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망디 Oct 11. 2023

과일의 왕 두리안을 찾아서

찐한 말레이시아의 기억 (1)

동남아 여행의 꽃은 무엇일까?


동남아 여행의 매력은 한국에서 쉽게 먹기 힘든 다양한 열대과일을 저렴하게 많이(양, 종류 모두)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남아 어느 곳이든 길거리에서 쉽게 과일장수를 만날 수 있다. 길거리가 아니더라도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먹기 편하게 손질된 과일들을 찾을 수 있다.


잘 익은 노란 망고이든, 덜 익은 푸릇푸릇한 녹색망고든, 마늘처럼 육쪽으로 갈라져 달콤한 과육을 맛볼 수 있는 망고스틴이든, 자르면 밤하늘의 별처럼 뾰족뽀죡하고 상큼한 스타프루츠도 모두 동남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동남아에서 유명한 과일이 모두 맛있는 것으로 유명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열대과일 중에서 한국인에게도 정말 유명한 과일이 하나 있다. 바로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는 '두리안'이다. 두리안을 한 줄로 설명하면 '천국의 맛과 지옥의 향을 가진 과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드럽게 사르르 녹는 크림 같은 과육에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암모니아 냄새

나는 그렇게 두리안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처음 두리안을 실물로 보게 된 건 2019년의 어느 겨울이었다. 운이 좋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해외계절학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계절하기를 들으러 방문한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였다. 

사시사철 따뜻하고 뜨거운 날을 가지고 있는 말레이시아에 정확히 2018년 12월 31일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칼바람 불던 겨울이었는데 비행기로 6시간 남짓 날아오니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계절이 되었다. 공항밖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습하고 뜨거운 공기에 숨을 흡- 들이마셨다 후-하고 내뱉었다. 폐까지 습하고 축축한 공기가 들어갔다 기관지를 훑고 지나갔다.


이게 동남아의 공기구나. 지금 내가 새로운 지역의 향을 맡고 있구나. 지금 폐에 뜨거운 열대지역의 공기가 처음 들어갔구나.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나는 새로운 여행지(이자 학습터..)를 후각과 촉각으로 기억에 담았다.

학교생활은 따분한 듯 즐거웠다. 해외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랬던 것 같다. 학기 중에 학교를 다니면서 종강하기만을 바랬는데, 종강하자마자 다시 다니는 새로운 학교는 여전히 지겨웠다. 한국에서 보내는 대학수업과 다른 것은 배우는 분야정도만 달랐을까. 내가 생각한 낭만 있는 교환학생 생활은 아니었다.


4주간의 학교생활 중에서 가장 들떴던 날은 주말과 수요일이었다. 주말은 학교 수업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하루를 말레이시아 생활로 채울 수 있었고, 수요일은 오후 5시부터 학교 근처에서 열리는 야시장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 아파트에 살던 친구들 말로는 가끔 밤에 아파트 주면에 먹거리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솜사탕은 물론 꼬치, 순대, 치킨 등 정말 다양한 것들을 팔고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 평생을 산 나에게 야시장은 그야말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시장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또 경험하기 힘든 야시장을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모든 수요일에 다녀왔다.


어느 날에는 한국에서 함께 떠난 친구들과, 또 어느 날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야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며 모르는 음식을 사서 먹어보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정해진 시작시간이 없는 야시장은 그저 적당한 때에 방문하면 되는 듯했다. 해가 질 무렵, 뜨거웠던 바람이 조금 미지근해졌을 때쯤 야시장의 부스들이 하나하나 세워졌다. 야시장 부스가 세워지고 음식을 파는 부스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할 때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동네 주민들, 함께 기숙사에 묵고 있는 기숙사 동지들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함께 했다. 


야시장에는 없는 것 빼고 모든 것이 있었다. 핸드폰 케이스, 액세서리, 옷 등은 기본이고 한국에서 듣지도 보지도 모지 못한 찐한 현지의 음식들이 있었다. 두유로 만든 디저트, 열대과일로 만든 국민음료수(약간 수정과 같음), 한참 유행했던 우유튀김, 락사, 취두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을 구경하며 야시장을 마음껏 누볐다.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었던 우리들이 가장 자주 들린 곳은 바로 과일가게였다. 말레이시아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과일들을 좌판에 펼쳐놓고 판매하고 있는 과일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필수이자 마지막 코스였다. 


야시장 과일가게는 마트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이 살 수 있었다. 또 가끔 마트에서 보기 힘든 종류의 과일도 더러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크고 무서운 과일이 천막에 한편에 대롱대롱 장식이 되어있었다. 내 머리통보다 큰 크기의 열매였다. 그 열매는 전체적으로 잔잔하게 뾰족한 가시가 뒤덮어져 있었는데 어디서 본 두리안의 모습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냄새로 악명이 높은 두리안 답지 않게 그 열매 주변에는 악취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과일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두리안의 느낌이 아니어서 같이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It is Durian?"


그 친구는 웃으며 말해줬다. 


"This is not a durian. this is jackputts. Durian is a smelly."



잭푸르츠라니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과일의 이름이었다. 신기한 모양새만큼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묘한 이름을 듣고 한참 그 과일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친구가 심각하게 '두리안을 찾고 있냐'라고 물어보았다. 내 대답에 따라 어떻게든 두리안을 찾아줄 것 같은 심각한 얼굴을 했다. 한국이란 먼 나라에서 온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얼굴이었다. 과일가게주인분과 말레이시아로 이야기를 한 친구는 나에게 시무룩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You can't buy durians now. Do you want durian?'


"No. I looking for Mango and mangosteen."


그제야 친구는 웃으면서 내가 망고스틴을 고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망고스틴을 살짝 눌렀을 때 쉽게 눌러지는 것이 잘 익은 망고스틴이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내가 방문한 1월에는 아직 망고스틴철이 아니라서 맛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아까 들은 두리안이 야시장에 없다가 귓가 어딘가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왜인지 나는 이 없는 게 없는 야시장에서 두리안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석구석 부스들을 잘 살피면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두리안을 먹어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사진은 페낭


이전 04화 자매의 여행이 남기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