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엄마도 함께 듣는 토요일 2시간 바둑교실
올해 봄부터 시작한 바둑교실에는 어르신 한 분과 바둑을 처음 배워보는 어른 넷, 유치원 생 하나, 초등학생 여섯이 모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주시는 다정함과 함께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아이들을 꾸중하시기도 하는 카리스마를 가졌는데, 마치 서당의 훈장님 같았다. 첫 몇 주간은 바둑에 대해 기초에 대해 알려주셨다. 첫째 아들이 바둑을 두 며 말해오던 양단수, 호구, 착수금지 같은 바둑 용어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 과 대국을 두고 선생님께서 돌아다니시며 대국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셨다. 집에서 아들과 해보기만 하다가 다른 사람들과도 대국을 해보니 대국을 두는 스타일이 모두 바둑을 달라서 재밌기도 했다.
어느새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고 수업의 마지막 날인 6월의 세 번째 토요일이 되었다. 요 몇 주간 약속이 있어 수업을 결석한 나는 오랜만에 바둑수업에 참여하였다. 선생님은 오랜 만에 출석한 나를 반겨주시며, 첫째 아들을 나의 대국 상대로 정해주셨다. 하수인 내가 흑, 상수인 아들이 백을 잡았다. 나와 아들의 실력 차이는 이미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바 둑판에 나의 흑돌을 먼저 25개를 깔아두고 시작해야한다. 상대와 나의 실력 차이만큼 바둑 판에 두는 돌의 수가 다른데, 남편은 아들과 둘 때 4~5개 정도 돌을 두고 시작한다.
흑(나)과 백(아들)의 대국 초반에는 바둑판의 흑돌 25개가 올려져 있어서 백이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금새 바둑판의 모서리라고 불리는 ‘귀’부터 백은 집을 짓 기 시작한다. 흑은 백이 침범해 오지 못하게 이리저리 막아보지만 속수무책이다. 백의 돌을 따내진 못하더라도 막아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궁리해보지만, 별다른 묘수가 없다. 어 느새 바둑판의 중앙까지 백이 집을 짓고 흑의 자리를 뺏고 있다. 경기를 시작한지 5분 즈음 이 지나자 벌써 결과가 예측되었다. 대국이 끝나면 누가 얼마나 집을 지었는지 집 계산이라 는 것을 하지만 굳이 계산해볼 필요도 없이 나는 패배하였다.
첫째 아들과의 대국을 마치고 바둑돌을 정리하고 있는데, 둘째 아들이 대국을 해보자고 한다. 둘째와 대국도 오랜만이지. 바둑교실의 유일한 유치원생인 둘째는 올해 7살인데 바둑 선생님의 칭찬을 독식하며 바둑을 재밌게 두고 있다. 선생님이 내는 바둑 문제를 적극적으 로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둘째 아들을 칭찬해주고 귀여워해주신 것 같다. 둘째와는 가 벼운 마음으로, 마음의 부담감을 내려두고 대국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둘째는 오늘도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수로 대국을 이어나간다. 그리곤 내가 지을 집을 막고 또 막아대기 시작한 다. 아들의 실력이 많이 늘은 것인가? 나의 주축이 되는 큰 집이 두 개나 잡히면서 나는 또 한 번 지고 말았다. 나를 이기고 신난 둘째는 우리의 대국 결과를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고 호들갑이었다. 2주 동안 안 두어서 였나? 아이들이 실력이 이렇게나 많이 늘은 것인가? 조 금 당황스러웠다. 실력이 좋진 않았어도, 둘째 아들에게 질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패배의 맛은 씁쓸했다. 진 사람이 바둑돌을 정리해야하는 암묵의 규칙을 가지고 있었 기에 혼자서 바둑돌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우리 뒤에 앉아서 대국을 두는 아이들을 지켜보 시던 선생님께서 교실의 학생들에게 알려주듯 큰 소리로 한 말씀을 해주셨다.
“바둑은 상대방의 돌을 따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집을 많이 지어야 이기는 거잖아 요. 딱 한 집만 상대방보다 많으면 이기는 게임이에요. 그러니까 상대방의 수에 따라가면 안 돼. 내 집을 짓는 것이 집중해야지.”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아차 싶었다. 두 아들과의 대국에서 나는 내 집 짓기에 집중하지 못 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나의 집을 지을지 생각하기보다는 나보다 실력이 월등 히 좋은 첫째 아들의 수를 막기 위해 노력했고 둘째 아들이 걸어온 수에는 수 싸움을 이기 기 위해 바둑을 두었던 것이다. 바둑판은 넓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가 집을 짓는 곳에 들어 온다고 상대방과의 싸움을 하기보다는 더 넓은 곳에 크게 집을 짓는 선택을 하라는 말씀도 자주하셨다. 상대방이 따낼 것 같은 몇 개의 돌에 신경쓰지 말고 내 집에 집중하기. 상대방 이 거는 싸움에 모두 응수해 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해주셨었다.
불혹이 다 된 나도 대국에 들어서면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상대방의 모든 수에 응수 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수의 현혹되어 방어를 하려고 한다거나, 내 집으로 만드려고 애를 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나도 이 진리를 잊지 않고 바둑에 임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바둑을 배워가고 있는 아이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것이 대국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대국에 임하는 실력과 평정심 을 갖춰나가면 비로소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 즉 상수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마지막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다음주에도 만날 것처럼 선생님과 가볍게 인사를 하 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오늘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교실안 도 천천히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한 번 더 마지막 인사를 건내고 교실을 나 왔다. 9월에 시작하는 하반기 바둑교실에는 두 아들만 등록 하려고 한다. 나는 바둑보다 내 가 집중하고 싶은 것에 토요일 오전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3개월간의 바둑수업 은 끝이 났지만 선생님이 알려주신 바둑에서의 진리이자 내 인생의 충분히 필요할 조언인 그 것을 머리와 가슴에 새기며 하반기를 살아내기로 했다. 나의 수(인생)와 관계없는 남의 수(행동과 말)에 모두 다 응수하지 않기. 남의 수(인생)에 따라가지 말기. 오로지 내 수(인생) 에 집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