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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3. 2020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

결혼할 수 있을까?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일 년마다 이사를 다니는 게 지겨워 2년을 계약했던 지금의 자취방은 돌아오는 4월이면 만기가 된다. 한창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였다. 한쪽 벽에 곰팡이가 생겨 공사를 했다고 하고서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채 남아있었던 지금 집은 좀 찜찜했지만 역과 가까우니 좋지 않냐는 엄마의 등살에 떠밀려 계약을 했다. 떠밀려 계약했다고 쓰기는 했지만 난생처음 살아보는 초역세권에 방도 넓은 게 이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좋았다. 전의 집은 빌트인도 아닌 중구난방으로 만들어놓은 복층이었던 것이 지금 집을 계약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언제나 있다. 이를테면 창문 뷰가 벽뷰라 해도 바람도 들지 않는다는 것.


이 집에서 산지 육 개월 정도 지났을 때 지금의 애인을 만나게 되면서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었고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몸의 정이 아니라 정말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있는 모습이 서로에게 더 끌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만기일에 맞춰 우리는 이 해도 들지 않는 집을 떠나 우리의 신혼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살고 있는 집을 중심으로 우리가 유년부터 살아와 익숙한 중랑구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의 부동산을 전전하고 있는데 참 집 구하기 어렵다더니 애초에 가지고 있는 예산이 적은 우리에게는 괜찮은 집을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1-2천의 차이가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요즘.

부동산을 하염없이 돌고, 아직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았는데도 기억 저편으로 잊히는 집들이 있을 정도니 아마 스무 채는 더 둘러봤겠지.


중계동에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다. 주말에 가서 둘러봤는데 예산에서 천만 원이 오버가 되긴 했어도 그 정도는 커버할 수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들고 찾아간 은행에서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볼 때부터 내 기분은 한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지만.

대출 상담 창구에 앉아있는 남자 은행원은 친절하지 않았다. 내가 모든 서류를 들고 갔음에도 이사 예정일이 멀었다는 이유로 내가 챙겨간 서류를 일절 확인해주지 않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내가 아쉬운 마음에 일찍 계약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내가 가져온 서류를 받아 확인하겠다고 했다. 은행원 앞의 의자에 앉았을 때 먼저 얘기를 했었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거겠지.


한참 동안 키보드를 두드려대던 그는 내 소득으로는 일억을 받을지 못 받을지 참 애매하다고 했다. 물론 사회생활 기간에 비해 연봉이 낮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다. 기분이 참 더럽게 슬펐다. 이렇게 살았는데도 은행에서 일억 대출도 받기 애매한 사람이라니. 아니, 이렇게 살았기 때문인가. 나는 늘 가난했지만 나라에서 지원하는 복지 조건의 턱걸이를 간신히 넘겼다.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아무 혜택을 받지 못했다. 자꾸 억울한 기분이 들고 기분이 처지는데 애인에게 그 감정이 전이가 되지 않을 리 또한 없었다.


내가 출근 한 사이 혼자 부동산을 돌아본 남자 친구는 석계에 있는 단독주택 집이 오늘 본 중에 가장 좋다며 사진을 막 찍어 보내고, 전화로 그 집의 이런저런 칭찬을 늘어놨다. 전 세입자가 에어컨과 냉장고를 두고 갈거라 했다고. 윗집은 아들이 경찰이고 이 집에서 살다 나간 사람들은 전부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그럴싸하게도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는 신혼부부 임대주택이 당첨되어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누누이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고 싶은 집이라기보다 살고 싶지 않은 집을 얘기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윗집에 거주한다는 집주인 아들이 경찰이니까 안전문제는 걱정할 것이 없을 거라고 했다. 애인은 항상 내 말에 공감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좀 다르게 느껴져 낯설다. 아무거나 좋아하는 사람이야 어디든 상관없지만 나는 그 어디든이 아니라는데.


지친 애인의 몸과, 내 지친 마음은 자꾸 부딪힌다.

여행하지 말고 돈 모을걸, 그럼 1-2천만 원 정도는 더 모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욱, 하고 올라온다. 내가 가진 돈이 결혼 준비하기엔 풍족하지는 않아도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안정적인 사람과 결혼하게 될 줄 알았는데 프리랜서라니. 심지어 배우라니.

물론 내가 여행을 하지 않았고, 그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끌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 또한 연기를 배운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빛을 볼 수 있었고 그는 나처럼 가정에 치여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그 마음은 지금도 유효한데도 자꾸 나의 잘못과 그의 잘못을 찾게 된다. 한없이 긍정적이려는 사람을 앞에 두니 나는 더 억척스러워지는 기분이 들어 저녁으로 족발을 먹다가 울컥해 눈물이 맺혔지만 고개를 숙이고 입 속으로 상추쌈을 밀어 넣었다.


나의 집, 우리의 집은 어디가 될까.

우리의 처지가 내 마음에 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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