해 보였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 막 30대에 들어 조금 적응이 된 나는 최근 3년은 IoT/그 외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들고 제조업을 영위하는 방법에 대하여 내 모든 시간과 돈을 바쳤고, 그 이전에는 러시아에 관련된 것들은 죄다 섭렵하고 다녔었다. 20대 초-중반은 대학생 포럼단을 진행하며 홍보기획, 대외협력 실무에 관해 사수 없이 알아내는데 온갖 열정을 바치며 그 외 행사 기획과 진행을 하느라 365일이 바빴었다. 그 와중에 또 복수전공을 하고 전공도 아닌데 러시아 교환학생까지 다녀왔으니 나는 진정 그 모든 일을 열렬히 사랑했음에 틀림이 없다. 내 전공은 무역과 정치외교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치 있다 여기고, 반하게 되는 어떤 대상들에 열렬히 깊이 파고들고, 또 다른 분야로 넘어가더라도 이전에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변함없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나를 움직이는 가치와 애정에 관한 글.
어떤 분야던 한 번 사랑하게 되면
무엇을 해도 즐기며
깊이, 열렬히 몰두하는 특성을 지닌
분야의 제한이 없는 인간인 김로원.
그럼 스무 살이 되기 전의 나는?
나는 남들보다 독립이 빨라야했다. 실은 나는 유년기에 좀 많이 방황했던 타입인데 '연기자'라는 첫 업을 10대에 가졌다가 그만둔 경험으로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를 한참 못 찾고 있었다. 또한 우리 세대는 대부분 그렇겠지만 역시 가족에 대한 아픔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수밖에. 이사를 8번, 전학을 5번 갔다. 참 다이나믹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극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갔던 프로그램으로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접했고 직접 눈으로 보며 깨닫게 된 아프리카 3 국가의 상황을 보며 나는 재단을 만들어 기여하겠노라, 그럼 ‘사업’을 해야겠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대학은 상경계열로 가겠다 결심했고, 그리해냈다.
그 길고도 어쩌면 짧은 맥락들을 봤을 때 내 천직은 과연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내 삶 자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경험들, 극복들, 그럼에도 열렬히 세상을 사랑해왔던. 각 분야는 제너럴리스트이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론 스페셜리스트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분야들을 멈춘 적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게 뭐야?
‘뭘 하는 게 좋을까?’가 아닌 ‘하고 싶은 게 뭐야?’로 질문을 바꿨다. 내게 거짓 없이 정말 순수한 상태에서 원하는 그것은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언제나 고민하던 질문이었고 늘 답을 갖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찌해야 영감을 주는 건지 모르겠어서 질문을 늘 잡고 있었던. 하지만 답은 언제나 같았는걸. 그런 와중 간간히 누군가들이 내게 용기를 얻는다거나, 좋은 영향력, 선한 영향력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니 근데, 난 한 게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하며 의아 했던 것이, 나는 오픈된 공간에서는 나의 아픔을 자유롭게 꺼낸 적도, 어떤 극복이나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팠던 이야기들은 극소수만이 알고있고, 그 외의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은 점점 어려워졌었다.
그럼에도 나는 진심으로 늘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누군가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어 하니, 이런 모순이 있을 수가. 어떤 고생에 비롯되어 나오는 인간력은 특이점이면서 특별함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이 특별함이라 인정하기 까지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이 고유의 기억, 존재성을 스스로 결함이라 여긴 적이 있었기에, 만일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결함이 아닌, 특별함이라 말해주고 싶다.
나는 내 취향을 담은 이로운 상품이나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여 받는 이들이 감동을 받는 걸 사랑했다. 별 5개와 ‘감동’이라는 단어가 담긴 리뷰들을 볼 때 그렇게 행복했지만 그에 보답하여 더 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고 또한 수 많은 부품과 물성을 지닌 제품이란 특성이 내 마음을 담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상품이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마음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면 어떤가? 그것은 예술과도 닿아있다. 나는 순수한 마음을, 사랑을, 혼을 담아 어떤 걸 표현하는 걸 예술이라 본다. 지금 흘러나오는 나의 마음은 어떤 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애정과 연민, 아프고 유약한 지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내 특성을 어떻게 제품에 오롯이 담아낼 수 있겠어. 나는 그런 갈증을 꽤 오래 느끼고 있었고 마침 올해는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위한 과정이었을까, 나는 올해 코로나로 나가지도 못하는 시간 동안 내내 명상을 하며 꽃 속에 파묻혀 있었다. 멋지게 흐드러진 정원이 아니어도, 내 방, 거실에 한병 공간 정도만 채운 그 꽃 몇 송이들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충만히 느끼며. 아. 나는 물질적 기여도 의미있지만, 정신적 기여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된 것 같다. 사실 그게 본질적인 해결이란 걸 느끼기도 했고. 예로 내가 만든 IoT 알람 모그는 우울증이 있던 내가 아침이 오는 게 너무 싫지만 그럼에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최대한 자연스러우며 강제적인 루틴’을 만들어 주는 제품 UX를 통한 물리적 해결법이었다면, 올해 꽃과 함께 했던 명상들로 어느새 우울증이 없어져 버린 경험은 문제의 원인이 사라질 수 있는 본질적인 해결책이었다.
나는 결코 우울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명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마주하니 어느 순간 찾아오던 우울이라는 평생친구가 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 순수한 본래의 나를 찾고 현재 풍요와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한 타이밍과 과정이었다. 나는 이 경험이 올해 중 최고의 경험이라 여기고 있고, 소중한 사람들,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경험을 너무나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천직'이라는 질문 앞에 그 다음 단계를 전개하며 물질에서 정신적 기여로 넘어가기로 결정한다. 지금. 이순간.
지난번 참가했던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들었던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좋았다. 다소 딱딱한 ‘대표님’이라는 호칭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 편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거리라 느껴져서. 그게 내 본질에 가깝다 느껴져서. 이 천직이 뭘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삶의 목표랄까, 원하는 것을 합쳐보니 문득 이전에 어떤 분께서, ‘로원님의 스토리를 전시하고 싶어요’라고 제안 주셨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도 의아했지. 나는 수면장애와 우울증이 있던 시기에 '씻겨야 꺼지는 알람'인 내 제품을 기획했고, 실은 어떤 ‘누군가’들을 위해 만들었으나 그런 딥한 본래 마음을 딱히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스토리’라는 표현을 쓰셨는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새어나간 그 스토리 조차 타인에게 영감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전체를 꺼내보이고 싶다. 이제는 그럴 수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영혼을 꺾은 적 없는, 어떤 마음들을, 극복했던, 답을 찾은 고민들에 대하여.
그동안 나의 일반적이지 않았던 경험들과 배운 것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무겁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우리는 그럼에도 진실로 뭐든 할 수 있고, 우리 모두는 너무나 완벽하고 완전한 존재들이라고. 나를 방해하는 건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있음을,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진실하고도 내밀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개인전은 처음이지만, 나답게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복합 전시로써 전달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마음과 언어가 넘쳐난다.
내가 느낀, 걸어온, 현재 떠올려지는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 전시가 된다면, 누군가의 삶에 +1의 영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온 마음을 쏟을 것 같다.
마침 예정되어 있던 다음 양산과 해외 크라우드펀딩이 부품 수급 일정 관련으로 딜레이가 되어버렸고
나는 어쩌면 ‘위기’ 일 수 있는 것을 시원히 ‘기회’로써 활용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