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무슨 일 하세요?’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은 상대방의 나이와 직업을 가장 궁금해한다. ‘나는 SOLO’, ‘솔로지옥’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이 나온다. 나 역시도 만약 내가 저기에 나가면, 어떻게 나를 소개할까 상상하곤 한다.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업무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과제 발굴, 과제 포트폴리오 전략 수립 및 운영, 개발자 행사 기획, 테크 에반젤리스트, Developer Relations, 교육 설계, 전문가 육성, 과제 리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다양성 때문에 나는 내 업에 대한 고민을 자주 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대기업을 다닌다고 하면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서일까? 대기업 이직 후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마치 어렸을 때, 부모의 직업란에 ‘회사원’이라고 적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 내 후광이 되었던 대기업 간판이 사라졌을 때, 나는 나를 무슨 일 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을까?
개발자의 끝은 치킨집이라는 IT 업계의 쓸쓸한 유머가 지금은 잊힌 듯하다. 정년까지 버텨야 한다는 멋쩍은 웃음을 교환하다 보면 직장 생활의 끝은 젖은 낙엽처럼 다들 비슷비슷해 보인다. 물론 남들과 달리 멋진 성과를 내고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친구들도 있다. 부럽다. 그게 나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문은 좁다 더 많은 노력과 실력이 요구되고 운도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는 일하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의 가치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지만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가치를 창출하는 일은 무엇일까? 계속 질문하던 때가 있었다. 정답은 어렵지 않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가치를 느끼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명확하게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진로 고민은 끝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고민한다. 이런 고민의 과정이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이다. 누구나 일의 의미를 찾고 만족도를 높이기 원한다.
지금은 인공지능 시대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고 우리가 생각했던 일의 개념과 직무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은 멈추지 않고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개발도 인공지능이 놀라울 정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더 이상 개발자가 필요 없다고 할까 봐 두려워한다. 개발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고민이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건너 건너 지인은 간단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그런데, 최근에 일이 줄었다고 한다. 인공지능 때문이란다. 영어 번역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한계비용 제로(Zero Marginal Cost)의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내가 했던 일을 인공지능이 뚝딱 해치운다. 딸깍 한 번의 클릭으로 말이다
변화가 심할수록 변하지 않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말이 가슴 깊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일을 통해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는가? 나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대기업을 퇴직하면 나는 뭐를 하는 사람이 되는가? 내가 해왔던 일을 나는 계속하고 있을까? 내가 꿈꾸는 비전은 무엇인가? 그 비전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Amy Wrzesniewski) 교수는 잡 크래프팅이 단순히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쓰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나에게 ‘일하는 나’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회사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과 업무를 빼면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답하기가 까다롭다. 질문만 하다 끝날 것 같다.
위에서 나는 ‘일하는 즐거움으로 자신의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을 언급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심리적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인지 크래프팅(Cognitive Crafting)이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단순히 코드를 짠다"가 아니라 "나는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설계한다"라고 일의 목적을 더 고차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를 말한다.
나는 생각과 고민이 많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을 해왔다. 개발자의 심장을 건드리는 종합 예술가, 아키텍트를 키우는 아키텍트라는 표현은, '동료의 성장을 돕는 사람'으로 나를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해 왔던 것이다.
나와 함께 하는 교육생들은 단순히 구현을 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설계와 의사결정'을 하는 기술 리더, 아키텍트로 성장해야 한다. 아무리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속화된다 하여도 변하지 않은 가치가 있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사이의 신뢰', '복잡한 맥락의 조율', '비전의 제시' 등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좋아하는 직장 선배가 앞으로의 자신을 ‘작가’라고 설정했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정제해 공유하는 과정은 훌륭한 인지 크래프팅이다. 부러웠다. 대기업의 직함을 떼고도 '글을 통해 통찰을 주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응원한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을 벗어나기 어렵다. '직업적 유능함'이라는 안경을 벗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
나는 직장에서 ‘생산성’의 도구였다. 무언가 결과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을 높였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후배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다’도 좋지만, ‘나는 이른 아침, 차가운 아침 공기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의 주체로 나를 살펴보고 싶다. 내가 만들어내는 아웃풋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지는 인풋에 집중해 보고 싶다. 결과물 없는 순수한 취향과 감각을 나열해 보면 어떨까? 인공지능 시대는 ‘취향’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있다.
회사에서 작성한 내 기록들을 보라. 대부분의 기록이 ‘무엇을 했는가(Doing)’이다. 이제는 내가 ‘어떤 상태인가(Being)’로 접근해 봐야겠다. 지나버린 성취가 아니라 지금 상태에 머물러보고 싶다. 어쩌면 이것이 앞으로 나,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어떤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 나에게서 '소프트웨어'와 '조직'을 빼면, 나의 ‘시선’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가’로 질문이 바뀌는 순간이 필요하다. 전자에 매몰되면 성과가 없으면 존재 가치도 흔들리게 된다. 후자에 있다는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그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이다. 이때의 일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다시 업(業, Work)으로 돌아오자. 잡 크래프팅은 정체성(Identity)을 다룬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일을 바꾸는 과정이 아니다.
“My heart is in the work”
— Andrew Carnegie, CMU Motto
지금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 어디일까? 나는 내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나만의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