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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Dec 18. 2023

안티 에이징 1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19-

리 대리는 C동 건설 현장 사무실로 갔다. B동 바로 옆에 올리고 있는 C동은 내년 초를 완공으로 목표로 두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할 예정이라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거라고 당의 기대를 받는 중이고, 북한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 과정과 당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사를 내보내기 일쑤였다. 리 대리는 핵심 설비가 놓일 위치 확인을 위하여 건설 업체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노 상무님, 안녕하세요." 리 대리는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사무실로 들어서며 인사했다. 사무실은 담배 냄새로 가득했다. 벽 한쪽에는 작은 화초 하나가 이 공기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리 대리님 오셨군요." 자리에 앉아 있던 노 상무가 일어서며 맞이한다. 노 상무의 회사는 평소에는 B동 건물의 유지 및 보수를 맡고 있는 남한의 하청 업체이다. 그 때문에 둘은 서로를 볼 일이 많았다. 자연스레 명함도 주고받고 업무 관련 소통할 일이 많은 사이가 됐다. C동에서 메이저 건설업체가 큰 부분을 시공하면 노 상무의 작업 인력이 들어가서 마감 시공을 하고 있었다. 리 대리는 설비가 위치할 자리와 관련해서 노 상무와 이야기하기로 했다.

"저번에 보내주신 도면을 봤는데, 들어올 설비 크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리 대리가 큰 파일철을 사무실 책상에 놔두며 말했다. 

"그럴 리가? 어디 한번 보죠." 노 상무가 돋보기 안경을 쓰며 책상에 앉아 파일을 폈다. 둘은 C동 한 구역의 설계도와 설비 치수를 비교하며 회의를 했다. 다른 설비와 위치와 어느 정도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노 상무는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 설비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크네요. 반장이랑 얘기해 봐야겠어요." 노 상무는 책상 가운데 있는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고 반장님 사무실로 좀 와보세요. 위치 수정할 게 있어요."

"네, 금방 갈게요." 노이즈가 섞인 대답이 무전기에서 나왔다. 

"곧 오실 거예요. 리 대리님, 식사는 하셨어요? 커피 좀 타줄게요." 노 상무가 일어서며 주전자에 물을 담아 데우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리 대리가 대답했다. 노 상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종이컵 세 개에 믹스 커피를 탔다. 리 대리는 구내식당에 있는 카페의 커피 맛보다 믹스 커피 맛이 좋았다. 달달함과 커피향이 잘 어울렸다. 기회만 된다면 집에 몇 봉지 가져오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포트 안 물이 다 끓기 전에 고 반장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리 대리는 고 반장한테 인사했다.

"고 반장님, 이리 와서 설계도랑 여기 치수 좀 비교해 보세요." 노 상무는 커피잔 하나를 고 반장에게 내밀었다. 고 반장은 가슴팍에 안경을 꺼내어 꼈다. 노 상무보다 더 큰 돋보기 안경이었다.

"흠..." 고 반장은 설계도와 치수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리 대리는 고 반장이 설계도 치수와 파일 안 치수를 각각 가리키는 손가락을 봤다. 두툼한 손가락이 현장에서 보낸 세월을 고증했다. 근데 그보다 눈에 띈 건 손가락과 손 위로 보이는 많은 주름들이었다. 리 대리는 고 반장을 B동 바깥에서 처음 봤다. 현장 안에서는 방진복과 마스크 때문에 나이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이제 보니 눈썹은 백미가 다 됐고, 머리숱도 얼마 없었다. 누가 봐도 환갑을 한참 지난 노인이었다. 나이를 속일 수 있는 날카로운 눈빛이 없었다면 훨씬 늙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부분을 수정하자는 얘기군요." 한참을 이야기 나눈 고 반장이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전체 수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노 전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도면 수정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 반장은 커피를 후루룩 다 마시며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내일 보고해야 해서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리 대리가 말했다.

"네. 문제 없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 반장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노 전무가 물었다. "그럼 다 된 거죠?" 

"네. 근데 고 반장님은 밖에서 처음 뵙는데 굉장히 정정하시네요." 리 대리가 질문했다.

"저분 베테랑이에요. 없으면 이 일 못하죠."

"근데 혹시 저분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글쎄... 올해로 68살 정도 되려나?

"연세가 꽤 있는데 아직도 은퇴를 안 하신 건가요?" 리 대리는 궁금해졌다.

"60대에 은퇴? 한국에서는 안 돼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해야죠." 노 상무가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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