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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 돌고래 May 26. 2021

San Fran 05. 다른 세계에 발을 딛다

미국 국민이 직접 뽑은 국립공원 베스트 5

침엽수 숲 그늘 아래서 거대한 절벽을 올려보았다. 날카로운 칼로 깎아낸 듯한 화강암 절벽 밑으로 폭포수가 하얗게 부서셨다. 대도시에서 겨우 네 시간 거리의 이곳은 하나의 다른 세계였다. 수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세계의 이름은 바로 ‘요세미티' -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여행지이다. 국립공원이 많은 미국에서도 베스트 5안에 드는 국립공원이라고 하니, 샌프란시스코에 온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요세미티의 첫인상. CG같은 절벽 배경 photo credit: Round G. 


공원의 평화로운 모습과 달리 이름에 담긴 뜻은 토착 인디언어로 ‘이들 중에 킬러가 있다’라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이름이다. ‘킬러’는 한때 이곳에 서식했었을 맹수를 지칭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부족의 명장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결국 그들을 요세미티에서 추방시킨 유럽인을 지칭하는 말이었을까. 


공포 영화 제목 같은 이름 '요세미티' -  킬러는 누구였을까


‘아이고 이러다 죽겠다.’


나에게 킬러는 맹수도, 인디언 명장도 아닌 날씨였다. 건식 사우나 같은 후끈후끈한 공기가 피부에 착 달라 붙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의 가이드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장신의 가이드는 익숙한 몸짓으로 커다란 바위 사이를 뛰어넘어 ‘신부의 면사포’ 폭포로 우리를 데려갔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흰 물줄기가 옆으로 흩날리는 모습이 흡사 면사포를 연상케 하여 Bride’s vei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오늘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날의 폭포는 예식장에 입장하는 신부의 면사포처럼 얌전히 곧게 밑으로 흘렀다.



“저 절벽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요세미티의 수많은 절벽 중에서도 폭포의 서쪽에 어디서 본듯한 절벽이 있었다. 무려 천 미터 가까운 높이의 이 절벽은 다큐멘터리에도 종종 등장하는 ‘엘 카피탄’(‘인디언 추장’이라는 뜻’)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암벽 등반지이다. 전 세계의 등반 마니아들이 풀장비로, 혹은 심지어 맨손으로 추장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사실 하루 종일 땅에서 절벽을 올려다보기만 하다 보니 절벽 위에서 보는 요세미티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천 미터의 절벽을 오르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엘 카피탄' - 이 절벽을 맨몸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요세미티 투어에는 세쿼이아 국립공원이 끼어있었다. 요세미티는 알고 있어도 세쿼이아는 몰랐었는데, 알고 보니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 열 그루 중 절반이나 보유하는 특색 있는 숲이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나를 코웃음 치듯 내려다보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 '제너럴 셔먼 (General Sherman)'이니 꼭 보고 오라는 미션을 가이드가 주었다.


"제너럴 셔먼이라고?"


맞다, 바로 그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무시하고 통상을 요구하며 버티다가 불태워졌던 신미양요의 원인 제공 장본인 제너럴셔먼호와 같은 이름이다. 불굴의 의지로 머나먼 동쪽의 나라까지 비즈니스를 하러 온 상선과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의 이름을 차지하고 있는 제너럴 셔먼은 미국 남북전쟁 때 큰 공을 세운 장군이라고 한다.


"와~ 이 나무 타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면 되겠다!"


제너럴 셔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비탈길을 총총 뛰어 내려가다가 다른 나무들보다 현저히 큰 한 그루 앞에서 멈춰 섰다. 우람한 몸을 곧게 쭉 뻗은 제너럴 셔먼에게서 수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생물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제너럴 셔먼을 사진으로 담아보려 했으나 실패해서 대신 그린 그림


27층 건물의 높이라 하니 아파트 한채와 맞먹는 높이와 두께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계속 자라고 있다고 하니 내가 만약 이곳을 수십 년 후에 다시 찾는다면 나는 쪼그라들고 나무는 훨씬 더 커져있겠지. 그나저나 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딱 이 공원 안에만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들이 자라게 된 걸까. 세상엔 신기한 일들이 참 많다.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에서도 주변 공원과 산의 크기에 놀랐었지만 오늘 경험한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도 역시 사진으로 담기 힘든 압도적인 크기와 분위기를 풍겼다.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난 곳에 이렇게 잘 보존된 국립공원이 있다니. 이게 미국 서부의 다양한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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