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길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혜미 Jun 11. 2020

06. 여행과 청춘의 따뜻한 기록, 조유일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의 저자가 '나'를 찾아 떠난 여행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송혜미(이하 ‘송’):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조유일(이하 ‘조’): 약 2년간 6대륙 55개국을 여행한 여행가이자, 세계여행 감성에세이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의 저자 조유일이다.


송: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조: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 줄여서 ‘여행’이라는 타이틀의 수필집이다.


해외여행가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세계를 여행했다. 그때의 고민과 생각을 책으로 엮었다. 장기 여행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면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송: ‘여행 작가’ 이외의 정체성이 있다면.

조: 아직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하지는 못했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을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행도 출판도 꿈을 좇는 잠깐의 과정이었다.


현재 예술 경영 전공으로 대학원을 준비 중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다. 우선은 하고 싶은 것들을 차근차근해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이해하고 납득할 만한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송: 아직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진 않는지.

조: 사실 책을 내면 그때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라고 하기엔 아직 민망하다. 물론 앞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출간하려 계획 중이다. 그럼에도 평생을 작가로서 살아갈지는 정하지 못했다. 글쓰기에 온전히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작가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하기엔 아직 그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출간에 관하여
세계여행 감성에세이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송: 어떤 계기로 산문집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조: 여행이 끝나고 책을 내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책을 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정말 외롭고 힘들었는데 그때 그 마음을 풀어준 게 기록이자 글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며 많은 글을 남겼었다. 그때 글을 쓰는 재미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일주일 뒤 바로 독서실로 향했다. 약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책을 낼 수 있었다.


송: ‘여행 에세이’가 아닌 ‘세계여행 감성에세이’라는 장르를 부여한 이유가 있다면.

조: 최대한 많은 나라들을 돌아보자는 목표로 여행을 떠났다. 그래서 특정 어떤 나라의 특징을 잡긴 어려웠지만 내 여행이 지닌 다채로운 색깔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계여행’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또한 인스타그램 플랫폼에 맞춰진 감성적인 사진과 글이 책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한 감성적인 느낌과 분위기를 책에 많이 녹여내면서 ‘감성 에세이’라는 장르를 부여하게 되었다.


송: 부모님께서 다 읽으신 후 마음 아파하시진 않았는지.

조: 출간 전에 완성된 원고를 어머니께 보여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보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셔서 더 이상 보여드리지 않았다. 책이 모두 완성되고 책을 조용히 방에 두고 나왔다. 역시나 눈물을 훔치시는 소리가 들렸다. 과거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했을지 상상해보면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출간의 과정에 관하여


송: 출간 작업을 하며 상업적으로 고려한 부분이 있었는지.

조: 없다고 말할 순 없다. 독자의 입장을 고려하다 보니 원고가 자연스럽게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렀을 수도 있다. 사실 원고 초안에는 최종 원고보다 울적한 이야기가 많았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현상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으로 이면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출간 작업을 하면서는 독자의 입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모든 내용을 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의 기분이 더욱 중요했다. 독자들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느낌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반적인 느낌에 공을 들였다.


송: 이 책을 통해서 독자가 어떤 영향을 받기를 원하는지.

조: 이 책을 통해서 독자의 삶이 크게 바뀌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피식 웃거나, 잠시 삶을 돌아보거나, 조금이나마 에너지를 얻는 정도의 반응과 영향이면 충분할 것 같다. 아주 사소한 반응과 변화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책을 통해서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널, 기억하려고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여행 중 인연은 언제나 큰 기쁨과 영감을 주면서 더불어 위험과 걱정까지 안아야 했다.’ -79pg

‘그건 복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 아닌, 그들에게 다가온 모든 일상을 행복으로 바꿀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 “나 인복이 있어.” 이후로 이 문장을 내뱉는 사람은 무조건 믿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 95pg


송: 책 한 권에 사람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실려있다. 여행을 하며 ‘사람’에 대해 갖게 된 가치관이 있는지.

조: 나는 외로움을 잘 안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았다. 너무 외로웠다. 세계여행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이면서도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사람에 대한 애착이 커졌다.


여행지에서 근사한 무언가를 보면 처음엔 좋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눈에 익숙해지면 그게 그거였다. 하지만 사람들을 통해 느낀 세상은 언제나 다채로웠다. 그래서 책 또한 세계의 관광지를 돌아다녔던 감상보다는 사람들을 만나 느낀 감상을 많이 싣게 되었다.


‘오직 지금의 만남이 중요했고 지금의 헤어짐이 아쉽다. 그렇기에 지금 느끼는 이 섭섭함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헤어짐에 아프고 힘들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 99pg


송: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을 것 같다. 가장 여운이 남는 만남이 있다면.

조: 여행 중 가졌던 모든 만남이 내게 큰 의미를 주었다.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친구와 유럽에서 일주일 정도 함께 지냈던 시간이 될 것 같다.


그 친구와 헤어졌을 때 많이 울었다. 당시에 반년 동안 사람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을 거다. 고작 일주일이었는데 그게 여행 중 한 사람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이었다. 함께 할 땐 몰랐는데 친구가 떠나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가장 여운에 남는다.


여전히 난, 행복하려고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숱한 시간과 보이지 않는 고민들을 혼자 헤쳐나가며 얼마나 앓아 왔던 것일까. 나는 그런 날카로운 시간을 지나온 것이었다. 아프면서도 입으로는 괜찮다 말하고 외로우면서 입으로는 즐겁다 말하는, 나를 잘 안다고 믿으면서 정작 단 한 번도 이해해본 적 없는 무심한 인간이 바로 나였다.’-228pg


송: 책을 다 읽은 후 여행을 떠나고 싶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더욱 탐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행 후 스스로에 대해서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면.

조: 나는 예전부터 되고 싶은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 느낀 점은 결국 나답게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나의 성격, 성향,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발휘하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기가 갖고 태어난 성향을 현실과 잘 조합하고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시선과 문화가 어떻든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사회에 올바르게 흡수될 수 있는 방향이라면 나의 타고난 것들을 깊게 고민하고 그것에 맞춰 살아가려 하고 있다.


여전히 난, 간직하려고


'살면서 가장 외로웠던 시간이 이제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줄 유일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 보통의 일상에 특별한 감정을 준 그때가 고맙다. 그날들로 인해 이제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됐으니까.' - 199pg


송: ‘추억’의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조: 추억은 결국 현재 나의 감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바꾸고 만들어서 자신만의 추억으로 형성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진짜든 거짓이든 상관없다. 그런 추억과 회상을 통해서 지금 내가 웃을 수 있고 내 삶의 의미를 다져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시작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송: 처음 여행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조: 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입대해서 군 복무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전역 후 한 달 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호주에서는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일과 여행을 함께 했다. 호주에서의 생활비와 여행자금은 호주에서 번 돈으로 모두 충당했다. 그래서 호주에서의 경비는 마이너스도, 플러스도 없었다. 그 후 1년 동안은 군 복무를 하며 모았던 돈으로 여행 자금을 충당했다.


송: 어떤 가치를 품고 세계여행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조: 어떤 가치를 품고 여행을 떠났다고 말하기엔 모호하다. 사실 그 ‘가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가 지니고 있는 좁은 시야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그래서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후 돌아와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한 방향이 나에게 훨씬 더 적합하고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통해 가져온 그 가치관과 기준들로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와서 보니 명확한 가치관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하는 동안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가치관이 이미 나의 안에 쌓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찾지 못한 것인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여행의 길목


송: 인스타그램을 둘러보았다. 여행지에서 촬영한 프리스타일 댄스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춤은 어떤 의미인지.

조: 춤은 내가 평생 가져가야 할 취미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출 때 해소감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춤을 췄기에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쓸 때, 춤을 통해 느꼈던 비슷한 해소감을 느꼈고 삶의 활력이 되었다. 글로써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춤이 책 출간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송: 여행은 외롭고 힘들다. 여행이라는 ‘사서 고생’ 이면에 어떤 매력이 있을지.

조: 나 같은 경우엔 두 가지 매력을 느꼈다.


첫 번째로 오랜 사색이 가능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경험과 자극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살아가며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다. 고민과 사색에 온전하게 빠져들 기회가 부족하다.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면 나를 혼자 둠으로써 자신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로는 외로움 자체에 매력이 있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덩그러니 있는 경험은 쉽지 않다. 그래서 외로움 그 자체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험으로 오히려 사람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피하는 게 현명해? 물론 그렇지. 내 감정이 상했는데도? 아니면 이깟 일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은 걸까?’ -35pg


송: 여행을 하며 자신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있었는지.

조: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었다.


다잡는다기 보다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했다. 다스리거나 다잡는다는 건 무언가를 참는 행위이지 않은가. 단지 여행을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보다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과정이었기에 나 자신에 대한 채찍이나 격려는 필요하지 않았다.


송: 책을 다 읽은 후 일반적인 ‘청춘’의 에세이와는 차별화된다고 생각했다.

조: 맞다. 사실 컨택했던 출판사 중의 한 곳에서는 청춘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자고 이야기했었다. 청년이라면 고민할 수 있는 취직이나 사랑과 관련한 내용 말이다. 어떻게 보면 책을 더욱 상업적으로 만들기 위한 좋은 장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을 하며 사랑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취업 준비를 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20대를 대표해서 청년의 고민거리를 글로 적어 내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송: 한창 청춘일 때에 군 복무를 하고 바로 여행을 떠났다. 연애에 대한 갈증은 없었는지.

조: 연애는 내 관심사 밖이었다. 연애를 하려면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들이 계속 있었다. 섣불리 감정을 주고받으면 상대에게 상처만 주고 끝이 날 것 같았다.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스스로 선을 그으려 했다.


하지만 청춘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20대 중반부터가 가장 예쁠 나이인데 나는 후줄근하게 다니며 친구들과 재미있는 추억도 쌓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 젊음을 의미 있게 보낸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청춘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세상의 이야기
[사진제공: 조유일 작가님]


‘도움을 준다는 건 단순히 주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더 깊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 38pg


송: 여행 중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봉사자로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조: 봉사는 희생도, 의무도 아니다. 봉사활동 자체가 봉사자 스스로를 이롭고 보람 있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서로에게 건강하고 이로운 관계가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직접 만나보았던 그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탓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단지 조금 더 부유한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을 가난하다고 여길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거두는 태도가 중요하다.


송: 경험을 통해서 지니게 된 태도인지.

조: 맞다. 나 또한 처음 아프리카에 갈 때 걱정이 많았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들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아프리카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나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선 오히려 생소한 문화와 실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런 점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중매체의 이미지가 주는 자극이 크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선입견은 있다. 나 또한 말로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고 해도 스스로 위선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스스로를 경계하고 노력하게 되는 계기였다. 그래서 지금은 선입견이 많이 옅어졌다.


여행 그 이후


송: 이제는 좀 외롭지 않은지, 아직 외로움이 남아있는지.

조: 외롭지 않다.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다.


송: 여행을 하기 이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변화했는지.

조: 책 내용에 있다시피 지금에 와서 그걸 판단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전과 후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이전 모습을 낮추고 지금 모습을 부풀리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물론 오랜 시간 여행을 했고 많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변화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하는 과정에서 이미 변했을 것이고 지금의 내게는 그러한 태도가 스며들어 있으니 그 차이점을 명확하게 느끼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에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꿈꾸던 것을 하고 돌아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여행 이후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삶에 있어서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여러 일들을 신중하게 고민한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다.


송: 지금은 여행에서 벗어났는지.

조: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원래 바로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여행과 관련된 책을 쓰다 보니 계속 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분명 몸은 한국에 적응했는데 아직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송: 여행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조: 처음엔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을 하든 일상적인 것, 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려 했다. 여행을 놓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그때의 감각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여행을 할 때는 굉장히 예민했다. 어떤 것을 보든, 무엇을 하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쉽게 감상을 내뱉을 수 있었다. 외로움도 금방 느꼈고 사람을 만나면 금방 즐거웠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글을 쓰니 툭툭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는 게 뻔하고 감정이 무뎌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로 나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때의 감각, 느낌, 분위기를 다시 떠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송: 여행과 일상의 괴리감이 느껴지는지.

조: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여행을 오래 하니 한국에서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한국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해외여행만이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주고 싶었던 느낌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더라도 그 삶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여행이지 않을까. 현실의 삶 또한 여행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와서 생활하다 보니 해외에서 여행하던 기분과는 많이 다르다. 어쩌면 스스로 말만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것을 아닐지 생각하곤 한다. 여행이냐 아니냐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려있겠지만 아직 나 스스로 여행과 현실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고민과 꿈


송: 최근 고민이 있다면.

조: 지금까지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여행과 책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드디어 여행도, 책 출간도 끝이 났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끝내서 마음이 후련하다. 그만큼 잠시 허전한 시간이다. 그래서 앞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송: 막연하게나마 꿈이 있다면.

조: 막연하지만 나중에 예술 관련 사업을 하고 싶다. 글이든, 사진이든, 춤이든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을 돕고 싶다.


만약 그 꿈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다른 꿈이 다가오길 기다릴 것이다. 내가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던 것도 정말 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앞으로의 내 삶 또한 변화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가 오든 그때 다가온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작가의 음악적 시선
김거지 첫 번째 EP '밥줄' [사진출처: 멜론]


작년 가을, 나는 잠시 다른 차원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듯 했다. 로마의 곳곳은 진한 정체성을 품고 있었다. 판테온 신전에 들어섰을 땐 눈물이 고였고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나라는 존재의 크기을 가늠해보았다. 나는 지금껏 삶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수용적인 시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한국 밖의 세상에선 모르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음껏 모르고 마음껏 알아가며 마음껏 즐거워했다. 이탈리아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왜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받아들이는 삶을 살지 못하는가.


한국에서도 모르는 것은 늘 존재한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조차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를 때 설레었으나 한국에서는 모를 때 자존심이 튀어나온다. 청춘의 길목에 있는 나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가 지니고 있는 좁은 시야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그래서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후 돌아와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한 방향이 나에게 훨씬 더 적합하고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인터뷰 중


무지했으나 아는 척 살아온 나는 나이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서야 퇴사를 하고 나의 길을 찾는다.   그런 내게 있어서 조유일 작가님의 메시지는 길잡이의 정론처럼 느껴진다. 마음껏 모르고 마음껏 알아가며 마음껏 즐거워하리. 삶이 두려운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청춘의 고뇌를 소리 내었고 그 용기의 댓가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거지'의 '독백'을 들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청춘의 방황이 선하고 순수한 무언가와 맞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