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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Jun 11. 2023

내 말이 다 맞다니까?

그러니까 한국인 습성을 곁들인...

침대에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던 때였다. AI가 나에게 맞는 영상들을 계속 추천해 주지만 볼 만한 것들이 없었다. 그날도 의미 없이 유튜브 피드를 새로고침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한국인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한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심리학과 교수가 말하는 한국인 특징]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홀리듯이 그 영상을 클릭하고 보니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유퀴즈였다. 초대손님으로 K대 심리학과 교수님이 나온 방송으로 사회 심리학자로 바라본 한국인들의 특징을 전문가적인 시선과 예능적 유머가 곁들여진 영상이었다. 교수님의 이야기에 홀린 듯이 빠져들었다.


영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보통의 한국인의 생각의 기저에는 '나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나의 기준으로 이 생각은 합리적인(맞는) 생각이니 네 생각은 비합리적인(틀린)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탁 쳤다.


"아, 내가 이렇게 독불장군 같은 면은 어쩌면 한국인 종특일지도...?"


잠시만 생각해 봐도 '내 말이 맞다니까'라고 말했던 일들이 최소 한 손을 꼽고도 넘칠만큼이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내가 다 맞고 너는 틀렸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 채 새벽 1시에 교토역에 떨어졌을 때였다.


우리의 일본여행의 첫 미션은 '숙소에 도착하기'였다. 첫 미션 치고 난이도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가장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끊은 탓에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일본에 도착하기 때문이었다.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역까지 운영하는 열차도 끊긴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막차나 다름없는 버스를 타고 교토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교토역 근처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이제 교토역을 떠나 숙소로 15분가량 걷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교토역을 떠나는 것 그 자체였다. 늦은 밤 도착한 교토역은 문을 닫았고, 숙소는 교토역의 반대편에 있었다. 늦은 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한 채 교토역을 가로지르는 길을 찾아 다녔다. 모든 문에는 셔터가 쳐진 채 불청객을 막고 있었고, 교토역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만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고 있었다.


슬쩍 올라가 본 교토역 2층은 1층처럼 어두웠다. 그리고 경비원이 있었다. 죄지은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늦은 밤에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이유로 제복을 입은 경비원 분들에게 주눅이 들었다. '고 스트레트, 오케?'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걸, 고집스레 입을 꾹 닫고 다른 길을 찾아 교토역 주변을 배회했다.


버스에서 내린 지 10분이 지났을 무렵 참다못한 동생이 말을 걸었다.


"언니, 근데 이거 구글맵 보면 저 2층으로 넘어가는 거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아까 거기 정말 어두컴컴했잖아. 1층처럼 닫힌 것 같애."


 2층으로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거리고, 교토역 주변을 돌아보며 교토역 뒷문 쪽으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살펴봤을 때 나는 혼자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바로 통하는 길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삥 돌아서 가자."


민정이는 내키지 않은 표정이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넓은 교토역을 벗어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구글지도가 알려준 길을 무시한 채 순전히 지도만 보고 걸었다. 지도에 표시된 길을 따라 걸으면 언젠간 신호등이 나올 테니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차도와 다르게 선로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 그렇게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역 주변에서 밝히는 불빛마저 없어진 교토의 밤은 점점 어둡고, 으슥해졌다.


늦은 밤 나란히 캐리어를 끌고 걷는데 마음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이 밤에 낯선 곳을 여자 둘이서 걷고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고 둘이라고 날 다독여보지만 동생은 내 눈에 그저 걸어 다니는 종이인형일 뿐이었다. 그렇게 앞으로 걷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던 때 동생이 말했다.


"언니, 그냥 아까 거기로 돌아가서 그냥 2층 가보면 안 돼? 여기로 가면 안 될 것 같은데."


내 머릿속은 이미 합리적인 결과(1층이 문을 닫았으니 2층도 어딘가 문을 닫았을 것)에 따라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길을 통과한다는 것은 선택지에서 삭제된지 오래였다.


"갔는데 문 닫았으면 어떻게?"


"문 닫았으면 거기에 있는 사람한테 넘어가는 법을 물어보자."


괜한 객기를 부리며 이 길의 끝에는 숙소로 가는 길이 있다고 말한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현명한 대답이었다. 동생에게 내가 틀렸다는 것을 내색하기 싫었다. 항상 동생이 말한 건 다 틀렸다고 생각해 온 나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내 말이 다 맞고, 내 행동이 옳고 동생은 날 힘들게 하는 짐일 뿐이었는데 동생에게 도움을 얻는 다니. 나의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고집을 부리는 것은 스스로를 더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 가보자. 모르면 번역기로 물어보면 되겠지."


우리는 온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어둠 속을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5분이면 넘어갈 길을 30분은 넘게 돌아다닌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구글맵이 제 역할을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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