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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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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y 09. 2024

097 멀어지는 것과 친해지기

내가 한참을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은 내게 그런 말을 해주셨다. 친한 친구는 바뀔 수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것에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친한 친구가 되는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 내내 했던 나의 고민이 조금은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살려면 알게 모르게 내 가치관도 내가 알지 못하는 속도로, 내가 정해놓은 한계를 벗어나기 마련이다. 가끔은 그 속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상황에 놓인 나는 무척 괴로울 수밖에 없다. 나는 이상하지도 않고, 바보 같지도, 무책임하지도 않은데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그럴 때 찾게 되는 것이 나의 본질을 그래도 알아주는 나의 옛 친구들이었다. 너희들은 나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증명해주겠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는 친구를 찾는다. 하지만 그들도 본질을 잃어가긴 마찬가지여서 옛날 우리가 나눴던 다정함과 위로는 점점 사라져 갔고, 만나면 결혼 예물과 아파트 값과 남자의 직업과 이제는 남자의 바람과 아이의 교육까지. 이런 얘기 때문에 그 속에서도 나는 길 잃은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재주가 있어서, 한동안은 그 틈에서 잘 지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나와 상관없는 얘기만 늘어놓는다 해도 고갤 끄덕이며 들어주고, 그것이 의리라고 믿었다. 솔직히 나는 그들 속에서 그들과 다른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는 친구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집에 올 때 버스 손잡이를 잡고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곱씹어도 떠오르는 말 한마디가 없어서 우울해했다. 

왜 그렇게 사니?


왜 그렇게 사니?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젠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러고 싶지 않은 나를 숨기고 싶지도 않게 되었다. 생활의 방식이 달라지고, 취향이 달라지고, 배경이 달라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면, 이제 그것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야 떠나야 한다. 그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성장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게 하는 상황에 더 이상 나를 그냥 두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며, 멀어지는 것과 친해지기로 했다. 멀어진 것에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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