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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Apr 10. 2024

처음으로 10km 마라톤 완주 해보면 느낄 수 있는 것

2024 영주 소백산 마라톤 대회 참가 후기 

내 친구는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광팬이다. 친구는 언제나 처럼 [나 혼자 산다]속 영상 클립을 내게 공유했다. 기안84의 소박하고도 담백한 도전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서 기안은 풀코스 마라톤 도전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본 그 영상에 나는 점점 빠져 들었다. 42.195km 을 완주 한다는 그 감정의 서사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단순히 웃어 넘길 수 없었다. 우리도 해보자. 계산없는 다짐이 바로 이어졌다. 



이왕이면 내가 안가본 곳에서 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길이 아닌 완전하게 낯선 길에서 뛰며 설레임을 느끼고 싶었다. 여러 일정 중 '2024 영주 소백산 마라톤'이 눈에 들어왔다. 경상북도 영주는 내가 생각한 적절히 낯선 환경에 완벽히 부합하는 장소였다. 나는 바로 링크를 친구에게 보냈다. 그렇게 우리의 마라톤 대회 데뷔 날짜는 4월 초로 정해졌다. 



대회까지 3개월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생애 첫 마라톤 대회를 나간다는 기분이 묘했다. 대회를 준비한다고 평소보다 유산소 운동의 비중을 늘렸다. 60분 이상 쉬지 않고 뛰지 않기를 해보기도 하고 주 1회 씩 축구를 꾸준히 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운동에 목적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의 달리기는 무의미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명분이 생겼다. 4월 10km 마라톤 완주를 위해 훈련한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대회 하루 전날. 서울에서 3시간 정도를 달려 영주에 왔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맛집을 찾아 나섰다. 평점이 높은 돼지고기 구이집을 들어갔다. 대충 찾은 집인데도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벽면에 걸린 수많은 연예인들의 싸인이 맛집 이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내 짐작이 맞았다. 고기는 역대급이었다. 최고급 퀄리티를 보장하는 대구에서 온 한돈이었다. 지방은 향긋하게 구워졌고 미나리와 함께 먹으니 건강하게 미식을 즐길 수 있었다. 경북 사투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직원들도 모두 친절해서 더 기분이 좋았다. 내일 10km를 완주할 힘을 얻고 있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대회 시작 장소인 영주 시민운동장에 도착했다.사람들은 북적이고 EDM 음악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운동장이 월디페 정도로 느껴졌다. 심장은 두근대고 도파민은 샘솟고 있었다. 나는 오늘 꼭 완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회장에는 정말 다양한 참가자들이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진심이구나. 마라톤을 더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컴페티션이었다. 풀코스 완주를 50회 했다는 마라토너의 플랭카드도 보였다. 



풀코스 주자들이 가장 먼저 라인에 섰다. 왠지 모르게 나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총성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됐다. 그 다음은 하프코스 주자들이 출발했다. 드디어 10km 주자인 우리의 차례가 왔다. 나와 친구는 들뜬 표정으로 서로를 격려했다. 10km 주자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며 우리는 완주를 다짐하는 발걸음을 적당하게 굴렀다. 산뜻한 기분을 안고 시작의 마음을 가져갔다.  




나는 태어나서 10km을 한번도 완주 해본적이 없다. 해본적이 없으니 이날도 내가 10km를 완주할 것이 불투명했다. 사실 대회 시작 전주에 축구를 하다 오른쪽 허벅지 근육을 다쳐서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크게 못했다. 부상 이후 며칠 동안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었다. 그래서 대회까지 최대한 다리를 아끼며 참가했지만, 완주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최대한 왼쪽 다리 근육을 사용하는 느낌으로 걷듯이 뛰어야 했다. 이곳에 온 이상 나는 오늘 10km을 꼭 완주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깅하듯 뛰니 다리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비록 10km 주자들 사이에서 최하위권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순위 경쟁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 나의 목표는 반드시 완주이기 때문이다. 왼쪽 다리에 더 힘을 주고 천천히 달려가니 영주의 풍경이 보였다. 처음 뛰어보는 이곳의 생경한 경관.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영주의 오래된 간판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며 5km을 돌파했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6km이 넘어가며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었던 허벅지 근육은 의외로 잘 버텨 주었으나, 발가락이 문제였다. 헐렁한 신발 탓에 발가락이 신발에 쓸리며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레이스가 끝나면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로 변할 발가락이 상상됐다. 그래도 어쨌든 참아보자. 그런 생각을 하며 달렸다. 7km이 지나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주 교통경찰 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느긋한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화이팅 하시소-!' 하는 것들이 정겹게 힘이 됐다.  



마지막 3km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발가락의 고통을 참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낯선길을 뛴다는 설레임과 영주 시민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것이라고. 평소에는 못하는 일을 나는 지금 어찌어찌 해내고 있었다. 마라톤에서 처럼 나를 늘 응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승선이 점점 다가올수록 이어폰을 꼽지 않은 내 귀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는 것 같았다. '마른 하늘을 달려'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라는 노래가 맴돌며 엔돌핀이 솟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결국 10km을 완주했다. 평소에 우리는 단 한번도 10km를 뛰어본적이 없다. 완주라는 명확한 동기부여와 사람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완주를 하니 뿌듯한 성취감이 몰려왔다. 앞으로의 우리 인생도 이번 마라톤 처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루고 싶은 것을 명확히 설정하고 동기부여를 가져갈 것. 그리고 주변의 응원을 받을 것. 그리고 나도 응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응원을 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리기는 달리기로 끝나지 않는다. 삶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 였을까? 가을이 되면 또 낯선 곳에서 이름 모를 이들의 응원을 받고 더 긴 거리를 완주 해내고 싶다. 영주는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단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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