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raSue Mar 25. 2024

나는 솔로

싱글로 사는 삶에 대한 고찰



나는 만 나이로도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기고 한국식 나이로는 이미 서른 중반을 넘어선 소위 말하는 ‘노처녀’가 되어 버렸다. 물론 요즘 시대에 그정도는 노처녀도 아니라고 하지만, (특히 여자의) 결혼은 늦어도 서른 전에 하는 거라고 굳게 믿는 우리 아빠의 생각에 따르면 나는 이미 노처녀다. 


막상 단어를 되새김질 해보니 노처녀라는 단어도 요즘 시대에 좀 이상하긴 하다. 내가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처녀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처녀로 살고 싶지도 않고. 어쨌든 그 문제는 차치하고, 노처녀건 아니건, 더 큰 문제는, 몇 년 동안이나 혼자, 솔로, 싱글로 (마지막 남자친구 비슷한 게 뭐였더라 정확히 곱씹어 보니 세상에 7년 전이다!)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도 여전히 누군가와 연인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싱글이라고 하면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외로움 일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은 혼기를 놓치는 내가 걱정스럽다며 니가 외로울까봐 그렇지, 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나를 종종 괴롭히는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다.


만약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고, 외향적이라 무조건 타인과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혹은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데 있어 불안감이 높아서 남과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아마 매년 나라를 이동하고 직업 바꾸며 살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의 성향과 성격은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면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누군가와 사귀고 같이 다니면서 나의 자유를 어느정도 포기해야 하는 느낌, 또는 구속당하는 느낌보다는 외로움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이다. 나는 두 감정을 모두 사랑하고 동시에 싫어한다.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누군가 같이 다닐 사람이 그립고, 누군가와 오손도손 팔짱끼고 다니다 보면 이제는 내 멋대로 활개치고 다니는 것이 그립다.


누군가의 말처럼 남들과 있어도 온전히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도 있다. 그걸 상대방을 통해 채우려고 발버둥치다 보면 오히려 둘 인데도 혼자보다 더 외로워 지기도 한다. 혼자건 둘이건, 나는 외로움과 평생 친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은 나를 더 이상 괴롭게 하진 않는다. 어쨌든 나는 나의 외로움을 즐기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싱글인 것 같다. 외로우면 글도 잘 써진다!


사실 요새는 그렇게 외롭지도 않다. 

친구도 있고, 취미생활 그룹도 있고, 본 가족도 있고, 문화생활도 하고, 여행도 다닌다. 요즘 세상에 커뮤니티를 찾으면 있지 뭐. 앞으로 나이 들어도 운동 그룹 있고, 독서 그룹도 있을 것이고, 커리어 관련된 그룹도 있을 것이고, 싱글그룹도 있겠지. 외로움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달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를 종종 괴롭히는 감정은 외로움보다는, 의구심이다. 

혼자 이렇게 평온하고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게 ‘올바른 길’인가 하는 의구심. 이 의구심은 주변을 둘러보며 비교할 때 더욱 커진다. 나 혼자만 ‘다르게’ 사는 것 같을 때 더 커진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그런 것만 같다. 소위 말하는, 뭔가 ‘문제가 있으니까’ 아직까지 짝을 못 찾고 싱글로 살겠지, 하는 ‘커플 권하는 사회’의 소리를 내 스스로 내면화 해서 나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사회는 정말로 ‘커플 권하는 사회’다. 한국에서는 노처녀 노총각이면 소개팅에, 선보라고 중매시키고, 국제 결혼까지 권장하면서 커플을 많이 만들어야 결혼시켜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죄책감까지 자극한다. 유럽에서는 한국처럼 결혼과 출산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커플에 유리하게 되어 있다. 싱글용 집은 없고, 큰 원베드룸에 작은 방과 거실이 딸린 커플용 집만 즐비하고. 이벤트도 다 플러스 원(+1) 으로 둘이 같이 오라고 하고, 두명이면 할인되고 혼자면 할인 안되는 그런 것들. 물론 그 중의 정점은 파트너 비자다. 혼자면 어떻게 해서든 니가 우리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라고 하면서, 현지인과 커플이면 파트너라고 비자를 내준다. (물론 파트너 비자 신청도 고되고 고된 길이고 공평한 길도 아니다..이건 또 다른 이야기로 언젠간 해 보도록 하겠다) 

티비에서도 온통 커플 뿐이다. 영화는 온통 짝을 찾는걸로 끝나고, 그래야만 해피엔딩인 것처럼. 짝찾기 예능도 항상 난리다. 한국이건 해외건 마치 모든 싱글은 커플이 되는게 목적인 것만 같이 묘사한다.


사회제도가 은근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내가 직격탄을 받을 때는,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이 더이상 아무도 싱글이 없다는 것을 인지할 때다. 다들 짝이 있다! 싱글을 찾는게 거의 유니콘 급이다. 주변에 싱글이 많을때는 이런 의구심이 적다. 그런데 싱글이 나밖에 없어질 때는, 의구심이 커진다. 왜 나만 싱글인거지? 이게 정말로 내가 선택한 길이 맞나? 내가 선택한게 아니라 주어진 길인건가?  설마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라서, 커플일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라서 싱글인 것인가?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싱글인 이유는 나의 우선순위가 다른 것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지 않나? 우선순위가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것이라면 커플이 되겠지. 하지만 나의 우선순위는 아직도 더 많이 배우고, 여행하고, 일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삶에 파트너가 없다면 앙꼬없는 찐빵같을 수 있겠지만, 짝이 있어서 더 고생하고 살았던 사람들을, 나는 더 많이 보았다. 사실 나는 내가 영영 파트너를 만나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좀 늦게 만날 뿐이지. 



커플의 세계에서 ‘일반적인 삶’과 달리 주체적으로 싱글로 사는 삶, 혹은 또다른 관계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딩크도, 싱글맘, 싱글대디도, 돌싱도, 퀴어커플도..기타 등등).

그것은  ‘정답’을 권하는 사회에서 ‘나만의 답’을 찾겠다고 발버둥 치고, 끊임없이 사회의 검열과 자기 자신의 검열을 이겨 나가고 또 이겨나가는 일이다. 그러니까 너무 쉽게 모든 싱글을 ‘(노오력도 안하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사람’ 으로 치부하여 “내가 도와줄테니까 찾아봐, 소개팅좀 더 많이 해봐, 그러다간 외롭고 불쌍한 사람 된다” 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틀 안에서만 타인을 이해하기 마련이니까, 한번도 ‘일반적인 삶’ 그 바깥을 상상해 본적도, 기회도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점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일반적인 삶’의 범위도 확대되게 되겠지. 노처녀의 나이가 더 과거에 비해 더 높아진 것처럼, 아니 노처녀라는 단어를 점점 쓰지 않게 된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웃음과 마음아픔의 그 미묘한 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