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쩨리 Jun 20. 2021

공 2개 뗀 페라리를 만나다.

페라리의 첫 패션 컬렉션

저 하늘 높이 있던 말이 우리에게 조금 더 가까워졌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페라리(Ferrari)가 6월 13일 그들의 첫 패션 컬렉션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마라넬로에 있는 회사 본사, 페라리 공장 생산 현장의 427 피트 활주로에서 진행되었다.


처음 페라리의 컬렉션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는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그저 흉내 정도를 낸 게 아닐까 싶었지만 컬렉션 사진을 보고 나선 방구석에서 기립 박수를 칠 정도. 왜 기립박수를 쳤는지 조금씩 뜯어보자.



다양성의 실체를 만나다

© Ferrari

개인적으로는 디자이너가 어떤 패션 하우스를 거쳐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능력은 그가 현재 보여주는 컬렉션 자체에 있을 뿐 밟아온 길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보기 때문인데, 특히 이번 페라리의 컬렉션이 더욱 그렇다.


이번 컬렉션을 준비한 로코 이아오네(Rocco Iannone)는 아르마니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는데 이번 컬렉션에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그의 기량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다양성이다. 마치 회사에서 회사 방향성(이라고 포장하고 윗 분들의 입맛이라고 읽는다)때문에 브랜딩을 멋대로 하지 못한 능력 있는 디자이너가 온전히 오너십을 갖고 비로소 그의 능력을 보여준 느낌이랄까.


© Ferrari

그동안 수많은 패션 하우스들이 '다양성'을 운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제한적인 사이즈, 성지향성에만 치중한 젠더 다양성 등으로 끝난 반면, 페라리가 발표한 컬렉션은 80프로가 유니섹스인 데다 XXXS에서 XXXL에 이르는 엄청나게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이즈로 컬렉션을 출시했다.


아무리 마른 사람도, 아무리 사이즈가 커도 구입할 수만 있다면 페라리 컬렉션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사이즈 다양성 덕분에 진정한 '유니섹스'를 실현한 게 아닐까. 또한 전체적으로 옷 실루엣이 박시하면서도 스포티해서 체형과 성별, 나이와 무관하게 페라리를 입을 수 있다.




페라리를 진짜로 '입었다'

© Illustrator miP

한 번도 컬렉션을 발표해보지 않은 브랜드가 처음으로 컬렉션을 발표하게 되면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날 수 있다. 묘하게 브랜딩이 된 것 같으면서 단순히 로고 플레이로만 끝나거나, 브랜딩에 치중하느라 실제로 패션으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없다거나 한다.


그렇지만 페라리가 보여준 컬렉션은 페라리 그 자체다. 페라리를 먹여 살린 상징적인 스포츠카 모델들을 컬렉션 속 각각의 아이템에 담아냈다. 적절한 로고 플레이에 페라리가 즐겨하는 배색 컬러 스킴(Scheme)이 더해져 페라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페라리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 Ferrari

1940년대와 19050년대 잡지 표지에서 가져온 것과 더불어 그동안 페라리 아카이브에 숨겨져 있던 패턴들을 활용하여 '힙한' 여느 브랜드 못지않은 패턴 플레이도 엿볼 수 있다. 과하지 않으면서 페라리라는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예쁘다.

© Ferrari

영화가 PC적 요소를 담아내느라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렸다고 하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기 어렵듯이 사실 아무리 뛰어나게 브랜딩을 해도, 다양성을 담아냈어도 패션 자체로서 논할 거리가 없다면 멋진 컬렉션이라고 하기 어렵다.


페라리의 이번 2022 SS 컬렉션은 과연 페라리가 스포츠카 브랜드였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대담하고 과감한 라인의 디자인들에 페라리 브랜딩이 더해져 오히려 더 효과적인 시너지를 냈다.


© Ferrari

오버사이즈 재킷에 들어간 안전 조끼 반사 스트림, 잘 뽑은 스포츠카의 라인이 생각나는 에나멜 구두, 경주용 자동차에 사용되는 하네스 스트랩을 모방한 벨트 등 페라리다운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결코 과하지 않게 탄생시켰다.


© Ferrari

페라리는 이번 컬렉션을 내놓으면서 "페라리 브랜드 가치를 알아주는 젊은 남성과 여성 고객을 새로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꼭 페라리를 소유하지 않아도 페라리의 브랜드 가치를 지금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현재는 4060 남성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알리고자 하는 그들의 목표가 여실히 느껴지는 컬렉션이다.



컬렉션을 살펴보니 블룸버그, CNN 등 다양한 외신이 왜 앞다투어 다뤘는지 알 것 같다. 티셔츠가 약 27만 원, 코트가 400만 원대로 나왔는데, 그동안 억 소리 나게 하던 스포츠카 브랜드가 공을 2~3개 정도 떼고 등장한 셈. 그래서 분명히 비싼 건 맞는데 이상하게 싸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만 배면 완벽한 컬렉션이 아닐까.




글 / 이미지 편집 1103호 다락방

그림 Illustrator miP

https://www.instagram.com/minisemip
매거진의 이전글 투 톤으로 정의되는 샤넬 신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