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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Feb 28. 2021

Van 02. 노숙자와 힙스터

한 걸음 더 가까이서 만난 도시

다음 날 다시 밴쿠버 전철 ‘하늘 열차’(Skytrain)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나왔다. 캐나다 서부의 대표 항구 도시답게 메인 역사 이름이 ‘워터 프런트’ (항구) 역이었다.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글로벌 회계법인 마크가 새겨진 유리 마천루와 마주쳤다. 높게 치솟은 밋밋한 직각 건물은 회계법인의 이미지에 어울렸다. 맞은편에는 정반대 스타일의 화려한 유럽풍 건물이 보였다. 명품관을 자랑하는 싱클레어 쇼핑몰이었다.

 

이처럼 밴쿠버 중심 상업 지구인 다운타운에는 높은 현대식 건물과 르네상스풍 건축물이 각양각색의 천 조각을 이어 만든 퀼트 작품처럼 빽빽이 밀집해 있었다. 물론 항구도시답게 반짝이는 푸른 바다가 이 모든 것을 어울렀다. 

 

중심 상업 지구를 드나드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누어졌다. 여느 메이저 도시의 중심지와 마찬가지로 빠른 발걸음의 회사원 부류. 주변 호텔에 투숙하는 여유로운 리듬의 여행객 부류. 마지막으로는, 비틀거리는 리듬의 노숙자 부류.

 

나는 마지막 부류에 눈길이 갔다. 이상하게도 밴쿠버에는 유독 노숙인이 눈에 많이 띄었다.

찾아보니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밴쿠버의 노숙자 문제는 실존하는 문제라고 한다. 몇 년 전 밴쿠버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이 자기 도시의 노숙자를 모아서 밴쿠버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나눠준 결과라고 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연고지를 떠나 밴쿠버에 왔을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베스트 10'으로 선정된 도시에서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오산이었다. 추울 때는 -40도까지 내려가는 캐나다의 겨울을 나기에 밴쿠버는 가장 따뜻한 도시인 것은 맞다. 하지만 물가와 집값이 만만치 않은데 반해서 마약은 구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안락하게 노숙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도시이지만 노숙하는 삶을 벗어나기에는 장애물이 더욱 높은 도시인 것이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허공에 대고 외쳐대는 그들을 간혹 마주치며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수제 맥줏집 Steamworks Brewery에 도착했다. 수제 맥주를 사랑하는 이삼십 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빗질이 간절해 보이는 장발 혹은 똥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하고 허름한 빈티지 잠바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그들은 이 바에 오는 도중에 맞닥뜨린 노숙자들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힙스터’ 였다. 

 

힙스터 문화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본인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문화인데 요새 그들 사이에서는 낡은 옷을 마구잡이로 입는 ‘그런지 룩’이 ‘유행 중’이었다. 아무거나 걸쳐 입은 듯한 모습이 포인트인 ‘그런지 룩’은 사실 신중히 코디한 브랜드 옷이고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를 강조하기 위해 기른 수염은 사실 친환경 수염 손질 키트로 세심하게 손질한 수염이었다. 노숙자가 많은 도시에 돈을 들여 그들을 따라 하는 패션 또한 유행이라니 아이러니했다. 

 

게다가 본래 비주류이기 때문에 쿨하다고 평가되는 힙스터 문화가 밴쿠버에서만은 대중  문화인 듯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수제 맥주집과 스페셜티 커피숍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탓에 노숙자가 넘쳐나는 도시를 여행하는 중이었다. 메인 스트림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모인 탓에 하나의 비주류 문화가 주류가 되어버린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밴쿠버의 이면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의도와 결과가 다른 모순 투성이의 모습이 거울의 나를 보는 듯 낯설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아직 인생의 크고 작은 모순을 안타까워하는 반면 밴쿠버는 이 모든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나저나 수제 맥주는 꽤 맛있었다. 달달한 맥아와 씁쓸한 홉이 적당히 어우러진 맛은 탄산이 빠지면 밍밍해져 버리는 일반 맥주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었다. 충분히 주 (alcohol) 류 문화가 될 만했다. 이렇게 여행에서 발견하는 작은 모순부터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인생의 모순 또한 음~ 하고 장인이 담근 수제 맥주를 마시듯이 음미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앗, 수제 맥주의 맛을 알아버렸다. 우선은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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