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내 아이의 '그 시기'
적기육아와 적기교육에 대해
어린이집 선생님과 기나긴 상담 끝에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내 울음 섞인 목소리에도 선생님은 흔들림 없는 어투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며,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기다려주라고. 그럼 잘 성장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직업 정신에서 새어 나온 무미건조한 위로인지,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나온 정답 같은 사실인지는 그때는 분간할 수 없었고, 그저 내 마음에 큰 돌덩이가 얹어진 것 같았다. 전화를 마치고 잠시동안 회사 폰 부스에 앉아서 생각했다. 지금 당장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깊은 고민 없이 그저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무언가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협동하는 운동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농구 같은 운동이요.”
상담 중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이 한 마디로, 나는 아직 6살이라서 고려해 본 적도 없었던 축구교실에 아이를 등록하였다. 그 당시 아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축구를 해보고 싶다거나 잘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냥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
아이는 축구수업에 빠지지 않았다. 어렵지만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해보려고 노력하였고 가끔 재밌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어쩐지 수업 말미에 15분간 하는 축구시합 중에는 축구공 근처에 다가가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축구공을 빼앗을 수 없는 것 같이 보였다. 10개월간 빠지지 않고 축구수업에 참석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축구시합 내내 축구공에 다가가지 못했다. 공 주변만 맴돌고 골을 넣으려는 적극적인 모습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그 모습은 나와 남편을 매주 속상하게 하였다.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하며 시작했던 축구수업 시간은 나에게, 아이의 늘지 않는 축구 실력에 대한 걱정, 내향적인 성적에 대한 걱정, 매우 부족한 운동 능력에 대한 걱정,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대한 걱정 등으로 채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8살 초여름이 시작되면서 아이에 대한 나의 걱정은 하나의 버튼으로 도미노가 모두 넘어가듯 단숨에 해소되기 시작했다. 두 발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한 날에는 시작한 지 몇 분 만에 혼자 타기에 성공하였고, 학원을 다녀서 배워야 한다는 줄넘기도 몇 번의 연습으로 금세 늘었다. 나와 남편이 가끔 하는 배드민턴도 아이 혼자 어깨너머 보고 연습하다 보니 셔틀콕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하굣길에 다른 반 친구를 만나 함께 새로운 길로 집에 돌아오는 날도 있었고,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도 말을 걸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였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니, 아이의 작은 어려움에도 기다려주지 못하고 초조해하며 걱정을 키운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내가 학교 다니는 거 못할까 봐 걱정하잖아요”
마음속 깊은 내 걱정을 너무나도 정확히 잘 알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했던 새 학기 3월의 어느 밤도 지나갔다. 적기 육아, 적기 교육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려본다. 나에게도 있었듯이 내 아이에게도 어떤 일을 위한 알맞은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기다리며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봐 주자고 남편과 얘기를 나누었다. 시원해지는 가을밤이 되면 아이와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공을 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