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웅 Feb 21. 2023

인 서울이 별거냐

학벌 '줄 세우기' 없는 사회를 염원하며

  어느 날, 예비 고3 후배의 인스타그램 공부 기록에 반응을 남겼더니, 내게 DM이 왔다.


  “저도 선배님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인 서울 하겠습니다!”


 나는 이 메시지에 “그래, 열심히 해.”라고 답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 순간에 덧붙이고 싶었던 말이 생각났다.


 “인 서울이 별거냐.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지.”


  이 글은 미처 보내지 못한 답에 대한 나의 부연 설명이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인문 잡지 “한편” 10호 “대학”에 실린 ‘학력 무관의 사회를 향하여(난다 지음)’라는 글을 읽어 보았다. 저자는 이 글에서 개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천편일률적으로 측정·평가하여 서열화하는 폭력적인 능력주의에 반대한다. 또 대학(또는 학교) 밖에서 삶을 배우는 사람들이 연대할 것을 주창하며 학력(學歷)이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물론 투명가방끈 활동가 ‘난다’의 주장도 일견 타당하긴 하다. 그러나 나는 ‘학력 무관’이라는 과격한 구호보다는 ‘학벌 줄 세우기 없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더 합리적이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학교 교육(고등교육)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필요하다. 특히나 인공지능·반도체 등 첨단 분야나 예술과 같은 고차원적 학문을 제대로 연구하여 취업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에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삼성전자나 인텔 등 여러 대기업과 협력하여 신설한 반도체 계약학과나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과학기술원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학력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 먼저 지나친 학벌 격차와 대학 서열화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서울대와 지방의 부실대학은 당연히 교육의 질이나 연구비 지원 예산, 또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면학(勉學) 분위기 등 모든 측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난다. 명확하고 당연한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전국 상위권인 서울권 대학들끼리도 서열을 정하고 등급을 나누는 풍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전한 재정과 우수한 교수진, 적극적인 연구 투자, 그리고 올바른 학풍이 존재하는 학교라면 소위 ‘간판’이 어떻든 간에 학업에 정진하는 데 있어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이 가는 것이 길이라 굳게 믿고 진로를 개척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 그러므로, 특히 문과 계열에서 심한, 전공보다 학벌을 숭상하는 풍조도 바뀌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문과 졸업생들이 대부분 학연에 기대어 대기업에 입사하고 승진하는 경향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른 채 선생님과 부모님의 의견에 복종하며 점수 맞춰 대학에 억지로 가서 방황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학벌을 올리려 거금을 들여가며 편입을 준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또 막연히 학벌에 집착하여 상위권 대학을 노려 거듭 반수/n수를 감행하는 것은 개인·사회적으로도 큰 낭비라고 생각한다.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교육비 지출 증가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진로를 탐색하고 학업에 매진할 동량(棟梁)들이 수험에만 골몰하여 학업을 등한시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큰 손해다. 최근 서울 명문대 공대생들이 반수를 위해 휴학·자퇴하는 것과 지방 의대생들의 수도권 의대를 향한 무한 반수 열풍은 요즘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한 반수라는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극단적인 대학 서열화는 사라져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내 주장을 이상(理想)에 가깝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균형 있는 대학 투자가 중요하다. 부실 대학은 과감히 정리하되,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 전문가를 갖추고 연구개발 투자 가치가 있는 모든 대학은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학생 개개인의 꿈과 진로가 학벌 하나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학벌로는 담을 수 없는 학생의 잠재력을 발굴하기 위해 교육부, 대교협 등 관계 당국이 입시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과 진로를 찾아 학벌로부터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하고, 입학 후에도 어느 대학에서든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자기 계발에 매진하며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될 권리가 있다. 학벌, 대학 서열이 무의미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염원하며 “인 서울이 별거냐.”라고 후배들에게 DM 답장을 보내고 싶다.




작성: 2022. 02. 20.

발행: 2023. 02. 20.

Copyright 2023, 김연웅(lakebigyw)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 이전글 한 장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