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박사 4남매 엄마의 남다른 교육법
내가 늦은 나이에 석사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의외로 많이 들었던 말이 '공부를 다시 한다고?! 대단하다!' 였다. 나는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라면) 그래서 항상 거침 없이 자격증 시험도 신청하고, 어학연수도 간다고 하고, 석박사까지 공부한다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로 공부를 계속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중 누구도 의대, 서울대를 갈만큼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다만 좀 다른 점은 넷 모두 수능이 끝났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공 논문을 자연스럽게 읽고 쓸 정도로. 그게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어떻게 공부를 시켰길래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이 된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른 집과 가장 달랐던 부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분위기일 것이다.
첫번째. 엄마의 강력한 의지로,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지금이야 TV 없는 거실이 많이 늘었는데, 90년대만 해도 거실에 TV가 없는 집이 없었다. 아, 그러고보니 우리 집에도 있긴 있었는데, 안방에 아빠를 위한 작은 TV가 하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엄마도 아빠도, 우리가 보는 앞에서 TV를 절대로 켜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리는,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리모콘을 잡고 TV를 켜는 것에 조금 눈치를 본다. 그냥 머릿 속에 'TV는 엄마 허락맡고 보는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깊게 박힌 듯 하다. 어쨌든 아빠도 엄마의 말을 따라 우리가 다 자러 가고 나서야 방에 들어가서 몰래(?) TV를 보셨다.
우리 집 거실에는 TV와 TV장 대신(그때는 벽걸이가 없었으니까) 거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이 있었다. 엄마는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화장품, 옷, 신발, 가방, 외식 이런 것 대신 '책'에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TV를 보는 대신 언제나 맘껏 놀고 싸우다가 책을 읽었다.
엄마는 책 읽을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항상 우리에게 책 읽으라고 하고 살림을 하셨다. 그래도 한쪽 책장에는 엄마 책이 많이 있었다. 나는 읽거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그 책들의 제목을 읽었고, 펼쳐보았고, 나는 언제 '어른 책'을 읽게 될지 궁금했다.
한편 아빠는 책 대신 기계나 차 도면들을 보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친 몸을 이끌고 늦게 퇴근해서, 저녁먹고 늘어져서 TV를 켜지 않았다면, 아빠는 대체 뭘 했을까 싶다. 직장인이 된 우리는 퇴근하고 누워서 넷플릭스 보는게 일상인데.
그런데 우리의 기억속에는 적어도 아빠가 혼자 방에 들어가거나 TV를 본 기억이 없다.
아빠는 저녁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넷과 함께 있었고, 우리와 놀아주거나 적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티비가 없는 집은, 대신 말이 많아진다.
그게 두번째. 말이 많았다.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은지 우리 넷은 언제나 미주알 고주알 엄마 아빠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부터, 숙제, 친구, 학원, 읽었던 책의 내용까지. 네명이서 서로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으려고 말을 해댔고, 잠시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할 말이 떨어지면 우리는 새로 배운 것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나의 공부법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배운 걸, 남에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나의 언어로.
네명이서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엄마 아빠 귀에서 피가 안 났다는게 놀랍다. 아빠는 항상 집이 돛대기 시장같다고 했고, 우리는 친구집에 놀러가면 형제 자매가 넷인 우리 집에 비해 집이 놀랍도록 조용하다는 것에 항상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지만 않으면 엄마 아빠는 참을 성있게 우리의 말을 다 들어주는 편이었고, 우리는 넷이 잘난 척 경쟁 - '너 이 책 읽었어? 안읽었지?' '무슨 책 줄거리? 나 다 알아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줄 말하기) - 를 하느라 자연스레 경쟁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렇다. 세번째.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터울 적은 4남매 속에서 관심과 인정,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잘나야 한다. 아무리 엄마가 공평한 사랑을 준다 해도 우리는 사랑을 독차지 하기 위해 자연스레 경쟁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뭔가를 잘하는 거'였다. 예를 들면 받아쓰기를 만점 받는다던가, 영어 책을 잘 읽는다던가, 반장을 한다던가 하는 것들. 그래서 엄마가 딱히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우리는 시험을 잘 보고 싶어했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우리 넷 다 공부에 있어 처음부터 좌절감을 느끼기보다는 앞서나가는 편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읽는 습관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오히려 엄마는 형제들간의 경쟁에서 한명이라도 좌절감을 느낄까봐 그것을 조절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셨던 것 같다. 한명을 너무 추켜 세우지도 않고, 실수한 것을 비난하지도 않으셨다. 네명 모두가, 나머지 셋이 만점을 받았는데 혼자 하나 틀렸을 때, 엄마가 끼어들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책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셨기 때문에 '다음에 틀리지 않으면 되지'로 넘어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결과보다 과정에 칭찬을 해 주었는데, 네명 각자 꼭 한가지씩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준 부분들이 있었다.
나같은 경우는 "정말 끈기있게 앉아 있다"고 : (끈기 있게 앉아 있는데 성적은 안나옴)
둘째는 "잔머리가 잘 돈다"고: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함),
셋째는 "암기를 따라갈 자가 없다"고 : (외우기는 잘 하는데 창의력 부족?),
넷째는 "스트레스도 안받고 알아서 잘한다"고 : (더 할 수 있는데 안 함).
서로 공격하기 바쁜 우리 넷도 엄마의 세뇌(?)에 수긍했고 다들 본인이 그리고 서로가 다른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 뿐',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네번째. 말 그대로 공부를 '못한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가 직접 행동으로 보였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배움의 목표를 세워서 달성 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더 나은 내가 되면 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에 '못하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한자 공부를 할 때, 엄마는 함께 한자를 외우며 붓펜으로 일일히 모든 한자를 종이에 써서 벽에 빼곡이 붙였다. 한자 자격증 시험도 같이 봤다. 둘째가 중학교 때, 엄마는 영어를 거부하는 둘째와 영단어장 한권을 통째로 함께 외웠다.
우리 엄마는 애 넷을 키우고 시어머니까지 뒷바라지 하면서 동시에 엄마는 전문대학에 등록해서 몇년간 학교를 다니셨다. 보건 복지사, 간호 조무사, 베이킹 자격증 그리고 심지어 아빠 사업을 위해 자동차 정비 기능사까지 땄다!
본인과는 거리가 먼 자동차 엔진에 대해 달달 외우고, 실기 시험을 위해 기꺼이 고등학생들과 자동차 정비 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기어코 자동자 정비 기능사를 따낸 엄마에게, "나 못해, 자신없어" 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공부를 넘어서 우리에게 삶의 지침을 직접 보여준 것이나 다름 없다. "핑계대지 말고 마음 먹었으면 해봐라"
대학교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우리는 함께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 당연했다. 엄마의 롤 모델(?)이었던 박혜란 교수님과 비슷했었던 것 같다. 그 집도 엄마 아빠가 공부하고 있으니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다들 그냥 으레 공부하는 것인 줄 알았다는 것. 우리 집도 그랬던 것 같다.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우리가 아직까지 공부하는 것은 당연하다. 수능을 넘어선 공부,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면서 성장해야 한다는 가르침. 우리 엄마의 공부관이 남들과 달랐다면 그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