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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Apr 15. 2020

지독한 삶 속에서, 카코포니(Cacophony)

음악에서 피어나는 위로와 개인적 죄책감


누군가는 참 어려운 말을 한다. 삶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난 후에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삶의 이치를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내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들 고난을 피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고난과 성장 그 모든 것을 계획해 아픔에 대비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허망한 가정일 뿐이다. 어찌할 도리없이 매몰차게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삶은 어쩐지 지독하다. 알아도 막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그 지독한 삶 속에서 기어이 피어나는 꽃을 보았다. 바로 '카코포니(Cacophony)'다.


카코포니를 소개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오래전 어떤 레코딩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매달 한 팀의 뮤지션을 선정해 음원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홈레코딩만 해보았을 뿐 외부 레코딩은 처음이었기에 스스로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한 달 먼저 레코딩에 참여한 '쥬마루드'라는 팀과 나 자신을 무던히도 비교하며 나는 나의 작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쥬마루드의 결과물은 음원 사이트에 버젓이 올라갔던 데에 반해 나는 레코딩을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선보였던 '여인의 독백'이라는 곡은 다시 들어도 패기롭다. 인디 씬의 신예가 만들어낸 음악이라기엔 여전히 압도적이다. 끝내 그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질투심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우스운 일이다.

 

쥬마루드 디지털 싱글 '여인의 독백' [출처: 멜론]


그러다 얼마 전 온스테이지를 둘러보던 중 눈부신 한 여인이 썸네일에 등장했다. 클릭과 동시에 음악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낯익은 목소리임을 알아챘다. 그녀였다. 쥬마루드의 리더이자 보컬, 김민경. 그녀는 카코포니라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무대 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생각했다. '나도 그때 음악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갑자기 슬퍼졌다. 그녀의 사운드는 나를 자극했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는 아티스트 '이적'은 '오래된 미래처럼, 새로운 과거처럼 스며들어온다.'며 그녀의 음악을 극찬했다. 나는 지난 고민들과 시간들을 뒤적이다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을 계획에 두지 않듯이 나는 그녀의 음악에 젖어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의 능력이 탐났다. 그녀에 대한 질투를 거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코 재생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그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쥬마루드 해체 이후 카코포니는 세 개의 앨범을 발매했고 대중음악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브런치에 '카코포니는 어떻게 음악을 만들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었다. 글은 그녀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한 권의 회고록과 같이 짙은 기억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렸다.

 

카코포니 디지털 싱글 '귀환' [출처: 멜론]


카코포니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쥬마루드 이후 고시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병상을 지키며 하던 공부마저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돈에 중독되어 자신의 성향을 무시한 채 살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병든 어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고. 그리곤 오랜 시간 마음에 묻어두었던 음악의 꿈을 다시 다짐했다. 그녀는 어머니 옆에서 함께 병들어가는 심정으로 가사를 적어 내렸다. 어머니에게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내 안에서 숨을 쉬며 노래하세요. 그대가 원했던 그 멜로디로'('숨', 1집 '和') 카코포니가 내는 한 소절의 소리 만으로도 사람들은 깊은 울림을 느낀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 어머니의 영혼을 품고 노래하는 듯하다. 그녀의 영적인 포효를 느끼며 이내 나는 나의 질투심을 거두었다. 내가 그녀를 질투하는 일은 그녀의 고되었던 삶을 질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음악은 곧 그녀의 고난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아픔으로부터 위로받았다. 인간의 성품은 이토록 고약하며 삶은 지겹도록 지독하다.

알면 알수록 알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은 꼭 아픔과 부끄러움 안에서 깨달아야만 하는 것일까. 가혹하고 비참하다. 한 가지의 자명한 사실 안에서 나는 좌절과 극복의 기로에 선다. 때로 우리는 삶의 흐름을 결코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코포니는 삶의 이치를 부정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삶의 극단에 다다라 음악적 황금기를 맞이했다. 아픔 위에 피어난 그녀에게서 사운드로 일구어진 향기로운 기운이 풍겨 난다. 역경이 재료가 되어 누군가가 노래할 때,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위로를 받을 때, 나는 고민한다. 어떤 죄책감과 감사함과 존경 사이에서. 나는 이럴 때 삶은 지독하다는 생각에 가장 깊이 빠지곤 한다. 염치없게도 나는 그녀의 위로로 인해 삶을 살아낼 것만 같다.


카코포니 정규 1집 '和(화)' [출처: 멜론]


커버 사진-카코포니 정규 2집 '夢(Dream)' [출처: 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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