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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ug 29. 2023

내가 바란 너의 마지막

짧은 일기 2

유자는 설 명절을 앞두고 떠났다. 엄마는 유자가 설 명절 막바지가 아닌 시작에 떠난 것도 집사를 배려해 준 것 같아 고맙다고 말했다. 유자가 급성 혈전증이 오고 며칠을 더 살았다면 명절 연휴 내내 언제 떠날지 모를 유자에게 매달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명절 막바지에 유자를 잃은 우리 가족은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곧바로 직장으로, 일터로 나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유자가 우리 가족을 위해 연휴 첫날 새벽에 떠난 걸지도 모른다. 유자는 눈치도 빠르고 똑똑한 고양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고맙고 예쁘다. 유자가 너무 오래 아프지 않고 고양이 별로 돌아간 것도, 진심으로 고마운 것 중 하나다. 유자는 떠나기 전 1년 이상을 아무런 증세없이 활발하고 예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했다. 즉사의 위험을 늘 안고 사는 아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무탈했다. 그래서 그만큼 더 불안하기도 했다. 언제 갑자기 이 행복이 깨질까 두려웠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바란 유자의 마지막은 괴로워하면서 우리와 한 달을 더 있는 것 보다, 어느날 갑자기 떠나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가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아파하는 것은 집사가 모두 감내할테니, 그저 유자가 아프지 않게 가기를 바랬다. 

유자는 아프지 않은 고양이처럼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혈전이 생겨 괴로워하다 병원으로 갔고, 하루 반을 입원해 있다가 집으로 온 지 반나절 만에 고별로 떠났다. 사실 조금의 고통도 느끼지 않고 가길 바랬지만, 어쨌든 염려했던 장기 입원이나 장기 투병 없이 떠났음에 충분히 감사하다. 너의 체온과 너의 숨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건 집사의 욕심일 뿐. 니가 많이 아프지 않고 갔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렇게 너와의 이별을 다독여보려고, 혼자 얼마나 많이 되뇌였는지 모른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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