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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동 Jun 26. 2024

이독제독(以讀制毒)


나는 종종 의심한다. 나의 세계가 무지(無知)라는 독(毒)에 잠겨있는 건 아닌지. 대기의 구성성분 자체가 독이기에, 나는 인식조차 못 한 채 들이쉬고 내쉬길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무지에 중독되고 중독되어 결국 독인(毒人)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나의 일상은 나의 역사와 관계없이 고고하게 작동한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나는 잠에서 깨고 움직이다 다시 잠자리에 든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것에는 어떤 편안함이 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일탈을 기대할 수 없는 지독한 타성. 이곳 어딘가에 중독이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시계의 초침과 분침을 노려본다. 정교한 공학적 설계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째깍째깍. 이런 무자비한 냉혹함이 나를 마모시킨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복제된 것투성이. 동일성의 천국이다.


그렇게 나는 강제로 깎이고 다듬어져 퍼즐의 한 조각이 된다. 저 멀리 내가 위치할 자리가 보인다. 사방의 조각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직소 퍼즐의 마지막 공간에 살포시 내려앉고. 비로소 1,000조각의 퍼즐은 완전해진다. 완전(完全)은 완결(完決)이다. 끝에 도달했기에 더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모든 변화가 정지하는. 그렇다. 죽음이다.


나는 죽은 채로 움직인다. 생각은 멈췄으나 일상은 작동한다. 동일성의 제국은 풍요롭다. 모두가 안온함의 중독자요. 나르시시스트다. 부족함이 없으니 바라는 것 또한 없다. 흘러가고 흘러갈 뿐이다. 999개의 퍼즐 조각은 영원히 행복하다. 그러나 1개의 조각은 일탈을 꿈꾸며 끝없이 고뇌한다. 자신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완전성에 균열이 생기는 것. 999개의 퍼즐 조각이 다시금 결핍의 늪에 빠져든다는 사실이 그의 행동에 제약을 건다. 이건 무의미한 고민이다. 의심의 씨앗이 쉽게 사라지지 않듯 전복(顚覆)의 씨앗 또한 그렇다. 씨앗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 다음 무성하게 자라날 운명이다. 그러므로 조각의 일탈은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조각은 마침내 자각한다. 자신을 둘러싼 퍼즐의 틀이 독(毒)이었음을. 자기가 그곳에 잠식되어 있었음을. 각성과 동시에 사방이 적으로 돌변한다. 격렬한 면역작용이다. 독(毒)의 세계에서 지(知)라는 이물질이 생겨났다. 존재와 비존재는 언제나 서로를 지탱하는 법. 지(知)의 탄생으로 무지(無知)가 규정된다. 이물질은 작지만 맹렬하다. 생존을 위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자신을 부수고 동시에 새롭게 구축한다. 마치 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지(知)는 몸집을 키워가며 독(毒)의 영역을 잠식해 나간다.


나는 종종 책을 읽으며 내부를 느낀다. 지(知)와 무지(無知)의 제로섬 게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관조한다. 언제나 지(知)의 우세다. 지(知)가 확장한 영토만큼. 내가 숨 쉴 공간이 넓어진다. 독(毒)의 세계에서 내가 살아갈 방법은 오로지 이뿐이다.     


그러므로

독서는 나의 생존방식이고,

이독제독(以讀制毒)은 나의 생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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