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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G씨 Jul 05. 2021

받아쓰기 90점과 무한도전

나는 언제부터 '공부잘하는아이'였을까?


많이 닮아있는 건 같으니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니

<물어본다> - 이승환



  


    한 달 내내 이어지는 시험 기간에 지쳐, 자취방을 도망치듯 나와 본가로 향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는 동네, 어려서부터 십여 년을 지낸 익숙한 동네가 주는 특유의 안심이 있었다. 에어컨이 잘 나오는 근처 스터디 카페를 예약하고, 몇 시간 공부를 하다 산책을 나와 걷다 보니 무의식의 발걸음이 나를 초등학교로 이끌었다. 얼마 만에 와봤는지 모를 골목길이었다. 10여 년 전 이곳에서 나는 500원짜리 컵 떡볶이를 친구들과 아껴서 나눠 먹고, 오늘은 누구네 집에서 놀까 고민하며 하교하고, 신발 가방을 퍽퍽 발로 차며 뛰어다녔을 것이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의 내가 겹쳐 보였다.



    수년의 공사와 개발을 통해 깔끔해진 도로와 정리된 골목길은 어딘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거리는 깨끗해졌고, 길거리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의 후문은 왜 이리도 작아 보이는지, 30명 넘는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던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크기였다. 그때는 참 크고 넓고 또 세상의 전부였던 곳이었는데, 이리도 작아 보이는 것을 보니 어느새 내 시선이 자라 버린 건지 마음이 좁아진 건지 알 수 없을 일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디가 달라졌을까?

                      아니 그때의 내가 남아있기는 한 걸까?




    


    어린 날의 햇빛 어린 추억에 잠기다 보니, 지금의 나는 어떻게 이렇게 자라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쩌다 지금까지 '할 줄 아는 거라곤 공부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다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일련의 답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공부와 나'라는 키워드를 잠시 떠올려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었다. 9살, 학교에서 본 받아쓰기 시험에서 90점을 맞은 날이었다. 9살의 나는 무언가를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보통의 성장을 보이는 아이였을 것이다. 국어도 그러한 보통의 성장 중 하나였을 것이고, 받아쓰기 90점은 참 적당한 점수였지 않나 싶다. 못했다고 혼내기도, 걱정하기도, 그렇다고 세상 잘했다고 칭찬하기도 애매한, 그저 적당한 점수 말이다. 그때 나의 부모님은 더 잘하라는 격려도, 너무 잘했다는 칭찬도 해주지 않으셨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점수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더 잘해야겠다는 결심도, 못했다는 자책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특별한 계기나 동기 같은 것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딱히 칭찬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냥 해야 하는 것', '별거 아닌 것'에 가까웠다. 조금 더 어린 시절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의 외동딸은 집에 있을 때 달리 할 게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 심심함을 집에 널린 책으로 해소했던 것 같다. 대단한 집중력이라기보단, 심심함에 이기지 못해 보이는 대로 책을 붙잡고 놀아달라고 떼쓴 것에 가까웠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집에 책이 많았고, 책은 아무리 읽어도 누가 꾸짖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책 - 공부로 습관이 이어졌는지 모른다.


공부를 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학원을 다니는 행위는
마치 토요일 저녁에 무한도전을 보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공부가 습관이 되어 가다 보니, 초등학교의 성적은 사실 너무도 쉽게 잘 나왔을 것이다. 그 시절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 관심을 조금 더 쏟느냐에 따라 성적이 휙휙 바뀔 수 있는 때인데, 누군가 태권도 학원을 가고 미술학원을 다닐 때 - 물론 나도 다니기는 했었다 - 혹은 인라인 스케이트나 수영에 빠져있을 때 나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책 읽는 데에 할애했다는 그 이유로 너무도 쉽게 초등학교에서 우등생이 되었다.



    우등생은 칭찬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잘 혼나지 않는다. 참 불공평한 일이지만, 똑같이 장난을 치고 못된 짓을 꾸며도 상대적으로 덜 꾸짖음을 받는다. 주변 친구들의 묘한 존중을 받기도 하고, 반장 부반장의 기회가 조금 더 자주 찾아오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우등생 티켓'은 아무 생각 없이 공부했던 아이를 점점 '우등생이어야만 하는 아이'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별 이유 없었던 습관이 나의 운명이라는 착각 혹은 강박으로 변화해갔다. 다른 것보다 조금 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다른 것보다 공부에 조금 더 시간을 썼다는 이유로,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아니 공부를 잘해야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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