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를 강요한 남자친구를 고소할 수 있을까?
남자친구가 아기를 지우라고 했어요. 저한테 화를 내진 않았지만
낙태를 안 하면 헤어져야 될 것 같다고 해서... 그래서 낙태를 했는데
그 뒤로 연락도 잘 안 받더니 미안하다고 하고 이제 연락이 없어요...
낙태죄와 관련된 상담을 하면 마음이 아파요. 딱 봐도 나이 어린, 여동생 같은 의뢰인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아무래도 원하지 않는 임신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대의 연인들이 낙태를 감행하기 때문이겠죠. 작년부터 낙태죄 폐지 여부를 둘러싼 뜨거운 논의가 있었는데요, 여기선 낙태를 둘러싼 연인들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낙태죄의 당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을게요.
그런데 변호사님, 낙태는 불법이잖아요.
그럼 남자친구가 저한테 낙태하라고 강요한 건 고소할 수 없어요?
법조문부터 볼까요?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녀=여자'를 말해요. 즉,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그러니 '남자친구가 강요해서 낙태를 했다’고 고소하는 건 자수하러 가는 것밖엔 안 되겠죠. 문제는 남자친구는 처벌받지 않느냐는 것인데요.
간혹 여성만 낙태죄로 처벌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은...
1) 남자친구랑 여자친구가 함께 “우리 낙태하자!”고 한 경우
제30조(공동정범)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경우인데, 여자와 남자가 함께 낙태죄의 공범이 되는 거에요. 어차피 둘 다 처벌받으니 아무도 고소를 안 할 것이고... 결국 이런 경우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겠죠.
2) 남자친구가 낙태하기 싫은 여자친구에게 낙태하라고 한 경우
형법 제31조(교사범)
①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위 사연이 이 경우에 해당되는데, 결론은 1) 번과 동일해요. 여기서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남자친구'이고, '죄를 실행한 자=여자친구'가 됩니다.
3) 여자친구가 낙태를 하였고, 남자친구는 이를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경우
제32조(종범)
①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이럴 때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낙태 범행을 방조한 것이 돼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보다 약한 처벌을 받게 되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여자는 처벌을 피할 수가 없는 건가요?
사실, 낙태를 이유로 상담하러 오는 분들이 가장 궁금한 건 이거에요. 낙태를 하는 한, 여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냐는 질문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도 낙태죄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제한적으로만 가능하고('강요된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 및 법에서 낙태를 해도 된다고 규정한 특별한 경우 - 강간, 질병 등), 위 사연의 상담자는 낙태죄 처벌을 피할 수 없어요.
'강요된 행위'란?
제12조(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12조의 '강요된 행위'에 해당한다면, 낙태를 했어도 남자친구만 처벌받게 됩니다. 언뜻 보면 상담자의 사연도 남자친구가 강요했다는 것이어서 해당될 수 있어 보이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해요. '강요된 행위'에서 말하는 '강요'는 ‘반항이 불가능한 정도’,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에 이르는 정도를 말해요. 쉽게 말하면, 강요된 행위를 하지 않으면 내 생명이 위험할 정도라고 볼 수 있겠죠. 이건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폭행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폭행, 협박을 의미하는 거에요.
따라서 남자친구가 단순히 '애 안지우면 헤어질거야!'라고 협박(?)했다고 하더라도 '강요된 행위'에서 말하는 '협박'이 될 수는 없는 것이죠....
같이 죽자!! 가 아닌 한,
낙태를 이유로 전 남자친구를 고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