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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Sep 02. 2023

지구의 정복자 리뷰

� 대가의 과학책을 읽었다. 국내에선 #통섭 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다. 옛날 독서모임에서 인상적인 말씀들을 하신 분이 추천한 책인데, 3년 후인 이제서야 읽게 됐다. #사피엔스 류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좀 더 그쪽으로 진득한 과학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이 책은 초기 원시인류 쯤부터 시작해서 구석기~신석기까지 번성한 지구의 정복자들을 관찰한다. 정복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개미, 벌 같은 군체를 이루는 곤충이다.



✏ 이들이 정복자가 된 이유는 진사회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좀 더 상세히 가자면, 인간만이 완전한 진사회성을 얻은 동물이고, 개미, 흰개미류는 진사회성을 가는 경로에서 많은 군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진사회성은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을 위해 이타적 행위들을 지칭하는 성질이다.



✏ 진사회성은 어떻게 얻어질까? 가장 중요한 건 보금자리다. 보금자리를 지키다 보니 자손들이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고, 자신을 희생해 집단을 번영시킨다. 부동산이 이렇게 중요하다.



✏ 개미를 연구한 학자인지 개미 관련 흥미로운 사례들을 많이 알고 있다. 공격성이 가장 강한 개미들은 1m 내에 접근만 해도 군체들이 꼬리를 들고 포름산을 뿜어낸다고 한다. 더 가까이 오면 나무 위로 올라가 저자 위로 떨어지는 방식으로 감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의 개미들은 정말 순한 맛이다. 그 밖에도 일꾼 개미들은 각각의 주체성을 가진 개미가 아니라 여왕개미의 로봇에 가깝다는 비유가 재밌다.



✏ 진사회성에서 주제가 집단선택으로 자연스레 옮겨간다. 예전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유전자 에서 나왔 듯이 자연선택과 진화는 유전자, 즉 개체 수준에서 나온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 하지만 이 이론을 지지하는 Kin(혈육 중심) 선택과 포괄적합도는 실제 생태계에서 관찰되는 증거와 최근의 수리적 모형을 통해서 볼 때 맞지 않다는 게 윌슨의 주장이다. 따라서 집단선택이 개체 수준 선택을 대체해야 한다. (도킨스는 윌슨이 자연선택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고 디스했다.)



✏ 집단선택을 가지고 세계를 관찰할 때 우리는 생태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여왕개미의 배다른 일꾼끼리 여왕을 위해 협력하고 근친성교를 터부시하는 우리의 생물학적 반응과 문화, 유전자의 유사성이 어느정도 달라도 상호호혜성을 발휘하는 동물들을 볼 때, 우리는 집단선택 관점으로 자연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이 책에서는 더 나아가 공진화와 우리의 문화를 진화 수준에서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 공진화는 이 책의 서브 주제 정도이고, 문화는 통섭에도 나와 있으니 건너뛰자.



� 이 책은 고갱의 그림에서 시작한다. 가로로 긴 그림의 제목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가는 곳'이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보여주는 이 그림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 지를 맨 처음 물음을 준다. 윌슨은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시작했고 종국에는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고민한 흔적을 글에 남겼다.



� 윌슨이 존경스러운 점이 두 가지다. 첫 째는 글을 너무 잘 썼다. 어려운 개념인데 차근차근 단계를 잘 밟아가며 독자들을 그의 중심 생각과 이론으로 잘 이끌어 갔다.(그래도 난이도가 있어서 두 번 읽었어야 하는 책이다..) 둘 째는 그가 주장한 것이라도 이후의 반증과 이론이 틀리다고 하면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는 태도이다. 개체 수준 선택에서 집단선택으로 바꾸었을 때 그렇다. 대학자란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닐까.



� 토론 때 한 분이 이 책을 읽고 나에게 개체선택을 지지하냐, 집단선택을 지지하냐고 물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게 노출되고, 읽히게 된 책은 집단선택을 지지하는 책들이 많다. #착한인류 나 #휴먼카인드, 에른스트 페어 교수의 글들을 봐도 생물들은 이타적인 행동과 그 결과로 집단선택을 통한 생존을 많이 보여주었다. 도킨스는 요새 종교와의 싸움에 많이 할애하고 있어서 개체선택을 지지하는 책은 찾기 힘들다. 이건 집단선택과 이타적인 행동이 요새 학설에서 강세란 뜻일까.. 외국 생물학 책은 좀 늦게 번역이 되어서 확실하진 않다.(그 만큼 한국 대중과학의 발전 속도가 늦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볼 때 왠지 더 희망적이다.



� 위에서 잘 다루지 않았지만, 공진화와 유전자 수준을 벗어나는 문화의 변화 속도, 그에 반응하는 우리 삶의 양식도 재미있다. 지금 우리의 삶의 형태는 20년 전과 다르게 많이 변화했다. 당장 스마트폰이 우리의 수면을 빼앗아 가고 있다. 윌슨은 언제부턴가 느린 유전자 변화를 압도하는 문화와 기술들이 다음 세대 우리를 조형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킬까?


� 나는 A.I가 우리를 변화 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A.I가 우리를 노동에서 쫓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다.(그것도 어느정도 포함은 된다.) A.I가 무서운 건 최적화 부분이다. 가격 결정이나 우리의 동선, 라이프 스타일 등을 A.I는 자기 나름의 최적화 방안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끝임없이 추천이란 이름으로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은 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조작되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을까? 그게 긍정일지, 부정일지는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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