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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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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y 15. 2024

096 문자메시지


01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2학년 1반 아이들이 부담임인 나에게 롤링페이퍼를 적어서 가져왔다. 큰 의미는 없지만,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잠깐 들여다볼 순 있었다.


선생님 소녀감성이세요. (그.. 그... 래.. 고맙다)

샘 재밌는 이벤트 매번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응 자주 열게)

선생님 항상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해요. (네가 안 오니 내가 가야 하지 않겠니?)

항상 재밌는 책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네가 추천해 주는 책 열심히 다 읽어오니까)

이제 대출 밀리지 않을게요 ㅎㅎ 항상 건강하세요. (제발 그래죠)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게 친절이라니 너 친절을 잘 모르는 거 아닐까)


부담임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출장으로 종례를 두어 번 들어갔고, 한 번은 학급자치회 시간에 임장을 해야 했다. 그때 아이들과 그나마 좀 친해진 것 같다. 자치회 학급회의를 한다고 해서 나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했는데, 아이들 또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고 해서 그럼 있을래. 했더니 아이들이 좋아했고, 우왕좌왕하는 학급회의에서 너희 정신없는 거 같은데 내가 워드 쳐서 화면에 띄워줄까 했더니 좋아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를 좀 더 친근하게 느낀 것 같다. 이번 달에 체험활동이 있는데 그것까지 갔다 오면 더 친해지겠지!


02

민서에게 문자가 왔다. 이전 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 1학기까지, 나는 민서에게 고등학교 첫 사서선생님이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갑자기 선생님이 바뀐다고 했을 때 아이들의 황망한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민서는 사정 때문에 마지막 날 함께하지 못했다. 공고라서 여학생은 좀 드물고 그중에서도 도서부는 여학생이 귀한데 민서는 혼자 꿋꿋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도서부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선생님에게 힘이 되는지 아마 아이들을 모를 거다. 떠나는 마지막 날, 많은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들러 인사를 했는데, 대부분 1학년과 3학년이었고, 2학년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민서에게 문자가 온 거다. 3학년이 된 민서에게. 정말, 정말로 기뻤다.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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