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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Nov 05. 2024

마흔-27 치약 짜기

알뜰하게 짜내면 

처음 치약을 뜯었을 때는 종종 뚜껑을 열기만 했을 뿐인데, 

당황스러울만큼 많은 양이 나온다. 


그러다가 다 써가기 시작하면 마지막엔 아무리 쥐어 짜내도 눈꼽만큼도 나오지 않는 거다. 


알뜰한 나는 그런 치약의 몸통을 가위로 싹뚝 잘라서 통에 묻어있던 부분까지 알뜰하게 쓴다. 


자 남은 건, 알맹이 없이 탈탈 털린 것도 모자라 반으로 싹뚝 잘려진 치약 케이스 뿐이다. 



종종 우리는 이런 감정 상태를 겪는다. 


어릴땐 그렇게 밝고, 괜찮고, 긍정적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탈탈 털려 타인을 돌보거나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여유는 커녕

오히려 타인의 사소한 눈빛하나에도 베여버리는 것이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뭐든 배우고, 해보겠다던 열정넘치고 의욕적이던 신입사원이 

거무죽죽한 낯의 흐리멍텅한 동태눈이 되어 그저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는 것과 같다. 


그러니 휴가도 가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고, 명상도 해야하고

그 내부를 스스로 채우고 가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거겠지. 


내가 치약케이스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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