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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얼마를 모아야 불안하지 않을까

그 금액에 도달하면 불안 끝 행복 시작일까?

by ClaraSue


2025년 5월 월급을 받은 후, 오랫만에 세이빙을 확인해 보았다.

다음달에도 1000유로를 세이빙 한다면 드디어 두번째 만유로 패키지가 완성된다

간단히 말하면 한달만 지나면 나는 2만유로 - 환율 적용해서 환전하면 한국 돈으로는 3000만원 - 을 저축한 것다.


취직 이후 거진 3년간 3천만원, 1년에 천만원씩 모은 거다.





뿌듯하거나 자랑스럽기 보다는

불안감 (anxiety)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앵자이어티~~ 이래서 내가 통장을 잘 열어보지 않는거죠~~ 앵자이어튀ㅣㅣㅣㅣ



나의 조급한 마음으로는 돈 모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 이 속도로 이 돈 모아서 뭘 할수 있나 (티끌모아 티끌일 뿐) + 나름 돈 안쓰고 살았는데도 이 정도면 대체 얼마나 더 무엇을 포기하고 허리띠를 조여야 된단 말인가 모르겠다.


한국 돈으로 바꾸면 높아진 환율 빨을 받아서 3천이지마는,

유로로 계산한다면 3년에 2만유로를 모은거니까 1년에 만유로도 못 모은 것이다. 함부로 쓰는 돈도 없는데 그 정도도 세이빙을 못하다니 뭔가 내가 한심한 것만 같다. 내가 너무 가계부도 안쓰고 돈이 줄줄 새는 걸까.




하지만 나 자신을 대변하자면,

월급의 1/3 가까이 되는 돈이 월세 + 공과금으로 나가고 물가 높은 곳에서 생활비 메꾸며 살아가는데 허덕인다.

그래, 내가 '재밌는 일'에는 돈을 안아끼긴 한다. 공연을 보러 가거나 여행을 가는 등의 일. 하지만 반대로 나도 얼마나 일상생활에서는 "나름" 자린고비처럼 사는지 모른다!


쇼핑을 기본적으로 자주 하지 않고 (옷, 화장품, 신발 등등에 돈 안쓰기), 미용실, 네일샵도 가지 않으며 배달음식도 절대 안시켜 먹는다. 일반 쇼핑도 안하는데 명품이라니? 관심도 없다. 데이트 안할때가 돈 모으기 최적이다 해서 외식, 바 (밖에서 술마시면 돈 젤많이 깨짐) 진짜 최소한으로 가고 까페도 정말 잘 안간다. 집에서 커피 내려 먹고 사무실 가서 공짜 커피 마심....(쓰다보니 슬프네)


게임같은 것에 돈도 안 쓰고 취미생활에 쓰는 비용도 소비하는 것 (콜렉팅, 장비 등) 이면 아예 관심이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몇몇 구독비용은 나가는 편이고 그것도 컨트롤하려고 노력한다. 점심도 안 사먹으려고 집에서 점심 먹고 출근하는 날도 많다. (도시락을 싸려고 노력하지마는 넘 귀찮음)


뭔가 나름 포기하고 대신 돈 덜 쓰고 참자, 하는게 많은것 같은데, 왜, 어째서, 돈은 그만큼 팍팍 모이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긴장을 풀고 돈을 쓰는 순간,

세이빙은 순식간에 절반 혹은 제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모으는 건 힘든데 왜 쓰는건 그렇게 쉬울까.




그거다. 쓰는게 쉬운거. 그게 나는 열이 받는거다. 쓰는 걸 기준으로 생각하면 돈이 너무 적다.

만유로 (천오백) 모아서 만세! 드디어 일년동안 눈물겹게 모았다! 해도 하루만에 다 쓸 자신이 있다. 특히 어디 여행 한번 가거나 아니면 또 이사가는데 이사 비용 + 인테리어 + 가구 등등 장만하면, 그냥 먼지처럼 사라질 수준의 돈인 것이다.


하긴 천, 천오백 정도까지가 항상 나의 세이빙이었고 그 돈은 언제나 먼지처럼 사라졌다.

24살 첫 직장 퇴사 후 부터 지금의 직장을 찾기까지 10년 동안 나는 불안정했고, 일년 단위로 나라를 바꿔가면서 취직을 했다. 일년살이(?)처럼 월급이 들어올때 최대한 모아서 다음 단계에서 다시 취직할때까지 그 세이빙으로 버티고..그랬었지. 그 습관 - 수입이 들어올때 모은다 - 가 여전히 남아있다.

어찌저찌 모은 돈으로 석사 유학까지 끝내고 나니 딱 0 이었다. 0원. 취직 안되면 한국 갈 비행기 표 끊을 돈을 부모님에게 염치 불구하고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 때 취직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습관처럼 돈을 모은다. 또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제 내가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아서 드디어 난생 처음으로 천오백이 넘는 돈을 모으고, 장기적인 재정플랜을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내가 돈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가 적당한 것인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가? 어디까지 '현재의 행복'을 위해서 쓰고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너무 많이 참으며 살고 싶진 않은데.

만약 참는다면 무엇을 위해서 참아야 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을 사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싶다. 그런데 집을 사는 것은 멀고 지난해 보인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하는가.

돈을 모으지 않아도 불안하고 모아도 불안하다. 모으지 않으면 돈이 없으니까 불안하고, 돈을 모아도 항상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불안하다. 이제 드디어 난생처음 '시드머니'가 생겼는데, 무언가를 해서 돈을 불려야 하는데 그냥 가만히 가지고 있어서 불안하고, 투자를 해 보자니 날릴까봐 불안하다.

아아 대체 돈, 이것은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가.



나는 빠듯한 집안 재정으로 어떻게해서든 돈을 굴리고 불려보려고 애쓰던 엄마를 보면서 자랐다. 예금만 가지고 안된다는 불안, 투자를 하면 하는대로 불안, 빚을 지면 지는대로 불안, 이자나 주식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에 따라 불안한 그 감정은 나에게도 스며들었으며, 나는 그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줄 정도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없으면 불안한) 감정과 - 그렇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과소비를 지양함 - 동시에 그렇게 돈에 얽매여 아등바등 불안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다 - 그렇기 때문에 '경험에 투자할 때' 돈 안아낌.

그 둘 사이에서 나는 항상 줄타기를 한다.





글쓰면서 돌아보니 이건 뭐 1억은 커녕 아직 3천만원도 없는데 혼자 불안하네 어쩌네 지껄이고 있는 사람임...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혼자 열심히 허우적대며 여기까지 잘 왔다.


불안해하기보다는 오랫만에 느끼는 안정적인 수입을 좀 더 즐기고,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즐길 수 있을때 즐기자. 적어도 불안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 행복에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책임질 것 - 부양 가족이든, 갚아야 할 집 모기지이든 - 것들이 생기면 얽매이지 않고 싶어도 얽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이 때도 지나갈 것이고, 나중에 지금을 회고하면서,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기를, 괜히 불안하게 보냈다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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