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 여행을 함께한 이유
우리 자매는 함께 여행을 자주한 편이다. 작년(2022년)에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러했지만, 2018년에도 동생과 함께 순례길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서로의 첫 해외여행을 함께한 사이이다. 서로 짜증 내고 욕을 하면서도 10년을 함께 다녔다.
가장 처음 여행을 함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딱 9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해외여행'에 엄청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로망의 기원은 10년보다도 더 오래 전인 13년 전인 고등학교 때다. 매일 오전 8시에 등교해 오후 10시까지 학교에 갇혀 있던 순간, 나를 위로해 주던 것은 누군가의 여행이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하고 정문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을 나는 세계 여러 곳을 누빈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했다. 학교 도서관에 구비된 여행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나는 자유를 찾은 대학생이 되었을 때 반드시 해외로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100만 원 남짓한 여행경비를 마련했다. 20살의 여름에 만든 여권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될 순간이었다.
"엄마, 나 이번에 방학하면 일본으로 여행 갈건대 혼자 갈 거야."
"응? 혼자 간다고? 위험하지 않아?"
" 괜찮아. 요즘 여행 가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잘되어있대. 조심하면 괜찮겠지."
엄마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혼잣말인 듯 아닌듯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래. 젊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는 게 좋지."
엄마가 처음으로 해외여행 나가는 딸자식을 응원해 줬던 이유는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이왕이면 젊을 때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축복이자 불행이었다. 여행을 떠난다고 말을 한 이후 엄마는 가끔 진짜로 여행을 갈 거냐, 언제 떠날 거냐고 물어보았다. 학기 중에 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 학기가 종료된 1월 즈음에 갈 생각이라고 대답을 하니 엄마는 '잘됐다! 그럼 민정이랑도 같이 여행 다녀와! 걔도 방학이잖아.'라고 말하며 동생의 일본행을 적극 지원해 주셨다.
동생의 비행기값도 일본에서 쓸 생활비도 엄마가 다 내어줄 테니 동생과 함께 다녀오라고 했다. 당시의 나는 정말 억울했다. 나는 주중에는 학교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8시간 내내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겨우 떠나는 일본이었는데, 동생은 그저 내가 일본에 간다는 이유로 비행기티켓이 생기다니. 엄마의 말 한마디로 쉽게 일본을 떠날 수 있는 거였다니. 그동안 시간에 쫓기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던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그 기억의 끝은 분노였다.
"아니, 왜 내가 일본까지 가서 박민정이랑 같이 다녀야 되는데!"
분노와 억울함. 이 두 단어로 그때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어렵게 쟁취한 것을 쉽게 얻은 동생에게 화가 났다. 동생들이 태어나 지금까지 계속해서 동생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데 이제는 나의 첫 해외여행까지 동생이 따라붙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일본에 가게 되어 좋다고 멍청하게 웃는 동생의 얼굴을 볼 때마다 열이 올랐다. 21살의 나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첫 해외여행에 동생이란 짐이 붙는걸 단 1g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동생과 함께 일본에 다녀오라고 말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손으로 동생의 일본행 비행기를 내 손으로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