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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수 Dec 31. 2019

새해의 주문

결국에는 같이 잘 살아보자는 기도.

  2019년은 12월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살이 떨리도록 추워진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12도나 내려가다니. 그럼에도 펑펑 내리는 눈을 만나기 이렇게 힘든 겨울은 또 처음이다. 애써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지만, 이맘때가 되면 일상적인 존재들을 되짚고 괜히 낯설어하는 건 끝에 이르렀다는 본능적인 감각 같다. 그런 괴리 비슷한 것들은 올해의 마지막에도 여전하다. 그 낯섦의 경험들을 뒤로하고, 올 한 해에 대한 소회를 약소하게나마 적어보려 한다. 유난스러운 작별의 인사 같은 건 아니다. 결국에는 같이 잘 살아보자는 기도로 마무리될 한탄과도 같은 글이다.


  2019년은 몸과 마음의 명랑함 속에 흘러간 한 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긋지긋한 군대에서 마침내 전역을 하고, 저 먼 타국으로 수련과도 같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 학교로 돌아가 치열한 학기를 마치기도 했다. 물론 태생부터 이어진 게으름 덕에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체화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신분에 몸담으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그 들뜬 마음으로 보냈던 순간들은 무척이나 기뻐서, 잠시라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금세 흐뭇해질 수 있다. 다뉴브 강의 10번 유람선을 타고 빛나는 야경을 보던 그 밤을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황홀함에 젖어있는 그때의 내가 된다. 이제는 아주 친해진 그 우연한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때를 생각하면, 밤이 떠나가도록 앉아있던 그 자리의 내가 된다. 여운에 잠긴 그 회상이 잘 되지 않을 때면, 열심히 찍었거나 혹은 실수로 찍힌 이미지들을 보며 명랑들을 끝끝내 지켜내곤 했다. 어떻게든 사수한 그 기분들로 한 해를 근근이 버텼는지도 모른다.

  그런 쾌활의 이면에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몸과 마음을 또렷이 할 시간을 도무지 마련할 여력이 없어 쉬쉬하던 것들이 조금씩 부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자신의 평안을 위한다는 이유로 애써 숨기도 하고, 조용히 침잠하기도 했다. 치유라고 생각되던 그 웅크림들이 진정 나를 위한 시간이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위장된 목적의 침묵들이 거듭되면서 속에는 어떤 공포들이 움트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스스로에 대한 묵인들이 해가 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들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해가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두려움 혹은 공포는 단순히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것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히려 커져만 가는 숫자에는 무감각해지는 듯 하지만, 그 나이 때의 청년들이 으레 하는 것들을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지점에서 두려움은 찾아온다.

물론 내 삶의 기준을 타인의 것에 맞추는 건 마치 청춘의 몰락같이 여겨지는 것을 잘 안다. 삶에 대한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태도가 훨씬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해낼 확률이 더 높은 것도 잘 안다. 많은 명사들이 단어만 바꿔서 말하는, 그런 진취적인 모습들은 미디어를 통해 익히 잘 배워놓았다. 하지만 기형적인 문화와 인식들이 켜켜이 쌓인 이 곳에서 그들이 바람직하다 여기는 모습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기에는 여러 모로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두려움과는 살짝 결을 달리 하여, 그 나이에 걸맞은 책임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과 쓰는 문장들, 행사하는 권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들은 되게 부끄럽고 사소한 실수로 인해 오래도록 기억되곤 하는데, 그런 순간들을 줄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게 된다. 불필요하고 거짓된 말과 행동들을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신년의 다짐들을 곱씹게 되는 듯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소망들은 생각보다 효과가 크다.


  그런 이유로, 몇 가지 소망들을 생각해본다. 언제든 떠올릴 때마다 힘이 될 만한 것들을 소망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다가오는 것들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명랑을 유지해내던 1년의 시간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나에게 왔다. 그것들은 나를 수렁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 수렁 속에서 날 건져 올리기도 했다. 앞으로 내게 날아올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년에는 불쑥 찾아오는 그들에게 의연한 마음으로 악수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편안하고 너그러워진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두 번째로는,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음식들을 아끼는 사람들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면 좋겠다. 그것들을 여유로이 즐길 수 있도록 넉넉하게 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이 깃들기를 바라는, 이 웃긴 마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기대하게 한다. 재정난이 눈앞에 놓였을 때, 단기적으로는 그런 기대들로 살아가는 것도 나름의 목표가 된다. 당첨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매주 복권을 사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모두가 좀 잘 되기를 바란다. 뻔한 말이라 대체할 만한, 근사한 말들을 찾았지만 아무래도 없다. 그냥 모두가 잘됐으면 싶다. 올 한 해에는 조금 덜했지만, 근 몇 년 동안은 우울의 그림자가 내내 드리웠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들 좀 잘 되고 잘 풀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거듭하게 되는 것 같다. 겉치레 같은 말인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서로에게 안부 묻듯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의 기쁨은 결국 나에게도 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이 세 가지의 막연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눈먼 희망을 내걸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잘된 일이라 생각하는 건, 요즘 일상에서 포착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내면서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는 일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자그마한 감사들 속에 살아보려 하고 있다. 혼자 기타를 치다가도 괜히 신이 나서 열심히 흥얼거릴 때, 냉장고에 남아있는 딱 한 컵의 우유를 내가 마셨을 때. 그런 사소한 만족들 말이다. 참 잘된 일이다. 이런 마음들을 새해에는 꼭 잊지 않고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함께였던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더 보고 읽는,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다. 나열하다보면 끝없이 늘어날 이 새해의 주문들을 이제는 마치겠다. 고생 많았고, 앞으로도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생하도록 하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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