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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Oct 23. 2023

가자지구랑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어째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멈추라고 말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이 방문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위치한 중동에서는 오랜시간을 끌어온 화약고에 다시 한번 불이 붙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에 이은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지구 폭격에 대한 이야기다. 



중동 전문가가 아닌 이상,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가자지구에 얽힌 역사와 전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이야기는 유럽에 뿔뿔히 흩어살던 유대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옛 유대 민족이 살던 지역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고, 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아닐까. 그것이 '내'가 아는 ‘얕고 넓은 상식’ 안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렇게 팔레스타인을 분쟁 지역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로 휴가를 간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이 결국 자기 나라를 세웠나 보다, 라고 어렴풋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유럽으로 이사를 왔어도,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출신 플랫메이트와 살아도 여전히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서. 




그러다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을 보았다. 물론 잔혹한 테러집단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를 무자비하게 폭격하고 있었다. 국경없는 의사회고 프레스고 상관 없이 다 죽어나갔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어째서 저기에 있는 사람들은 진작 ‘가자 지구(Gaza Strip)’라는 곳에서 도망가지 않은 것인가. 



 거기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된다.

1947년의 팔레스타인 지도와 현재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비교해보면 이스라엘이 현저하게 영토를 넓힌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의 현 총리 그리고 최장 집권 총리인 네타냐후가 강경노선을 밀고 나가면서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핍박은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가장 큰 예시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말 그대로 살던 집에서 쫓아내고, 점령 지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주 시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런 행위는 국제법상 금지되어 있지만 어찌저찌 조용하게 이스라엘은 그렇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남이 살던 땅에 가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자기’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 흠. 어디에서 많이 듣던 레파토리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_Tlnk0RL5VM



어쨌든 이스라엘이 소위 우리나라 군대에서 롤모델로 선전하는 “남녀모두 필수인 군사훈련과 이로 인한 전국민이 예비군”인 군대를 앞세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밀어붙였는데, 그럼 밀려나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결국 그렇게 팔레스타인 인들은 떠돌이 난민이 되었다. 이게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도가 저 지경이 되도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없앨 기세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얼마나 “조용히” 진행되었는지, 사람들은 혹은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2005년 지도 오른쪽의 섬들처럼 찍혀있는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서안지구 - west bank 라고 부르는데, 이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의 치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이다. 이 곳은 길도 나누어져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 쓰는 길,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이 쓸 수 있는 길. 이스라엘 아이들이 가는 학교,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갈 수 있는 학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장소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장소들. 이건 뭐 거의 인종차별 정책에서 듣던 이야기인데. 



인종차별. 어쩌면 이 단어가 현재 가자지구의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설명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지도 왼쪽의 해안과 이집트에 인접한 작은 녹색이 바로 가자지구다. 현재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그 지역의 토박이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가자지구로 피난 온 사람들, 그리고 강제로 마을에서 쫓겨나 강제 이주 당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피난 왔는데, 혹은 강제로 쫓겨나 온 곳에 어느날 갑자기 이스라엘이 ‘벽’을 세워버린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철조망이 쳐지고, 군사지역이 되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한국인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에서도 공공연하게 팔레스타인인을 쓸어버리겠다는 극우파로, 이전 팔레스타인과 온건 노선을 타던 전 총리(Yitzhak Rabin)를 처단해야 한다고 시위하던 정치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총리는 암살당했고, 그 후 평화로 가는 길은 멀어져 버렸다. (평화 통일을 주장하다가 암살당한 위인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2005년 팔레스타인에게 ‘본 때’를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지구의 해안선도 막고, 이집트로 가는 통로도 차단했다. 세종시 정도의 크기의 도시에 230만명이 갇혔다. 전기, 물, 음식 공급도 모두 차단되었다. 그럼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냐고? 놀랍게도 이스라엘 정부는 한 사람이 간신히 살 수 있을 만큼의 열량을 계산해서 국제 사회의 식량 원조 트럭이 매일 그 만큼만 이집트를 통해 가자지구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은 또한 가자지구의 사람들이 강제로 인구등록을 하도록 만드는 것과 연관된다. 등록을 해야, 그만큼 배급을 받으니까.  인구의 40%이상이 실업가다. 전기는 하루에 3시간 들어오면 많이 들어온다. 물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 전기가 왠 말이란 말인가. 

가자지구는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되었고 하마스, 극단 이스라엘 반대 세력은 바로 그 감옥에서 탄생했다.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테러리스트 집단을 옹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락 폭탄을 던지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한국인으로서, 나는 하마스의 건재 이유를 단 1%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더 큰 충격은 타인의 ‘핍박’을 받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 같은 유대인인 (유대인이 나치 치하에서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행동을 할 수가 있는가, 였다. 

그런데 내가 잘 못 생각했다.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 국민은 아니고, 또 모든 이스라엘 국민이 정부의 강경 노선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이 무슬림이 아니고(팔레스타인은 이슬람교가 많지만 크리스천 팔레스타인 등 종교가 다양하다) 모두가 하마스 편이 아니듯.


우리는 극단주의자들이 특히나 국가나 종교에 한정해 모든 것을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많은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 지구 폭격을 멈추라고 시위에 나섰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현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대한 비난과 시위가 이어져 왔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이 먼저 시작했잖아’ 라고 말하면 그것도 틀린 말이다. ‘팔레스타인’이 아닌 ‘하마스’가 시작했다. 거기다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 라는 ‘시작 시점’에 대해 말하자면 분쟁의 역사는 끝도 없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분쟁은 따지고 보면 영국의 팔레스타인 식민 점령에서 씨앗이 심어졌고, 유럽의 유대인 학살과도 연관되어 있다.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이스라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극우 강경파들이 서로를 비인간화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탄압을 하고, 비 인간적인 살해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피의 복수로 이어진다. 인간이 아니다. 나의 가족과 친구를 살해한 살인자일뿐. 한반도도 서로를 죽고 죽이는 복수의 굴레를 경험했다.  


가자지구 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본다면, 어떻게 200만명이 사는 곳에 유일한 탈출구를 막고 폭탄(그것도 백린탄)을 투하한단 말인가? 

이스라엘 극우 강경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짐승’이라는 인식, 인종 차별을 넘어선 비인간화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이스라엘 국민들은 삐까번쩍한 건물이 즐비한 도시(텔아비브)를 세우고, 돈도 많고 군대도 빵빵한 잘난 사람들’이지, 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종교 또한 거기에 이용된다. 팔레스타인은 무슬림, 이슬람교는 악당, 그리고 유대교는 제일이라는 유대교 우월주의도 한 몫 하겠다.



또한 이것은 파워 게임이다. 감히 ‘약골인 너’가 ‘이렇게 강대한 나’를 쳤어? 그래, 내가 이번 기회에 단단히 나의 ‘잘남’을 보여주고, 너희의 무력함, 무능력함, 그리고 열등함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파워 게임이다. 그 파워를 보여주는데 ‘열등한’ 인간들이 얼마나 죽어나가든지는 알 바 아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그렇게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사라질 수록 좋다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공습을 제노사이드 (인종청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전쟁은 단순히 팔레스타인이 ‘괜히’ 시작해서 이스라엘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최근 점점 더 각국에서 커지고 심화되는 우익의 모습을 대변한다. 또한 힘 없는 국가와 힘 있는 국가의 싸움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 보여준다. 힘이 있는 국가는 어떻게 지속해서 힘(파워)을 유지하고, 힘 없는 국가와 사람들은 어떻게 큰 희생만 당하는지. 어째서 힘이 있는 국가가 지금껏 해온 억압적인 일은 국제사회에서 묻히고 어째서 힘 없는 국가는 아무리 이러한 비 인간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부르짖어도 외면받는가. 



지금도 국가의 차원에서는 소위 ‘강대국’들은 잔인한 폭격을 멈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 국제법으로 백린탄을 사용하는 것이 위법이라면서 이스라엘은 백린탄을 사용하는데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가? 만약 반대의 경우였다면, 국제 사회가 가만히 있었을까? 

개인의 차원에서는 가자지구의 폭격을 멈추라고 하면 반유대주의자로 몰린다. 왜 강대국, 우익 정부의 비인간적, 인종차별적, 잔인한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이고 “친팔레스타인”인가? 




이번 전쟁에 대한 한국의 반응을 보며, 우리는 어떤 나라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한국 뉴스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 쓴다. 왜 우리는 팔-이 전쟁이 아니라 이-팔 전쟁이라고 하는가. 알겠다, 미국은 친이스라엘이고, 우리는 친미라서 그렇다는 걸.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예시라 하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이-팔이라고 하는 것.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한국 사람이라면 현 팔레스타인 인들의 상황에 더 눈물 흘리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기 위해 밀사가 몰래 국제 회의장에 ‘난입’하고 결국 분신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와 아픔을 가진 나라다. 우리도 열등한 제 2국민, 후진국 국민 취급을 받았었다. 

현재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기에서 볼 수 있는 색깔인 검정색, 흰색, 빨간색, 녹색을 한번에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서안 지구에서는 수박을 그릴 수 없다. 우리도 마음대로 우리말을 쓸 수 조차 없는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도 도망갈 곳이 없는 전쟁 상황을 겪었고,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알고 있다. 





우리의 일이 아니니 가만히 있는다. 

괜히 건드려 부스럼 만들지 않는다.

관심 없다.


침묵의 이유를 선택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그리고 우리가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이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것처럼 북한과 남한도 동아시아의 화약고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사회가 극우화되어가고 우리와 다른 ‘남’들을 비인간화 시키면 되어가면 갈수록 ‘전쟁’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또한 중동이라는 너무나 먼 곳에서 일어난,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전쟁이라 생각해 만들어낸 우리의 침묵이,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국제사회로부터 겪을 무관심과 침묵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약 어떤 ‘정치적’, ‘전략적’인 이유로 미국이 한국전쟁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가 과연 ‘약소국’이 겪는 상황과 다를까?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선진국의 반열에 든다고 자부하지만, 전통 서구 열강들, 그들만의 리그의 관점에서 대한민국은 ‘식민지’ 였지 ‘식민지를 지녔던 나라’가 아니다. 

만약 중국이나 일본이 어떠한 이유로 우리와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이스라엘과 비슷한 취급을 받을까, 팔레스타인과 비슷한 취급을 받을까? 파워 게임을 지지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 취급을, 우리가 약소국이라 그렇지, 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테이블, 정의롭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그들의 테이블에 들어가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들처럼 되는 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길인가?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신봉하며, 힘을 과시하고, 못나 보이는 남을 무시하고, 우리가 우월하다고 믿는 것? 그러한 세계관이 현재의 전쟁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현 이스라엘 정부의 행동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우리는 파워 게임을 지지한다는 것,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것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명확하다. 

연대하는 것이다. 말하는 것이다. 

강대국, 우익 정부의 약소국, 비주류에 대한 비인간적, 인종차별적, 잔인한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자지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말하는 것. 



미미할 수 있다. 말도 안되는 이상적인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가자지구에 폭격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고, 팔레스타인 영토의 역사에 대해 지구 반대편에서도 배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쩌면 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최초로 전세계 ‘사람’들에 의해 분쟁이 종식되는 사건의 발단이 될른지도 모른다. 

이것은 누군가가 말하듯 팔레스타인과, 이슬람교와, 아랍인들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이것은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리고 우리는 불의에 대응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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