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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루 Dec 03. 2022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도쿄 이주 후 그 5일간의 마음에 대해 

화요일에 도쿄 하네다로 입국해서 수요일 하루 정리의 시간을 가지고 목, 금 회사에 출근하고 어제 자정에 카타르 월드컵 3차전 한국-포르투칼 경기를 보고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토요일이다. 홀로 보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도쿄 이주 후의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느낀 많은 생각들을 두서없이 써보려고 한다. 


먼저, 도쿄에서의 생활 자체는 서울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 근처 마트와 헬스장, 노트북 할 수 있는 카페, 잘 되어있는 교통 등은 있었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일단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주문 하면 다음날 바로 오는 로켓 배송과 같은 서비스는 아직 없는 듯 보인다. (내가 모르는 거일 수도 있지만 쥬륵) 아직 마트나 편의점에서 식재료를 사는 게 대부분인 거 같고, 이제는 애플페이나 라인페이 등 거의 대중화가 되었음에도 아가끔 어떤 마트는 현금만 받기도 한다?! 그리고 또 마음껏 노트북을 할 수 있는 카페는 큰 체인점 말고는 잘 없고 예를 들면 이디야라던지, 메가커피 같은 저렴한 카페도 없을뿐더러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개인 카페도 없다. 다들 아~주 작은 공간이거나 혹은 4-500엔의 스타벅스와 주로 맞먹는 비싼 커피값이거나. 근데 일본 스타벅스는 한국 스타벅스보다도 좀 더 저렴하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테이크아웃 아이스커피가 500엔. 맛은 있음 훌륭! 

매일 아침 아이스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게 정말로 중요한 나라는 사람한테는, 저게 가장 큰 이슈였는데. 어찌어찌 그동안 도쿄 브이로그를 보고 배운 편의점 커피 사마시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출근 전 사 먹거나, 조금 여유 있는 시간에 출근하는 날에는 스타벅스나 가게에서 커피를 사가기도 한다. 나에게 아주 중요한 지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일을 유지한 채로 도쿄에 온 건 정말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걱정도 염려도 많았고, 준비하는 시간도 정말 괴롭고 길었지만 아직 내가 이곳에 외국인 신분으로 와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도 나의 정체성에 큰 존재로 자리 잡아주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메일.. 메신저... 문서... 미팅... 그리고 캐주얼한 대화까지 모든 것이 일본어로 하기 때문에, 나는 무적권 일본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럴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첫날부터 오리엔테이션 받기도 전에 어려운 미션이 주어져서 낯설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해낸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출근 첫날부터 어찌 된 일인지 기한이 임박하여 내가 주도해야만 하는 프로젝트의 장소 답사며 기획 미팅이며 있었는데, 내가 확인해야 하는 사항들을 외국어로 얘기한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든 일본어로 물어보고 못들은 건 녹음해서 다시 들어보고 했다. 처음엔 아무 말도 못 하겠었는데, 필요한 상황이 닥치니 그냥 아무 말이나 아는 단어 총동원해서 말해야 하는 것.. 외국인들 앞에서 일본어 하는 건 안창 피해도, 일본어 잘하는 한국인 앞에서 일본어 하는 게 가장 수치플이다 ^^ 




이곳에 온 이상, 내가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일본어 적응하는 데에만 6개월-1년을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출근한 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3개월 안에 부시자...라고... 완벽하게는 분명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든 익숙한 문장과 대화들은 적어두고 반복하고 캐치해서 계속 말하는 연습을 해야 되는 것을! 그래야 미팅이든 대화든 계속하며 적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출근한 날 저녁에는 너무 기진맥진했지만 일본어 선생님한테 다시 연락해서 주 2회라도 회화 연습을 같이 하자고 했다. 팀원들에게는 아무리 얘기해줘도, 내가 틀리게 말하는 걸 고쳐주지 않는다. 못 알아들으면 다시 물어볼 뿐. 그래서 내 말을 계속 고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왕 얘기하는 거 정확하게 말하고 싶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까지 계속 섞어서 마구잡이로 쓰다 보면 나 스스로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어도 물러터지고, 영어랑 일본어까지 엉망이 될 까 봐 좀 걱정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걱정 자체를 이렇게 블로그에 계속 글을 쓰면서 줄여나가려고 한다. 이 경험과 감정 자체가 나의 글의 소재가 되기도 하니까. 글을 쓰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이 간지러운 마음들을 계속 이렇게 쓰고 싶다. 




이 이주 후 5일간의 마음가짐으로 나 스스로에게 느낀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완벽하지 않아서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그냥 나대로의 능력을 보여주고 남에게 모르는 거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니 도와줘라고 말할 수 있어진 것이 큰 발전이다. 그것조차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지금은 처음이니까 못하는 거 당연하지, 근데 계속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해.'라고 생각할 수 있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앞으로 계속 못하는 건 안되니깐.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된다. 이렇게 당혹스럽고 낯설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좀 불안정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나 지금 이직도 아니고 이주했잖아. 아니 이주하면서 이직도 같이 한 거인 셈이지. 그냥 이 불안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내 마음속의 어떤 강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자리잡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어제는 미팅과 답사가 모두 없어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기획안을 한국어로 최대한 빨리 많이 정리해서, 다시 일본어로 번역하고, 이에 대해 팀원들에게 영어로 미팅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다시 이메일을 한국어로 쓰고 또다시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내고 등등. 하다 보니깐 또 하게 됐다.(진짜) 잘 못하니깐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에서 잘 못해도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생각하던 게 도움이 됐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안 하고 3년을 지내도 3년은 지나간다. 나의 과거의 어렵게 내린 결정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국에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마음에 꼭 보답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어떤 리더나 직책자의 자리, 혹은 멋진 프로젝트 한 자리도 꿰차리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얼마나 잘 일하는 가는 성과와 직결되지 않을 때도 있고 상황이 안 도와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지난 3년간 충분히 경험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들어 외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외국으로 넘어와서 회사 내에 갈 수 있는 나의 포지션을 얻고, 이곳에서 외국인들과 업무를 같이 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생활을 경험해본다는 것 그 자체로. 분명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분명 기억에 남을 경험이다. 여기에 잘하면 물론 좋겠지만, 잘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나를 자책하지 않고 업무든 언어든 최선을 다해서 하는 자세를 꾸준하게 가질 거다. 




어제 월드컵 3차전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던 순간이 많았다. 모두가 안될 거라고 얘기하고 9%도 안 되는 가능성에, 최강자에게 전반 4분 만에 골을 먹혔음에도. 마지막 90분을 끝까지 심장이 터지도록 뛰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얘기했는지 90분 동안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선수들을 보며 남에게 내가 부끄럽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노력하고 고민했던 나 자신에게, 그리고 현재에도 이 선택을 한 나 자신에게,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자체에 크게 손뼉 쳐주고 싶다. 그 마음가짐에 대해서. 고맙다 과거의 나야! 너의 노력이 헛되이 지 않게 미래의 나를 위해 또 오늘도 열심히 살아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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