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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Jan 04. 2024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카톡한다면

슬프고 아름답게 선 지키기


얼마 전 성수동에서 대학교 후배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연애에 관해 얘기했다. 후배는 너무 잘맞는 사람을 만나 좋은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과 가치관이 맞아서 대화하는게 얼마나 재밌는지, 라이프 싸이클은 어떻게 비슷한지 신나서 자랑하는 그 행복한 표정이 부러웠다. 반면, 나는 너무 안맞는 사람을 1년 넘게 만나다가 지겹게 싸우고 결국 헤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내 본격적인 고민을 후배에게 털어놨다. 헤어지고 나서 한번 더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1년을 넘게 만난 연인과 안좋게 헤어진게 너무 아쉬워서 얼굴을 보며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미련이 있거나 다시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고마웠고 미안했다고, 노력해줘서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모두 말렸다. 어차피 남이 될 사람한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거였다. 평생 안볼 사이가 될 사람을 그냥 놔주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만장일치 합의가 됐고 나는 좀 다른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후배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냥 연락해요. 어차피 오빠는 선 지킬거잖아요.”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좋았던 날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한번에 단절을 할 수 있겠어요.”


후배가 말했다. 후배는 내가 선을 잘 지킬사람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고 했다. 관계를 시작하는 것 만큼이나 마무리도 중요하다고 했다.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혼자 찬성표를 던졌다. 후배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혔다. 그녀는 힙합이다.



한국사람들은 관계에 있어 선을 중시한다. 남녀사이에 일정 기준의 선을 넘어야 비로소 연인이 될 수 있다. 중간은 없다. 헤어지면 당장 그 선 밖으로 완전히 달아나야 한다.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하면 이불킥이고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먼 사이가 되는게 미덕인 것이 K-연애다. 이게 정말 맞나.



모든 관계에는 선이 있다. 상대방이 나를 허락할 수 있는 범위를 존중해주는 것. 무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제 1 원칙이다. 그 선을 잘 지켜준다면 헤어진 연인 사이라해도 연락하는 것이 결코 이불킥이 될 수 없다. K-연애 방식을 뛰어 넘어 나만의 방식으로 매듭짓고 싶었다.



결국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했다. 그녀도 나와같은 말들을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아름다웠고 너무 잘해줘서 고마웠다고. 이제는 좋은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동안 우리 사이에 녹아있던 선이 비로소 다시 무수한 점들로 연결됐다. 슬프고 아름다운 선이 다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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