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망디 Aug 30. 2024

자매의 여행이 남기는 것

옷 하나로 싸워도 과자 하나로 풀어지는 것이 바로 ㅅr랑 아닐까요.

어느 자매들이 그렇듯 나와 동생은 태어나 철이드는 순간까지 죽도록 싸우며 자랐다. 싸웠다는 말보다 동생이 나에게 반항하면 일방적으로 사랑의 마사지를 해주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살갑게 지냈던 사이였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점점 동생과 멀어졌다.


싸우는 계기는 언제나 참 사소했다. 가장 기억나는 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한 대 밖에 없었는데, 동생과 서로 시간을 나누며 컴퓨터 게임을 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늘 그렇듯 1분 단위로 칼같이 시간을 맞출 수는 없는데, 어렸던 나와 동생은 그것을 절대 이해하거나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서로의 컴퓨터 사용시간이 침범당하는 순간 바로 전쟁이 시작됐다.


제법 격동의 사춘기를 보내며 동생과 나는 눈만 봐도 서로 으르렁 거리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얼굴만 봐도 열내고 화내던 우리의 사이가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동생과 떠난 여행이었던 것 같다. 처음 일본여행을 시작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동남아 여행, 대만 여행 등 여행의 시간들이 쌓이며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이가 됐다.


익숙한 한국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문화권, 언어권으로 떠나는 여행은 일종의 무인도 살아남기와 같다.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우리의 유대는 점점 더 강해지고 애틋해진다. 마음속 깊게 숨어있던 가족애도 아주 약간 싹튼다. 물론 티는 안 나지만.

바다 건너온 토마토주스

우리의 ㅅr랑이 깊어졌다는 걸 여행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이제 어른이 된 동생도 언니 없는 여행을 제법 다닌다. 자신의 친구들과 떠나기도 하고 혼자 불쑥 떠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동생에게 부탁(요구)을 하면 동생은 싫은 티를 내지만 돌아오는 길에 부탁한 물건을 꼭 사다 준다. 내가 지나가듯 말했던 것, 관심 있는 것을 기억했다가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사다주기도 한다.


태어난 순간 이래로 무조건 내가 챙겨주기만 해야 할 것 같은 동생이지만 이럴 때 나는 동생에게 대견함을 느낀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드디어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찐하게 올라온다.


얼마 전 동생에게 찐한 ㅅr랑을 느꼈던 것은 동생이 친구들과 다녀온 일본여행에서였다.


동생이 일본여행을 하고 있던 당시에 자주 보는 유튜버가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라는 영상을 올렸는데, 그 영상에서 '한국은 토마토를 과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토마토 주스가 단편이고, 일본은 토마토를 채소로 생각하고 있어 토마토 주스가 짭짤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영상을 본 나는 호기심이 일어서 당장 동생에게 카톡을 날렸다. [너 일본이지, 올 때 토마토 주스 하나 사 와봐], 카톡을 본 동생은 [ㄴㄴ]라고 보냈지만 여행이 끝나는 날 밤 일본 편의점에서 영상통화가 왔다.


"언니, 토마토 주스 어떤 거? 이거?"


늦은 밤 비행기에서 내려 집에 온 동생이 선물이라며 내게 들려준 봉투에는 웬 큰 비닐뭉치가 있었다. 이 뭉치는 터짐 방지 처리를 한 100엔 내외의 토마토주스였다. 짭짤한 일본식 토마토 주스는 그날 밤 동생의 손에 들려 뽁뽁이와 지퍼백으로 밀봉되어 한국에 있는 나에게 도착했다.

내 동생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서 먹은 토마토주스의 맛은 정말 짭짤한 토마토 야채 주스맛이었다. 걸쭉한 토마토 주 스는 어쩌면 나와 동생의 관계와 닮아 있었다. 가볍다고 말하기엔 진득하고, 달콤하다고 말하기엔 짭짤한 그런 애증이 넘치는 관계


동생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 느닷없이 토마토주스먹을 때라는 게 참으로 웃기고 우습다.

이전 03화 내 말이 다 맞다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