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고난
어떤 사정으로 베트남에 살고 있든 대부분의 한베아이들은 언젠가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들이 베트남 생활을 더 익숙하게 느끼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이들이 마음 편한 곳에 살고 싶은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바람은 고국에 대한 향수일까, 아니면 해외 생활에 대한 선망일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내 머릿속의 한국은 굉장히 배타적이며, 아무리 한국 국적을 가졌어도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을 한국인 취급해주지 않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었고, 겨우 내뱉은 말은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해라”였다.
보통의 한국인은 한국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언제 처음 배웠고 어떻게 익숙해졌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니까. 수능을 칠 때면, 한국인인데 한국어가 제일 어렵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난 다음에는 우리는 엇비슷한 얼굴로 동일한 언어 체계 안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서, 한국어를 어렵게 쟁취한다. 한국어를 쟁취한 다음에도 깨야할 벽은 무수히 많다. 사실 입을 전혀 열지 않아도 외양만으로 차별을 받을 가능성도 높았다. 비슷한 얼굴로 동일한 언어를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한 어떤 방식으로 배타성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의 모든 다문화 가정에게 저마다의 고난이 있었을 것이다. 단일문화 가정에서 나고 자란 나는 감히 그것을 상상조차 못 하겠다. 다만 거칠게 정리하자면, 이들 가정에는 어느 정도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부모가 속성 국제결혼으로 결혼했다. 어떠한 이유로 결혼이 종료됐다. 아빠는 한국에 남고, 엄마는 자식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에 비례해 한국어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에 살았던 기간에 비례해 베트남어를 할 수 있다. 사망, 노화, 질병 또는 자발적인 이유로 한국에 있는 아빠와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아빠 얼굴을 오래전에 보았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어떤 아이는 한국 국적만 가지고 있어 베트남 불법 체류 상태이며, 벌금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또 다른 아이는 장애가 있는데 제대로 된 치료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집에 누워만 있다. 집이 너무 가난해 엄마를 도와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복권을 파는 아이들도 있다. 아빠는 연락이 되지 않고,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가서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 정부, NGO, 여러 봉사자들이 모여 애를 쓰고 있지만,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일은 요원하다. 세상의 많은 질문들이 그렇듯 이 역시 한 번에 변화될 수는 없으며, 짧은 순간이더라도 그들이 배타성이 아닌 어떤 종류의 소속감을 느꼈기를 바라본다.
ps.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란 소리는 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게 또 하나의 배타적인 행동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진다. 나는 어쭙잖게 꼰대스러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 실없는 농담을 건넸어야 했다. 그게 그나마 도움이 됐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