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담은 한옥과 그곳에서의 삶을 담는 현대 건축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한옥이 우리 건축, 특히 오늘날의 주거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이어져 왔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지난 글에서 소개드렸던 개념인 '지역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으로써의 한옥이 21세기의 한국 땅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좀 더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이 한옥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건축양식에 어떻게 영향을 받아 왔는지, 그리고 그 한옥은 이 땅의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건축 요소들을 발명하고 탑재해 왔는 지를 살펴보면 저탄소시대 Low carbon era의 한국 건축이 나아갈 방향이 좀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한옥을 다시 살펴봄으로써 적어도 수십 세기간 이어져온 이 땅의 대체로의 기후에 맞추어진 건축 방식을 되돌아봅시다.
기후와 건축, 그리고 삶의 연관성이라는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먼저 제가 프랑스 파리에 와서 살면서 느꼈던 건축 공간의 변화의 충격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해 볼까 합니다. 사실 한옥과 기후, 지역 건축에 관한 이번 글의 본질적 영감은 어쩌면 제가 경험한 이 공간적 문화적 충격에서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위도에 있어 기온은 한국과 엇비슷하지만 습도는 전혀 다른, 즉 여름에는 건조하고 겨울에는 습한 파리의 주거 공간과 여름에는 고온 다습, 겨울에는 저온 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는 한국의 주거 공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럼 살펴봅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이 만약 한국에 계시다면, 그리고 집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바닥을 한번 봐주시길 바랍니다. 건설된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생활공간의 바닥 마감재는 PVC, 즉 플라스틱 비닐 매트 형태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강에 신경을 쓰셨거나 전통 주거 공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지에 기름칠을 한 바닥을 갖고 계실 수도 있고, 혹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번들번들한 큰 타일로 마감된 바닥에서 생활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실이 아니고 방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바닥과 벽이 만나는 부분을 보시면 PVC나 한지로 바닥이 마감된 경우에는 마감재들이 90도로 접혀서 벽까지 한 10 센티미터 정도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최근에는 바닥 몰딩으로 마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지어진 지 조금 되는 집인 경우에는 바닥 마감재가 그대로 벽까지 접혀 올라간 형태일 겁니다.
건축 이야기치곤 너무 디테일한 것 같나요? 다른 분야도 그렇겠습니다만, 특히 지역 건축의 영역에서는 주거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켭켭이 쌓여있는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제가 살고 있는 파리 아파트에 대한 바닥 설명을 한 번 읽어보시죠.
제가 살고 있는 곳뿐 아니라 파리에서 방문한 대부분의 집, 그리고 제가 설계에 참여한 모든 집에서 바닥재는 목재였습니다. 흔히 마룻바닥이라고 하는 길고 얇게 가공되어 있는, 주로 참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을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가공된 나무에 니스칠을 하여 마감합니다. 최근에는 여기도 PVC로 만든 바닥재를 많이 사용합니다만 이 경우에도 나무 무늬로 만든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처럼 물렁한 매트 형식이 아닌 얇지만 꽤 단단한 플라스틱을 사용합니다. 이것도 나무 느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죠. 주방이나 식당 공간 같은 경우에는 거의 나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물을 자주 사용하는 공간에서는 쉽게 망가지는 재료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작은 크기의 타일을 사용합니다. 한국에서 거실 마감재로 주로 사용하는 타일의 크기가 약 40 X 40 센티 정도 되는 크기라면 파리지역의 주방에서는 그 반이나 1/3 정도 되는 크기의 타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무 마룻바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벽과 만나는 부분에 무조건적으로 얇은 나무판을 댑니다. 이 얇은 나무판의 유무의 원인에 대해서는 곧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재료들은 양쪽 도시 모두의 경우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것들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명되어 이제는 대부분의 주택의 바닥재로 사용되는 PVC의 경우에도 서울과 파리의 경우에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이런 바닥재의 차이는 어떤 문화적 특성에서 왔는지 생각해 봅시다.
왼쪽부터 한옥, 일반 집, 그리고 파리 인근의 저희 집 사진입니다. 가운데 사진이 한국의 일반적인 주택에서 많이 사용하는 바닥재인 비닐 장판인데요, 바닥 전체를 덮은 PVC 장판이 벽과 만나는 부분에서 조금 접혀 올라간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사진 출처 :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블로그 / 옥션 상품평 / ParisBoucher
먼저 양국의 주거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바닥 생활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바닥 생활을 하는 나라의 바닥 재료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그것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이 위생입니다. 바닥 생활을 하는 문화권에서의 바닥은 반대의 경우보다 청결해야 합니다. 그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거기에 누워서 잠도 자기 때문이죠.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미드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해외, 특히 서양의 문화를 접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도 바로 방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생활방식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도 이들이 집 밖에서 신었던 신발을 신고 방안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처음엔 경악했고 심지어 그것이 미개하다고 까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합니다. 방바닥에 앉아서 거기에 손을 대거나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지 않는 이상 바닥은 한국인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청결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닥에 닿는 것은 겨우 신발, 기껏해야 발바닥 정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무릎에 입이 달려서 바닥의 먼지가 내 입으로 들어오는 생물이 아닌 이상 한국의 경우처럼 바닥의 청결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한국의 닥종이, 물렁한 PVC, 그리고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반들반들하고 큰 타일 바닥은 나무 바닥에 비해서 위생적으로, 그리고 관리면에서 불리하지 않습니다. 일단 바닥 생활을 하는 문화권에서는 실내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경우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신발로 방바닥을 디딜 경우를 고려하지 않은 건축을 해도 됩니다. 이것은 한국 주택의 바닥재가 프랑스의 그것보다 내구성이 약한 재료를 써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게 합니다. 닥종이, 물렁한 PVC, 큰 타일 바닥 모두 바닥 생활을 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신발을 신고 실내에 들어가는 문화권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한 재료들입니다. 구두를 신고 안방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등짝이 얼럴하실 겁니다. 큰 타일 바닥에 관해서는 약간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는 바닥 재료로 돌을 사용하거나 꽤 두껍고 작은 타일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반들반들하다 못해 반짝이는 크고 얇은 타일을 바닥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신발을 신고 그 위를 걸었을 경우에 그것이 깨지거나 상처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넓은 면적을 무기질의 재료로 덮는 경우는 경도가 강한 대리석 같은 재료가 아니면 불가능하고 이 경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지역 건축에서는 비현실적인 재료입니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바닥재로 여전히 나무 마루를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나무는 상처가 조금 나도 눈에 띄지 않고 신발을 신고 걸어도 깨지거나 찢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심지어 반영구적이기까지 합니다. 제가 지금 제 발을 딛고 있는 나루 바닥은 지금으로부터 73년 전에 깔은 것이지만 사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나무 바닥과 종이 혹은 PVC 장판 바닥의 차이점 중 하나는 목재로 마루를 깔 경우에는 꽤 얇은 두께로 가공된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벽과 만나는 부분에 항상 틈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살아서 숨을 쉬는 재료이기 때문에 기온에 따라 그 크기가 미세하게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틈이 없으면 목재 바닥은 손상되기 쉽습니다. 이에 반해 장판 바닥은 넓은 면적을 한 장의 큰 장판으로 덮는 방식이기도 하고 기온의 차이에 의한 손상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장판과 장판 사이에 틈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두장의 장판이 만나는 지점에는 일정한 너비로 겹쳐서 깔게 되죠. 이런 차이점 때문에 바닥과 벽이 만나는 지점의 마감에 위에서 설명한 차이점이 생깁니다. 즉 파리의 경우에는 벽과 목재 바닥재 사이의 틈을 매우기 위해 얇은 나무판을 설치하여야 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장판을 그대로 접어서 벽 위로 일정 높이 올려놓고 잘라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참고로 이 나무판은 불어에서는 Plinthe, 영어에서는 Skirting board라고 부르는데요, 예상하실 수 있다시피 한국어에는 이것을 지칭하는 적당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나무 바닥은 한국의 현대 주거건축에서는 찾기 힘든 재료이나 한옥에서는 매우 흔한 재료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청소하는 것도 힘들지 않고 멋도 있으며 인간이 곁에 두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아주 적당한 건축 자재입니다. 우리는 왜 아파트와 빌라, 양옥집에서 나무를 잃어버렸을까요?
병산서원의 대청마루 바닥입니다. 한옥의 마루는 나무 바닥을 주로 사용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건축에서는 나무 바닥 마감재를 사용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진 : ParisBoucher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문화권에서의 바닥재가 서로 다른 두 번째 이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바닥 생활을 하게 된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요, 바로 온돌입니다. 일단 바닥 생활에 대해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닥 생활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이상한데요, 보통은 좌식 생활과 입식 생활로 나누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서도 집 안에서 서서 생활하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전 세계가 좌식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글은 엄연히 건축에 관한 담론을 다루고 있으므로 좀 더 공간성을 명확히 내포하고 있는 바닥 생활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바닥 생활을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 아닙니다. 일본도 방바닥에서 먹고 자고 하고, 중국에서도 의자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바닥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문화권은 바닥 생활이 오히려 주가 된 동네였고, 따라서 온돌의 사용이 바닥 생활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저는 온돌의 사용이 바닥 생활에서 의자 문화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 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첫째로 중국의 의자 생활의 대중화가 이미 12세기 경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도 의자 생활에 대한 인식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둘째로는 한국인들은 의자가 대중화되고 주거 공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에서 의자 생활을 하는 오늘날까지도 집안에서는 바닥 생활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다시 바닥재로 돌아와서, 건축 방법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철근 콘크리트가 주가 되는 근현대 건축이 들어오기 전의 온돌은 흙과 돌로 만들었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그 불이 방바닥 밑에 만들어 놓은 열기가 지나가는 길(방고래라고 합니다.)을 지나가고 그 열을 잡아다가 저장해 놓고 바닥을 은은하게 덥혀 주는 것이 구들장인데, 이 구들은 보통 돌로 만들어집니다. 석재는 모든 건축 재료 중 열 보존 시간이 가장 긴 재료입니다. 데우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반대로 그만큼 오랫동안 열을 머금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하루 종일 그리고 밤 내내 난방을 해야 하는 혹독한 환경에 제격인 재료입니다. 그리고 그 구들장 위에 다시 흙을 깔고 마무리로 닥종이에 콩기름을 발라 바닥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한옥의 바닥 마감입니다.
종이로 하는 마감의 특징은 열의 전달의 측면에서는 구들과 흙바닥에 직접적으로 닿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서 일차적으로 목재는 온돌의 바닥재로 탈락입니다. 왜냐면 구들의 열을 신체와 공간에 전달하려면 종이처럼 얇은 재질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몇 센티미터 두께의 목재는 이런 직접적인 열의 전달을 방해하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목재를 사용하면 방의 공기는 데울 수 있어도 사람의 몸에 직접 열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나무는 비싸고, 가공도 해야 하는데 온도에는 꽤 민감합니다. 온돌은 아주 뜨거울 때는 7-80도 까지 올라가는데 이런 급격한 온도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목재는 적어도 몇십 년 전까지는 없었습니다. 한반도를 살아온 우리의 선조가 온돌을 사용하지 않는 마루에는 나무 바닥을 놓고 방 안에는 종이로 바닥 마감을 한 것은 이런 재료의 특성을 고려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식 현대 주거 공간에서 사용하는 모든 바닥재료 - PVC 장판이나 얇은 타일 등은 기본적으로 한옥에서 이용한 닥종이와 비슷한 열전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문화적으로 나무 바닥은 바깥과 통하는 공간에서만 사용해 왔으니 지금 와서 집안에 나무를 까는 것도 이상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바닥 생활이 온돌과 함께 오늘날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며, 서양에서 만들어진 현대 건축이 한국에 오면서 바닥재를 현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현대 건축의 한국에서의 현지화는 바닥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현관과 신발장 공간 같은 것은, 파리의 아파트에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발장을 거실보다 십여 센티미터 낮게 둔다거나 바닥의 재료를 거실과 다른 것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대저택이 아니면 극히 드뭅니다. 바닥 생활을 하는 한국의 주택에서는 필수적인 공간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화장실 반만한 면적이 소요되는 불필요한 공간입니다. 한국에서는 베란다라고 불리는 공간도 그렇습니다. 파리의 아파트들에 있는 베란다(보통은 발코니 Balcon라고 부릅니다.)는 옛날 집에서는 로열층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고 현대에 지어진 건물들에서도 꽤 큰 집이 아니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설령 창문을 다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베란다를 만들어 놓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거학연구회에서 펴낸 "안팎에서 본 주거문화"에서는 한국식 아파트의 베란다가 전통주택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인 광이나 다락, 혹은 마당이 혼합되어 있는 공간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한국에 도입되어 발전하는 과정을 연구하여 펴낸 책들을 보면 이 설명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한옥의 안채 마당은 정원이나 파리 아파트의 테라스처럼 휴식이나 사색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곳은 엄연한 집안의 업무공간입니다. 한옥의 공간구조는 실외와 실내를 넘나드며 집안일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베란다, 혹은 다용도실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에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입니다.
한옥에서 작은 마당은 중요한 생활 작업 공간입니다. 이런 외부 작업 공간은 오늘날 아파트에도 다용도실이나 베란다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사진 : 구례 운조루 / ParisBoucher
이쯤 되면 아파트가 거의 한옥 같아 보이기 시작할 정도입니다. 현대의 재료로 만들어낸 주거공간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서양의 건축과는 재료부터 공간 구성까지 차이점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한옥에 담겨있었던 생활양식들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현대 건축이 그것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아파트도 아직까지는 한옥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 또한 온돌입니다. 온돌로 달궈진 뜨뜻한 방, 그리고 부드럽게 다듬어진 나무 바닥의 감촉과 자연 그대로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대청마루, 이 두 가지 공간이 공존하는 한옥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아파트는 적어도 2017년 오늘날까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이 갖고 있는 재료적, 구조적 특성들은 모두 한반도의 기후에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지역별로 특징적인 부분이 있지만(이것은 다음 편에 다루겠습니다.) 나무, 흙, 돌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한국땅의 건축양식은 고온다습한 여름과 혹독한 추위의 겨울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입니다.
고온다습한 기후에 적응하는 건축양식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목재로 건물의 뼈대를 만들고 벽체는 최소화시킵니다. 지붕은 태양을 막기 위해서 처마를 길게 드리웁니다. 그리고 사람이 엉덩이를 데고 생활하는 바닥을 땅에서 분리시켜 땅과 나무 바닥 사이로 공기가 통하게 합니다. 대청마루나 양반집의 누각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는 한국의 겨울을 절대로 날수가 없습니다. 나무로 뼈대만 만들어 놓고 벽은 얄쌍한 공간을 데우려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었을 까요? 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발견한 것이 바로 온돌입니다. 처음에는 부엌의 아궁이 불이었습니다. 취사를 하는 열원을 난방의 열로 사용하는 예는 한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화로도 방 안에 때워놓은 불로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설비입니다. 온돌이 다른 난방방식과 다른 것은 열을 받은 물체의 표면, 즉 구들장에 신체를 직접 닿아 열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닥에서 말이죠. 온 사방이 뚫려 여름에는 바람을 받아야 하는 한반도의 가옥, 특히 중부지방 이남에서는 바닥난방이 거의 하나뿐인 선택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참고로 온돌처럼 열원이 불 그 자체가 아니라 건축 공간의 표면인 난방방식은 로마시대에도 있었고 북유럽에서도 있었습니다. 온돌과 다른 점은 그들은 바닥이 아니라 벽을 데웠다는 것입니다. 방 안의 공기를 대워 대류를 통한 열전달은 가능하지만 직접 사람의 신체를 맞닿고 열을 전도하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벽 하나를 완전히 막아야 하고 상당한 두께의 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한옥의 건축양식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온돌에 비해서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요.
사계절이 뚜렷하고 여름과 겨울 간에 익스트림한 온도차를 갖고 있는 한반도의 지역 건축인 한옥은, 그 기후에 맞추어 한국인의 삶을 담기 위해 나무 골조의 통풍성과 온돌의 강력한 난방효과를 동시에 갖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오늘날 우리가 흔히 한옥 하면 떠올리는 형태를 갖췄습니다. 사진 : ParisBuocher
정리하자면 온돌이라는 것은 난방뿐 아니라 냉방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맞춰 발전된 난방 방식이고, 이 난방과 냉방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발전된 한반도 특유의 건축양식이 바로 한옥이라는 것입니다. 아파트와 다른 점이 바로 이 지점인데요, 철근콘크리트로 많은 세대를 하나의 건물에 밀집해 넣은 한국의 아파트는 난방에는 강점이 있지만 냉방에는 취약합니다. 특히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는 최악의 성능을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뿐 아니라 주 재료가 목재에서 시멘트로 바뀐 것도 아파트라는 건축양식의 큰 약점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오늘날 전국 탄소 배출의 약 40%를 건설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시멘트의 재료가 되는 광물들의 채취, 가공, 그리고 레미콘으로의 운반 등에 필요한 양에 가정과 사무실에서 난방 등에 사용하는 에너지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까지 합치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내는 대기 오염 원인의 대부분이 건설업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딱히 아파트는 안 좋은 것이니 짓지도 말고 살지도 말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위에 기술했듯이 현대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삶에 맞추기 위해 많은 변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이제는 우리가 한옥이라는 것을 단순히 전통문화나 웰빙을 위한 럭셔리한 집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의 시대로 가는 건축에서 써먹을 수 있는 대안 건축으로 다루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한옥을 지어야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한옥을 지어야 할까요? 지금까지 써내려 온 것을 토대로 다음 편에는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 자신이 건축가인 입장에서 한옥을 이렇게 지어라라고 말하는 것이 좀 우습기는 합니다만, 제가 지어 놓은 한옥은 어차피 아직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 편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버 사진 : 구례 운조루 / ParisBoucher
P.S. 지난 글과 이번 글 사이, 싸여가는 참고 문헌 리스트를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참고 문헌 전용 메거진과 글을 따로 열었습니다. 혹시 이 글이나 이전 글에 쓰여진 내용의 출처나 각 주제별로 더 깊은 내용이 담긴 책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