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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Aug 14. 2023

영국 바이어가 토트넘 사람일 때 벌어지는 일

석유화학업계에서 고객과 손흥민으로 라포 형성해본 사연


“Do you like Spurs?”


사무실에서의 평범한 하루였다. 매일 같이 주고 받는 이메일에 내 눈을 사로잡는 한 문장이었다. 발신자는 Russell Brill. 영국 출신의 고객이었다.



나는 석유화학업계에서 해외영업일을 하고 있다. 전세계 사람들과 매일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며 한국의 석유화학 제품을 해외로 수출한다. 매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가격 전쟁을 벌인다. 언제나 10불, 20불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스몰톡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빡빡한 업무 시간의 단비같은 존재다.



러셀과도 가격 네고를 꽤 했었다. 수출 가격을 두고 우리는 늘 첨예하게 대립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처럼 창과 방패의 형국을 늘 보여주었다. 돈에 있어서는 그 어느쪽도 양보하기 힘든 일이었다. 폭풍같은 가격 전쟁이 끝나면 스몰톡이 이어졌다. 그는 내게 축구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쏘니를 좋아하는지도 물었다. 영국 토트넘에서 태어난 그는 나보다 손흥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토트넘으로 라포 형성을 했다.



얼마 전, 메일과 전화로만 연락하던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불고기를 사주며 진솔한 토크를 이끌어냈다. 그날 만큼은 가격 전쟁 없이 러셀의 인생 이야기를 듬뿍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축구에 진지하게 임했던 이야기, 부상으로 인해 프로 축구선수 입단이 좌절된 이야기, 축구선수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실업팀에 입단한 이야기, 그리고 생계를 위해 석유화학 트레이딩 일을 배우게된 이야기. 불고기를 앞에두고 그의 인생을 꽤나 가까이서 조명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 토트넘 스타디움에 같이 있기를 약속했다. 그가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에는 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가격 전쟁으로 뾰족하게 시작했던 우리의 관계가 불고기와 토트넘을 만나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완성됐다.



러셀은 가격전쟁이 없는 날에도 종종 나에게 문자를 보낸다. 내가 집에서 토트넘 경기를 보고 있는 사진을 보내면 그는 실시간으로 경기장에서 직관하고 있는 모습을 자랑한다. 왓츠앱에는 토트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담겨있다. 해리 케인을 보내며 슬퍼하는 우리 둘, 캡틴 쏘니를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 둘. 이제는 불고기 없이도 마음이 통한다. 나와 러셀을 이어준 캡틴 쏘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토트넘에 간헐적으로 중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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