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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Apr 29. 2021

MTL 07. 보장된 행복

메이플, 어디까지 먹어봤나요

캐나다에서 돌아와서 몇 주간 거의 매일 아침으로 메이플 버터를 바른 크루아상을 먹었다. 그리고 메이플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캐나다 여행에서 메이플 이야기라니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플 이야기를 쓴다. 흔히들 알고 있는 메이플 시럽 이외에 다른 메이플 특산품도 아주 먹을만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메이플 시럽은 단풍나무 수액을 졸여만든 달콤한 시럽이다. 메이플 향만 슬쩍 첨가된 슈퍼표 설탕시럽이 아니라 순도 100%의 진짜 메이플 시럽을 먹으면 밋밋한 일차원적 단맛 대신 카라멜, 바닐라, 과일 등의 향을 복합적으로 섞어놓은 풍부한 단맛을 맛볼 수 있다. 맛이 풍부하기 때문인지 설탕보다 훨씬 덜 질린다. 색이 짙으면 짙을수록 풍미가 깊고 진득한 시럽이다. 팬케이크에 뿌려 먹는 건 당연하고 아이스크림에도, 과일과 견과류에 끼얹어먹어도, 떡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 나는 심지어 치즈에까지 끼얹어 먹어봤는데 단짠단짠의 조합이 꽤나 신선했다.


캐나다 국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캐나다인의 단풍나무 자부심은 대단하다. 세계에서 소비되는 메이플 시럽의 85%가 캐나다산이라고 한다. 특히 내가 여행 중인 퀘벡 지방은 메이플의 원조 지방이다. 그래서인지 퀘벡 시티의 쁘띠 샹플랭 거리의 마지막도 메이플 전문점 '라 쁘띠 카반 에 수끄 드 퀘벡' (퀘벡의 작은 캔디숍이라는 뜻)가 차지하고 있었다.


상호 그대로 조그마한 과자 가게


이 작은 오두막에 모든 메이플 특산품이 모여 있었다. 메이플 시럽은 물론이고 메이플 사탕, 쿠키, 차, 버터까지. 처음 보는 간식거리 중 유독 끌리는 것들을 신중히 골라 소중히 카운터로 가져갔다. 


후기부터 말하자면 연한 카라멜 색 메이플 크림이 쿠키 사이에 발라져 있는 단풍나무 잎 모양 쿠키는 단맛이 꽤나 강한 편인데 홍차와 특히 잘 어울린다. 소설 읽기 좋은 나른한 오후에 향긋하고 따뜻한 차 한 잔과 메이플 쿠키 하나를 함께 천천히 음미한다. 기념품 숍에 납품되는 과자는 슈퍼마켓 납품용과 다른 건지 내가 느끼기에는 기념품 숍 쿠키가 메이플 향이 더 많이 나고 신선한 듯했다.


차를 좋아한다면 빈티지 느낌 통과 헝겊 주머니에 담긴 메이플 향 티를 시도해봐도 되겠다. 진한 홍차 베이스에 메이플 향이 희미하게 맴돈다. 메이플이라 단맛이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리 단맛은 전혀 없었다. 차가 담긴 통의 디자인이 너무 이뻐서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선물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메이플 버터. 진짜 버터는 아니고 식감이 버터 같아서 메이플 버터라고 불린다. 버터처럼 부드럽게 빵에 바를 수 있어서 메이플 시럽으로 팬케이크를 축축이 적셔먹는 대신 빵의 식감도 느끼면서 메이플 맛도 음미하고 싶을 때는 메이플 버터가 적격인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크루아상을 오븐에 데워 메이플 버터를 안에 얇게 발라먹었다. 부드러운 메이플 버터는 갓 구운 따뜻한 빵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그 위에 시나몬 파우더를 솔솔 뿌린 다음 갓 내린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으면 마법처럼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된다. 월요병도 거뜬한 만병통치약이다. 친구에게 선물로 한 통을 가져다주었는데 나보다도 더 빨리 먹어치우고는 캐나다 갈 일이 또 없냐며 아쉬워했다.


쇼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들어갈 때는 빨리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가게 앞거리 가판대에서는 ‘메이플 태피’라는 사탕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근데 사탕은 어디에 있지?” 


가판대 위에는 온통 갈린 얼음뿐이었다. 가게 주인에게 사탕을 주문하니 즉석으로 메이플 시럽을 얼음 위에 부어서 굳힌 다음 나무막대에 돌돌 말아주었다. 뭔가 좀 허술하다. 그렇지만 난 그 투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엿같이 끈적한 메이플이 붙은 막대기를 핥으며 불량식품을 쪽쪽 빨아먹을 때 느끼던 낯익은 희열을 느꼈다.


하굣길 달고나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아이처럼 태피를 하나 입에 물고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꽤 유명한 가게인지 관광객들이 많이 왔다. 그중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탕 한 알이라도 손에 꼭 쥐고 나오는 그들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간혹 가게에서 나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이들은 나를 따라 태피도 사 먹는다.


태피를 다 먹으니 몬트리올로 돌아가는 저녁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아쉽지만 퀘벡 여행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한다. 역사를 향해 해가 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을은 아름답고 입안에는 아직 달콤한 메이플 향이 남아있다. 


캐나다 여행은 이제 마지막이었지만 이날 쟁여놓은 메이플 특산품으로 한동안 든든했다. 내일 아침도 고소한 버터 냄새를 풍기는 크루아상을 바삭하게 구워내 부드럽고 쫄깃한 그 속에 달콤한 메이플 버터를 발라 먹을 거다. 보장된 행복의 맛이다.



집까지 고이 모셔온 메이플 간식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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