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리운 이유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 다녀왔다.
첫 순례길은 적은 돈으로 유렵에 오래 있을 곳을 찾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잘 짜여진 트래킹코스를 발견했기에 '싸고 길게 유럽에!'라는 모토로 아무런 기대없이 다녀왔다. 두 번째 순례길 여행을 선택한 것은 정말로 단순한 순례길의 생활이 그립기 때문이었다. 찬란한 태양아래 하루종일 걸으며 오렌지주스와 맥주를 먹는 그 시간으로 다시 초대되고 싶어서 그곳을 다녀왔다.
복잡하고 긴밀한 21세기 현대인으로 살면서 종종 산티아고 순례길이 그립다.
그곳에서 내가 하는 생각이라곤 '오늘 도착하면 옷을 빨아야겠다. 아침으로 뭐 먹지, 점심은 만들어 먹을까, 오늘은 어떤 알베르게에서 잠을 자지?'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에 충실한 생각들 뿐이다. 새벽같이 눈 뜨고 짐을 챙겨 걷고 쉬다가 잠에 들면 다시 눈을 떠 길을 걸을 준비를 하는 곳이기에. 적어도 내일도 나는 그 길에서 걷고 있을 것이고, 다음 주에도 순례길 위에서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순례길을 떠난 편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일 할 일, 다음 주에 할 일, 일주일 뒤에 할 일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매일 다른 것들을 보고, 누리고, 즐기되 치열하게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서 골몰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찾은 선택지들 중에 가장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 보고 가장 '최선의 것'을 찾는다.
A를 선택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어야 할 것. B를 선택했을 때, 내가 얻을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을 비교하며 '머릿속'으로만 쉴 새 없이 노동 아닌 노동을 한다. 내일 내가 얻을 것에 대해서, 1년 뒤 나의 미래를 위해서, 5년 뒤의 나의 목표를 위해서 오늘의 가장 최고의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미래의 답을 현재에서 찾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을 때와 정 반대로 살고 있다. 순례길에서는 몸이 고돼도 정신은 편안했다. 요즘의 나는 몸은 편하고 정신의 에너지가 고갈됐다. 정신력이 바닥을 칠 때마다 나는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고 싶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살과 단순히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에 집중했던 날들이 그립다. 시야가 닿는 곳 그 너머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푸르른 밀과 포도밭사이를 걸었던 시간들이 그립니다. 거대한 자연의 한가운데에 내딘 한 걸음이 티가 나지 않더라도 결국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던 날들이 떠오른다.
걷다가 마땅히 쉴 곳을 찾지 못해 흙바닥에 주저앉아도 괜찮았다.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며 체력을 비축하는 시간은 내 뒤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앞서 나가는 것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시간이다. 순례길에서 쉬고 있는 자와 걷고 있는 자에 사이에서 경쟁은 없다. 그저 우리는 한 마음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걷고 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주 단순하게 한 걸음을 더 걸을 수 있는지, 없는지만 고민했던 그날들이 무척이나 그립니다. 걸음 하나하나에 수십 개를 고려하고 또 고려해서 겨우 한 걸음 내딛는 오늘 속에 있어서 나는 다시 또 그날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