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엔트로피를 낮추는 ‘작은 몰입’의 힘
10년 전, 회사 임원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말은 엔트로피가 0이군요.”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분위기로 보아 ‘새로운 내용도, 깊은 통찰도 없다’는 비판 정도로 이해하고 그 단어를 기억 속에 묻어두었습니다. 참고로 정보이론에서 엔트로피가 0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정보’를 뜻하기도 하니, 당시 그분의 평가는 꽤나 박했던 셈입니다.
물리학자가 아닌 우리에게 엔트로피는 보통 ‘무질서도’를 뜻합니다.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모든 사물은 무질서한 쪽으로 흐른다는 법칙이죠. 그런데 이 법칙은 우리의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가만히 내버려 둔 방에 먼지가 쌓이고 어질러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가만히 두면 무질서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애를 써서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생각은 엉키고 감정은 산만해집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우리 마음속에서도 끊임없이 커지는 것이죠.
마음에 무질서가 찾아오면 우리는 괴롭습니다. 영화를 보며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회사 일로 불안해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맥락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닙니다. 걱정, 두려움, 질투, 지루함 같은 감정들이 어지럽게 뒤섞인 상태.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엔트로피(Psychic Entropy)라고 부릅니다.
이 어질러진 마음의 방을 정리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사소한 것들입니다. 요즘은 골프공 위에 낙서를 합니다. 오늘은 나무 한 그루를 그렸습니다. 10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그리기’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합니다. 펜 끝이 지나간 자리가 바로바로 눈에 보입니다. 그 진행 사항과 결과를 즉시 확인할 수 있죠.
때로는 고민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공감 가는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 행동은 잠시나마 집중을 선물합니다. 오늘 제가 줄을 그은 문장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중 한 구절이었습니다.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활동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 난이도와 실력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면 사람은 어떤 활동에서도 몰입을 맛보면서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거창한 성취가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골프공에 그린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내 마음의 엔트로피를 낮춰준 것처럼, 내 의식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작은 몰입’만으로도 우리는 어지러운 마음의 질서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해야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몰입 뒤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가만히 두면 어지러워지는 것이 마음의 본성입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정돈해 줄 '작은 나무 한 그루'는 무엇인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