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육아, 조력자들
카페에 앉아 있는데,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카운터에서 음료를 가져오던 여자가 달려와 유아차에서 아기를 안아 올렸다.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커피는 추락. 나는 그 엄마의 눈이 일렁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쿠 이를 어째’하고 말 일도 아기와 함께 있을 땐 눈물부터 났다. 나는 그랬다.
‘건드리기만 해 봐라 울어줄 테다’ 심정이 된 건, '잠만 푹 잘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시절을 지나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침 6시, 배우자는 출근하고, 곧 일어나 배고픔을 대성통곡으로 표현할 아이를 위해 나는 채소를 삶고 고기를 다졌다. 엄마의 손길과 눈길이 잠시라도 멈추면 안 되는, 사랑스러운 아이와 오늘도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게 미션처럼 느껴졌다.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잠시 손 빌릴 가족도, 지인도 없으니 정말 단. 둘. 뿐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미션 중 찬스타임은 오전 10시. 아이 간식만 챙겨 가면 30분은 보장되는 집 근처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간다.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이모들 때문이다. 유리문 너머 우리가 보이면 하얀 모자 휘날리며 문을 열어주는 카운터 이모, 오븐 있는 제빵실을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이노옴~’ 호통 쳐서 이놈이모라 불리는 샌드위치 만드는 이모, 얼굴이 펭귄이나 달로 변하는 어플을 켜고 아이 얼굴 옆에 찰싹 붙는 알바 누나. 춤추는 뽀로로 인형이 있는 케이크 앞에 서서 아이가 엉덩이를 흔들면 이모들 얼굴이 활짝 펴진다.
“웃을 일 없는 세상인데 니 덕분에 웃는다”
오후에도 또 한 번 찬스가 있다. 우리는 자주 대형마트 3층을 어슬렁거렸는데, 어느 날인가 가방, 시계, 정장 코너에 있는 이모들이 말을 걸어왔고, 아이의 변화와 옷차림, 하나둘 내뱉는 단어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가방 이모네에서 오래 머문 건 이모가 캐리어 여는 법을 아이에게 알려줬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얼른 갔다 오라고 말하면 나는 언제나 괜찮다고 했지만 왠지 안심이 됐고, 1층에서 장을 보면서 귤이나 초콜릿을 더 사곤 했다.
어릴 때 즐겨보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풀’에서 폴은 납작해지면서 리나가 잡혀 있는 다른 세상, 마왕의 성으로 이동하는데, 그맘때의 내가 딱 그랬다. 아이를 보살펴야 하는 임무를 띠고,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공간으로 뚝 떨어진 기분. 납작해진 채로. 그러니까 빵집과 마트는 나와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얼굴 마주친 1분, 손님 없는 3분, 틈틈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미션을 계속해나갈 힘이 됐다. 기다렸다고 반겨주고, 며칠 안 보이면 왜 안 왔냐 물어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나’라는 존재가 여기 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당시에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발길이 마트로, 빵집으로 향했는데, 돌이켜보니 그랬다.
<새벽 세 시의 몸>에 인용된 글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시가키 섬의 주민은 노인이 산책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따뜻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배회하는 노인을 없앴다’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우에노 치즈코) 배회를 ‘산책’으로 만든 건 주위 사람들의 눈과 관심이었다. 동네 이모들 덕분에 우리의 배회도 ‘동네 마실’이 되었다.
며칠 전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이다 아이와 이모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카운터 이모가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내 앞에 놓아주며 아이를 안고 간 날이었다. 민폐가 될까 봐 언제나 조심스러웠던 나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했다가 곧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빵을 씹었다. 입 안 가득 따끈함. 흐릿해진 시야로 이놈이모에게 안겨 음료쿠폰 도장을 찍고 있는 아이 모습이 눈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핸드폰 들어 찍은 사진이었다. 또 하나를 깨달았다. 아.. 그녀들은 나를 돌보고 있었구나.
이제 아이는 다섯 살이 되었고, 옆 동네로 이사해서 이모들 보기는 힘들지만, 나는 사람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배회하는 누군가에게 시선의 기운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아기를 달래다가 커피를 쏟은 엄마의 젖은 천 가방을 닦아주면서도 그랬다. 그때 건너에 앉아있던 40대 여성이 대걸레를 가져와서 바닥을 밀었다. 알바생은 커피 한 잔을 새로 가져왔다. 아기 엄마의 바지에는 넓은 얼룩이 생겼다. 차가울 텐데... 연신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하던 그녀가 이 순간만이라도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