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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isBoucher Aug 08. 2017

파리 메르시 건축가, 발레리 마제라를 만나다 - 1

발레리 마제라의 건축법

파리의 메르시 Merci라는 편집샾을 아시나요? 아마도 파리에 여행 오셨던 분이거나 파리의 상점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 혹은 인테리어 건축에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거나 들려보셨을 장소일 겁니다. 2009년에 만들어진 메르시는 파리와 마레지구 Quartier Marais에 하나의 큰 파장을 일으킨 상점이었고 오늘날까지 프랑스를 너머 전 세계의 건축가, 실내건축가, 상업 공간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장소입니다. 메르시는 이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건축가를 아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 건축가가 메르시뿐 아니라 현재 마레 지구의 대표적인 상점을 여러 개 - 봉통 Bonton, 그라치에 Grazie, 와일드앤더문 Wild & the moon를 디자인한 건축가이며 에글 Aigles이나 바쉬 ba&sh 같은 여러 브랜드의 컨셉 디자이너이기도 함에 불구하고 말이죠. 발레리 마제라 Valerie Mazerat는 파리 마레지구에서 주로 활동해 온 실내 건축가이고 2010년대 파리 스타일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건축가 중 하나입니다만은 그동안 자신이 나서서 미디어에 비춰진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메르시 건축가로서도 이름을 거의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쯤에서 저의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제가 발레리 마제라라는 건축가를 알게 된 것도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기 직전부터입니다. 발레리는 지금껏 직원 한 명을 두거나 혼자서 일해왔는데 현재는 저와 둘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메르시에 관한 글을 쓰려고 생각한 것은 발레리와 함께 일하던 어느 날, 메르시의 생성 과정과 그 문화적, 도시적 영향력이 꼭 한번 글로 다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발레리에게 오고 가며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었고, 저도 메르시의 재개장 프로젝트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직접 봐왔던 것이 있기 때문이지요.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메르시라는 매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 세계에서 몰려온 다양한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상점입니다. 그런 강력한 어트랙션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해 분석 기사를 써보려고 했었죠. 그러던 와중에 발레리 마제라라는 건축가가 이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것에 비해서 그 자신의 건축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녀만의 작업 방식들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고 그것이 그녀의 건축만큼이나 흥미롭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한국의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그동안 제가 발레리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토대로 준비하여 8월 한 달간의 긴 휴가를 떠나기 직전 메르시가 있는 보막쉐 거리 Boulevard Beaumarchais의 한 테라스 바에서 생맥주를 한잔씩 놓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 인터뷰를 어떻게 포장할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그녀의 건축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에 번역과 약간의 편집만을 하여 그대로 발행을 하려 합니다. 이 특집 인터뷰 프로젝트는 녹취 분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아마도 3부로 나뉘어서 소개될 것 같습니다. 1편에서는 발레리 마제라가 어떤 방식으로 건축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실릴 것이고 2편에서는 본격적으로 메르시라는 상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도시, 문화적으로 메르시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건축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3편에서는 발레리 2009년 메르시 이후 현재까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왔고, 특히 그녀가 최근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브랜드 공간 컨셉'에 대해서 다루어 보며 제가 직접 본 발레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발레리, 당신은 메르시를 비롯한 파리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여러 상점 프로젝트들을 건축한 건축가입니다. 당신의 건축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이 인터뷰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지만, 그에 앞서 당신이 어떻게 이 분야에 들어오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 분야에 어떻게 들어왔는지요. 사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 분야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다른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현대 미술이었지요. 저는 처음에는 현대 미술 갤러리에서 이미 일을 시작한 상태였고, 현대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었습니다. 루이스텐이라는 전시기획자에게서 배웠었지요. 루이스텐은 프랑스에게 아주 중요한 전시기획자인데,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개발도상국 출신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기획했었던 사람입니다.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지요. 이 당시의 경험은 저의 건축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때부터 저의 건축 활동이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문화는 저의 건축 활동을 항상 함께 해 온 분야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술가들은 항상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들입니다. 예술가, 그리고 예술성, 이 두 가지 모두 저에게 큰 영감을 줘 왔습니다. 현대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빛 그 자체를 통해 작업하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전시 설치 방식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으며, 저는 이런 것들을 통해 저의 건축을 만들어 나갑니다. 따라서 현대 미술이 첫 번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현대 미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요, 저는 사실 건축활동을 이것저것 만들면서 시작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는 돈이 별로 없었을 때 저 자신을 위해서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야 했었는데요, 가구나 주방이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저는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이것들이 어떻게 그것들이 건축되는지를 배웠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제가 직접 만들었으니까요. 저에게는 이 직접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한데요, 저에게는 건축을 할 때 그것을 이루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 방법을 제작자들과 나누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요. 

저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서 제가 결국 이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건축을 가르쳐준 것은 이런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항상 제가 언젠가 이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통해 건축가가 되었고, 사실 저는 건축가가 된 이후로 다른 건축가 밑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바로 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었죠.


한 명의 건축가로서 당신의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했다는 것이지요?


한 명의 건축가로서 말입니다. 사실 첫 번째 프로젝트 때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했었는데요, 그는 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었고, 그런 것이 잘 맞았었습니다. 그는 건축공학 전공자, 엔지니어였는데 건축을 하고 싶어 했었지요. 그는 그전에는 평생 동안 건설 엔지니어였지만 건축가가 되고 싶어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조와 관련된 부분과 가구와 예술적 영향에 관한 부분을 각자 가져와서 합쳐 놓은 꼴이었죠.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우리 자신의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간에 관한 것은 사실 항상 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완성되어있었죠. 그런 것은 저에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테크니컬 한 부분은… 결국 그와의 작업은 저에게는 어떤 수업과도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만들다 보니 하나의 장소가 만들어져 있었죠. 이 협업을 통해서, 이 사람을 통해서 구조적인 것에 관한 컴플렉스가 사라졌었습니다. 어떤 공간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뭐 그런 것들 말이죠. 물론 시공을 하는 사람들도 대단한 것들을 만들 수 있고, 저는 그런 구조적인 부분에 대해서 끝을 볼 정도로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뭐, 그 경험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된 거죠. 저는 이런 다양한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결국 당신이 해왔던 것들, 가구를 만들 거나 주방 설계를 하고, 다양한 오브제들을 직접 만든 것은 모두 삶을 이루는 것들이지요.


그렇습니다. 오브제들, 주방 같은 것 속에는 어떤 작은 우주가 있는데요,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기능적이어야 하지요. 그런 것들을 만듦으로써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철이라는 재료 말인데요, 저는 사실 당시에, 돈이 없을 때, 오래된 창고에서 살았었는데, 거기서 우리는 창문을 만들어야 했었습니다. 그 창고 건물은 산업 건축이었기 때문에 나무보다는 철재 창문이 어울렸고, 저는 유리 창문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었죠. 그것은 경제적으로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거기서 나는 파브리스라는, 지금까지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만났었는데요, 당시의 그는 저의 이웃이었지만 지금처럼 일적으로 성공하기 훨씬 전이었지요. 저처럼 이제 시작했었지만, 용접 도구들 정도 갖고 있는 뭐 이제 시작한 단계였었죠. 우리는 함께 우리의 창문을 만들기로 했었는데요, 당시에 저는 당연히 용접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조립을 통해서 유리창을 만들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으로 제가, 지금은 매우 유명해진 산업 건축 스타일의 창문을 만든 때입니다. 이 창고는 사실 SNCF(프랑스의 코레일)의 직원용 창고였는데요, 여기에는 SNCF의 다양한 물건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창고 건물은, 당연히 산업시대에 지어진 산업 건물이므로, 산업시대 풍의 창문을 갖고 있었죠. 그 건물을 위해서 이 창문을 만들었던 겁니다. 거기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살던 그 건물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쌓아 올려진 그냥 창고 건물이었는데, 거기서는 다양한 재료들을 줏어다가 쓸 수 있었죠. 지금은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갈 산업시대 풍의 가구들, 장들을 아주 싼 가격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사실 제가 이 철이라는 재료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저는 그것을 통해서 많이 배웠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저에게 정말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과정을 통해 제가 철재라는 재료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확실하게 배웠고, 파브리스라는 제조인과 어떻게 함께 일할 수 있는지도 배웠기 때문이죠.


이때부터 제작을 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었습니다. 저는 요즘 거의 매일 아침 현장에 나가보는데요, 저는 현장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교감을 나누고 일의 진행 방법과 상황에 대해서 서로 대화와 토론을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발레리 마제라의 건축 방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싶은 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녀는 재료의 특성을 대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터득하고 위의 계단과 같은 오브제의 제작 과정에 대해 집요할 정도로 파고듭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제작 도면은 하나의 디테일을 넘어서 공간과 하나의 오브제가 서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느껴집니다.
 사진 : Duplex rue Turenne의 계단 / 사진 출처 : http://www.valeriemazerat.com/


정말 직접 만지고 만들면서 그런 재료를 사용하는 법까지 배웠던 거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그렸던 도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 도면이었죠. 제가 처음으로 그렸던 제작 도면도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그렸죠. 저는 돈이 없었고, 몇 mm 차이로 제가 제작 주문한 철판들이 날아갈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것들은 건축 프로젝트에서는 정말 핵심적인 것들이죠. 


그렇군요. 어떤 재료의 특성과 과정에 대해서,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방식이 아닌, 사실은 좀 특이한 방법이죠. 그렇게 보면 당신의 커리어는, 현대 미술 갤러리에서 일하는 것부터 오늘날 까지, 사실 건축가로서는 아주 특이한 길로 보이는데요. 당신이 지나온 그 시대 에도요.


그렇죠. 제 시대에는 그것이 정말 특이하고 비정형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전혀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전해져 내려오는 학사과정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리고 50살이 돼서도 자기가 공부했던 것들에 대해 떠들고 있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 생각에는, 80살이 되어도 배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학업이란 것은 당신이 여태껏 배워온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기도 하지요. 제가 현대 미술에 관해서 이야기했었습니다만, 학업으로써 그것은 저에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그것을 통해 수많은 관점을 갖고 있고, 제가 어떤 작업을 할 때 제 머릿속에 있는 설치 미술 중 한 장면을 떠올리며 작업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빛으로 새겨진 점을 생각하면, 필수적으로 이전에 봤던 설치 미술 전시회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식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들이 우리 머리 한구석에 저장되어있고,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꺼내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건축가들이 제작하는 사람, 건설하는 사람들과 많은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 거의 서로 밀폐되어 있었지요. 이렇게 되면 설계하는 사람은 제작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만드는 사람은 설계하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죠. 건축가는 건축가의 옷을 입고, 장인은 장인의 옷을 입고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지적으로 평가되던 건축가와, 노동력으로 평가되던 장인이 서로 만나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또 다른 것을 배우게 되죠. 이런 예는 건축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농업에서도, 마케팅이나 경영을 배운 사람이 공부를 끝내고 농업 분야에 와서 일합니다. 이전에 농업이란 것은, 공부를 정말 하지 않은 사람이 하는 거였죠.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직업군이 합쳐져서 일을 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저의 시대와는 다른 이런 방식의 변화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관점,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어떤 분야에 끌고 들어온다는 의미가 있겠죠.


바로 그겁니다. 그런 것들이 풍요롭게 하죠. 건축에서는 조금 특수한 교감들이 있습니다. 어떤 건축가들은 정말 열려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비정형적인 관점에서 일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건축가들이 닫혀있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일을 하죠. 50살이 돼서도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만을 이야기하면서요. 이런 사람들과는 커뮤니케이션이 힘듭니다. 저는 오늘날 이런 방식으로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은, 대형 건축 사무실의 지휘자보다는 한 명의 장인으로서 일하는 것이 제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하고,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는 컨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컨셉을 잡아 놓고 그리고 그것을 직접 만들어 나가야죠. 컨셉과 제작, 그 둘은 서로 막혀있지 않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이 시점에서 제가 당신의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 하나를 말하고 싶은데요, 당신의 프로젝트를 보면 그 공간들이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설령 상점이라 하더라도, 저는 그 안에서 삶이 있는 공간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프로젝트에는 항상 삶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의 ‘장인적’ 건축가에 대해서 말해왔는데, 아까 자신이 직접 창문이나 주방, 그리고 여러 가지를 직접 만들었다고 했지요. 제 생각엔 당신의 그런 경험들이 당신의 프로젝트에 오늘날까지 녹아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저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그 공간 안에 살아가기 위한 어떤 요소들이 보입니다.


저도 제 건축이 그렇기를 원합니다.(웃음) 그러길 바래요. 어찌 됐던 저에게 어떤 장소는 살아져 온 것입니다. 그 장소가 살아온 것이기도 하지요. 그 장소 자신도 살아온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일은 살아온 것들을 되찾는 것입니다. 

건축주가 살아온 것, 그가 왜 이 장소에 왔는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이 상태에서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 메르시에서는, 우리 모두 정말로 그 장소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이 장소가 어떤 것이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사실 메르시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산업 시대에 지어진 창고 같은 그런 모습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건 여러 개의 작은 실로 나뉜 공간이었죠. 산업 시대 건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네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네의 역사는, 거기에는 소규모 제작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메르시가 있는 그 장소에도, 역사 속에서 어떤 때는, 그런 소규모 제작자들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거기에 재창조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디즈니 랜드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동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였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던 산업시대 건축 스타일의 철재 유리창 같은 것은, 그 장소의 역사가 여기서 발레리가 말하고 있는 소규모 제작사들의 역사와 맞아떨어질 때 그 공간에 진정으로 녹아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레지구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이전에 소규모 제작사들이 있었던 공간에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철재 유리창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레리는 그것들을 다시 현대 건축에 구현시켜 놓은 것이죠. 메르시는 재료-오브제가 갖고 있는 역사성과 장소-동네의 역사성이 서로 맞물려 세상에 내보여진 발레리의 첫 프로젝트였고, 메르시가 건축적으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공간과 건축 자체에서의 삶에 대한 그녀의 집요한 탐구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진 : Aigle Boulevard Saint-Germain / 사진 출처 : http://www.valeriemazerat.com/


이런 작업은 느낌을 재창조해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과 장소 간의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런 연결점들이 잘 작동하면, 건축가, 그 장소, 그리고 건축주와 다른 사람들, 그 모든 요소들이 잘 연결되어 작동하기 시작하면, 어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무엇을 해도 좋은 결과물이 나오죠.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메르시가 처음으로 문을 열던 날 새벽 5시에, 아직 작업은 전혀 끝나지도 않았고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메르시 정문 계단에서 거기 일하던 사람이 모두 모여 사진을 찍었었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 순간을 함께 살았고 그때 우리가 그 공간을 만들면서 함께 느꼈던, 함께 살아왔던 그 느낌은 여전히 메르시에 지속적으로 존재합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커버 사진 : Merci Used book café / 사진 출처 : http://www.valeriemazerat.com/


P.S. 이번 글의 사진들은 모두 발레리 마제라의 홈페이지 http://www.valeriemazerat.com/ 에서 가져왔는데요, 각 사진별로 사진가가 분명치 않습니다. 휴가기간이 끝나는 데로 각 사진의 사진가를 추가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발레리가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진의 사진가로 적어 놓은 3명을 여기에 모두 적습니다.

Emmanuel Barbe / Ricardo Labougle / Mad Morgensen


작가 메일 주소 : ddesiree67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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