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0만 원짜리 사람의 신발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머리를 띵하고 맞은 적이 있었다. 재테크로 유명한 사람의 인터뷰였는데, 그 사람의 말 중에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을 정해놓고 살면, 자기 인생은 그만큼 인생으로 정해진다.'는 맥락이었다. 나는 한 때 30만 원짜리 인생을 산 적이 있었다. 누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가 그런 굴레에 갇혀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
26살, 늦은 나이라면 늦은 나이에 정식으로 첫 회사에 취직을 했다. 취직하고 내 통장에 찍힌 돈은 190만 원 남짓했던 것 같다. 한 달 월급에서 4대 보험이 공제되고 16만 원의 식대가 포함된 돈이었다. 20일을 꼬박 일해도, 200만 원을 넘기지 못하는 월급이었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 나는 절대 만족할 수 없었다. 아니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은 300만 원을 번다더라, 누구는 26살에 집을 샀다더라, 어떤 사람은 벌써 1억을 모았다더라.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며 나를 재촉했다. 겨우 200만 원의 월급을 가지고. 사회초년생 월급관리법, 월 200만 원대의 이상적인 지출비율을 찾아보며 내 나름대로 최고의 저축비율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19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면 8 ~ 90만 원을 저금했고, 10만 원 정도를 부모님에게 드렸으며, 25만 원 정도를 한 달 식대로 나갔고 7만 원 정도를 교통비로 냈으며, 6만 원 정도를 핸드폰비용으로 지출하고 남은 돈은 약 60만 원 남짓이었다. 그 60만 원이 내가 한 달에 쓸 수 있는 자유로운 금액이었다.
하지만 남들과의 비교에 미쳐버린 나는 그 60만 원을 또 쪼개서 일부는 비상금으로 쓰고 일부는 주식에 투자했다. 그래서 내 손에 남아있는 돈은 약 30만 원 정도였다.
남은 30만 원으로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사고, 신발을 사고, 친구와 만나 밥 먹고 수다 떨며 놀아야 했다.
30만 원의 한도 내에서도 나름의 우선순위가 있었다. 이것은 내 욕구에 따른 순위였는데, [1. 먹고 싶은 것 먹기, 2. 친구와 만나고 놀기, 3. 피곤할 때 택시 타기, 4.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 보기]에서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가끔은 우선순위에 없어도 돈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바로 옷과 화장품을 사는 일이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춰서 옷을 입고 다녀야 했고, 화장품은 소모재여서 사용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곤 했다. 정말 사고 싶은 것은 용돈인 30만 원 내에서 해결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비상금에서 털어서 계절마다 옷을 장만하곤 했다. 그마저도 아주 가끔이었다. 특히나 신발은 매일 신고 다니지만 고가의 제품이라서 1년 중에 한번 살까 말까 한 품목이었다.
그렇게 나는 30만 원 체크카드를 가지고 인생을 저당 잡히며 살고 있었다. 문화생활은 사치라고 느꼈으며,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이 있어도 최대한 욕구를 배제했다. 그 당시에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10분 걸어가면 있는 마트에서 파는 1200원에 파는 저렴한 발포주 한 캔이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많은 편의점,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치고 '10분 걸어가면 있는 마트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나는 밤 10시에도, 9시에도 항상 마트에 가서 발포주를 사 왔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났다. 이제는 무엇을 하든 통장잔고를 먼저 떠올렸고, 내가 그것에 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만 늘어놓게 되었다. 점점 궁상맞아질수록, 더 저렴한 것을 찾아다닐수록, 내가 욕구를 더 포기할수록 통장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그렇게 회사를 다닌 지 10개월이 지난날, 나는 인생 최초의 목돈을 만들었다. 바로 적금통장에 1000만 원이 찍힌 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000만 원짜리 적금을 완성한 날 정말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시리고 시린 겨울이었던 그날, 눈 쌓인 겨울 밭을 걷고 있었던 그날, 퇴근하고 집에 가고 있는데 점점 양말이 젖고 있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고 고작 눈이 쌓인 도로를 걷고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양말이 젖길래, 나는 발에서 피가 나는 건가 하고 신발에서 발을 꺼내 확인해 봤다. 내 발이 멀쩡한지, 어디 다친 것은 아닌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단 한 곳도 다친 곳이 없었다. 그저 발바닥이 점점 젖어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발을 뒤집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가난한 자의 신발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신발에 돈 쓰는 게 아까워, 후순위로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 신발밑창이 헤지다 못해 구멍이 난 상태였다. 밑창도 해지고, 신발 안감도 해져서 신발을 신고만 있었지 발바닥은 맨발로 걷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해진 구멍으로 눈이 스며들어와 양말이 점점 젖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신발은 겉으로 볼 때 전혀 아무런 하자가 없었었다. 겉 외피는 여전히 멋진 로퍼였고 내 발에 잘 길들여 편했다. 다만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양말이 젖을 뿐이었다.
내가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신발이 구멍 난 신발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묵했다.
나는 그 구멍을 봤음에도, 그 구멍이 있어서 눈 길을 걸을 때 발이 시리고 양말이 젖는 걸 알았어도. 그 해 봄이 올 때까지 새로운 신발을 새로 사지 않았다.
나는 30만 원짜리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